*고요를 만난 두 여자이야기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홀로 나를 만나고 싶었다. 어떤 시선이건 개의치 않는 곳이길 기대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모이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내 맘 깊숙이 다른 이들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인도, 명상, 생각만 해도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 곳 까지의 여정에서 만난 복잡한 공항과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은 '홀로' 라는 마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신기했다. 시끄러움 속의 고요였다. 내 마음이 그 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고요해졌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낸 그의 시선이 가끔은 생각났지만 시선이 사라지자 난 자유로워졌다. 오토바이 매연과 함께 콧속으로 들어오는 후끈한 바람은 내 나라를 벗어났음을 알게 했다. 한참을 차를 타고 나서 도착한 낯선 곳, 땀으로 젖은 듯한 짙은 오크 색 숙소 문을 열자 더욱 고요는 내 곁으로 와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매연 냄새 없는 똑같은 온도의 공기가 고요한 방으로 들어왔다. 뜰 앞의 열대 꽃 향이 나의 고요함을 빛나게 해 주었다. 혼자다. 숙소와 맞닿아 있는 해변의 밤바다를 만났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바다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하얀 이를 들어 낸 파도는 금방 이라도 나를 검은 물속으로 끌어당길 것 같았다. 갑자기 혼자의 행복한 고요는 어딘가 멀리 사라지고 대 자연 앞의 두려움에 쿵쾅거리는 심장만 느껴졌다. 물가에 발도 못 담그고 뒷걸음질 했다. 자연은 고요 안에 소리를 담고 있었다. 다시 꽃향기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내 몸은 고요가 낯선지 밤새 자꾸 뒤척여졌다. 창이 환하다. 아침이 온 게다. 새 소리가 고요를 깨웠다. 길게 나 있는 꽃길을 따라 느리게 바다로 갔다. 어제 밤 마주 했던 두려운 바다가 거기 있었다. 무섭다고 느꼈던 바다는 하얀 구름과 맞닿아 또 다른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고요한데 바다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내가 아직 더 고요해져야 바다도 고요해 보일까? 하루 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 이야기를 들었다. 고요하지 않아서 가 아니라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던 것이 고요를 잃어버린 이유인 듯 했다. 나를 보려 애쓰면 고요가 친구 해줬을 것이다. 이리 멀리 오지 않았어도 나를 만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이 고요하면 밤바다의 두려움도 이내 고요해 질 거 같았다. 며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꼭두새벽의 바다도 만나고, 고요한 낮 바다, 해지는 붉은 바다, 여전히 두근거리는 밤바다도 만났다. 어느 날 드디어 파도가 내 몸에 닿았다. 바다를 만지며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거다. 바다가 내 맘이었나 보다. 두근거리고 무서운 바다가 내 맘이었나 보다. 난 그 날 나를 마주 했다.


그녀는 홀로 당당했다. 한밤중 시작된 진통은 그녀를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깊이 잠든 딸을 데리고 찬 겨울밤을 달려온다는 것은 엄마의 사랑에 반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덩그러니 딸만 두고 남편과 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라, 남편은 딸 곁에 있으라고 했다. 아니, 그냥 아내의 출산은 잊고, 피곤할 테니 딸과 함께 집에서 자라고 했다. 혼자서 건강하게 아기를 낳을 테니 아침에 딸이 일어나면 함께 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첫 아이를 위한 일이다. 무엇을 믿고 그녀는 홀로 아기를 낳으려 한 걸까? 자기 몸에 대한 확신이 그 첫 번째 이유일 테고 그녀를 믿어 주는 아기 받는 내가 있어서가 두 번째 일 것 이다. 깜깜한 밤거리로 그녀를 마중 나갔다. 고맙게도 친구가 데려다 주었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과 목을 때린다. 아파트 정원의 소나무에서 바람 소리도가 난다. 아직 진통이 강하지 않은 그녀는 사뿐히 차에서 내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친구는 그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물게 홀로 아기를 낳으러 오는 경우는 이미 한 번 쯤 나와 함께 아기를 낳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아기를 품은 자궁이 순수하게 아기 품는 일만 했 다. 그들은 건강한 자궁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다. 기본적인 출산에 관한 검사는 정상이어야 하고 아기의 크기 또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족, 특히 남편과의 신뢰 또한 홀로 아기를 낳는데 아주 중요하다 건강한 자궁은 여성의 자존감이며 출산 시 생명과 직결되어있다. 모두를 위해 세심히 잘 살펴야한다.

출산 방엔 나와 그녀 뿐이다. 진통을 줄여 주는 따듯한 물도 준비되어 있다. 라벤더 향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진정시킨다. 온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 진통이 세어지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진통이 강하게 오기 시작했다. 이제 따듯한 물에 들어갈 차례, 그녀의 표정은 평온 했고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 같은 진통은 따듯한 물에 평정되는 듯 보였다. 고요와 어둠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 채 몇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작은 소리도 내지 않을 만큼 진통에 당당했으며 스스로 내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날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그녀는 고요가 좋다고 했다. 내가 나를 마주하러 홀로 떠났던 여행처럼, 고요가 나를 마주하는 한 방법인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녀도 스스로를 홀로 마주할 수 있는 고요에 목말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요함은 진정으로 출산에 이롭다.

까무룩 잠깐 조는 사이 무르익은 그녀의 몸은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자연스레 아기가 태어나도록 물속에서 춤을 췄다. 난 단지 그녀가 아기를 잘 낳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최소한의 친구로 존재했다. 질 밖으로 아기의 머리가 만져 진 후에도 서너 번의 자궁 수축이 오고 갔다.

드디어 아기의 머리가 나오고 몸이 따라 나왔다. 출렁였던 물도 이내 잔잔해졌다. 엄마는 물속에서 둥둥 떠 있는 아기를 꺼내 가슴에 안았다. 서두를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뜨거운 살갗에 닿아 있는 아기를 보며 엄마는 웃었다. 새 생명은 고요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랑을 확인했다. 사랑할 사람을 확인했다. 신비한 짧은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의 할 일도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아침에 느지막이 큰 딸을 데리고 남편이 찾아왔다. 미안한 얼굴과 행복한 얼굴이 교차된다. 아내의 손을 꼭 잡더니 이마에 뽀뽀도 한다. 어린 딸은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울음으로 제 마음은 알리는 것이 쉬웠나 보다. 남편의 가슴에 갓난아기를 안기고 큰 딸에게 엄마 품을 내어주었다. “네 동생 이란다. 다시 한 번 인사해 볼래?” 언니가 된 큰아이는 엄마 품에서 손가락을 빨며 안정을 찾았다.

두려움에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검은 밤바다, 용기 내어 파도와 맞닿던 나의 몸, 나를 바라볼 때의 희열과 충만함, 내가 나를 위로한 인도의 바닷가!

홀로 아기를 낳으려 했던 두려움, 따듯한 물이 주는 평화로움, 자신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쪼개진 생생한 순간들, 홀로 해냈다는 자신감, 남은 생을 살아갈 어마어마한 힘을 얻는 주체적인 출산!

모든 것은 진정으로 서로 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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