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노래지지 않아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김옥진

초산인 산모가 집에서 진통을 견디고 있다. 밤새 간간히 문자로 질문들이 오고 갔다. 그녀 역시 소소한 궁금증들을 물어왔다. 견딜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조언했다. 날이 새자 밤을 샌 산모가 피곤한지 약 세 시간 동안 질문이 없다. 진통하는 산모에게 피곤이 몰려오게 되면 진통은 약해지고 간격도 넓어진다. 생명을 내어놓는 일은 규칙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모두들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꿀잠을 선물하는 자연에 감탄하게 된다.


진통이 시작된 지 여덟 시간이 지나가는 오전 11시, 산모가 아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너무 아파해요! 자기는 아직 멀었다며 참고 있긴 한데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 보여서요. 아무래도 지금쯤엔 조산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 전화기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때가 된 소리,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의 절규 소리로 들렸다. 무얼 해 줄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나의 머리카락은 긴장으로 쭈뼛거렸다. 되도록이면 빨리 조산원으로 출발하시라고 했다.


산모의 집에서 여기 조산원까지의 거리는 20km, 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진 진통을 하며 차를 타는 것은 산모에게 힘들 것이라 한편 걱정도 되었다. 30여분이 지났을까! 도착할 시간이 다 될 무렵에 또다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는 도중 차 안에서 양수가 터졌단다. 뒷좌석의 누워있는 아내가 가끔씩 힘을 주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럴 때는 그저 빨리 오시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지금 상황과는 별개로 안전운전도 당부했다.


예상보다 훨신 진행이 많이 된 듯 했다. 출산 방을 준비하고 재빠르게 아기 받을 준비도 마쳤다. 방에서 서성이는 것보다 일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산모를 부축해 올라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중을 나갔다. 저 멀리 비상등을 켠 차가 들어온다. 산모다. 차 문을 여니 뒷좌석에 옆으로 누워 있었고 또 다시 진통이 밀려오는지 끙끙 소리를 낸다. 남편의 말대로 아기를 밀어내는 소리였다. 남편의 예리한 판단에 당황스런 일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진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빨리 출산 방으로 가야 한다.


서거나 걷는 자세는 아기를 밀어내기에 더없이 좋은 자세다. 산모가 일어서니 더 강하게 진통이 온다. 엘리베이터 안에 안전 바를 부서져라 잡고 있는 산모가 소리쳤다. "선생님, 아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다리사이에 손을 대 보니 아기의 머리가 거의 다 만져졌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진통은 사라지고 아기는 다시 제 자리로 들어갔다.

열 발자국 걸어 우리는 출산 방으로 들어갔다. 안전지대로 들어간 안정감이란! 산모를 옆으로 눕히고 옷을 벗기며 호흡을 함께 했다. 다시 온 두 번의 진통은 다행이도 세지 않았다.

가끔 태아는 밖의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약한 진통 한 번 더, 또 다시 한 번 더 겪은 후 세상으로 나올 것 같았다. 완벽한 준비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따듯한 마음, 태아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고 느낀다.


그 두 번의 사이에서 한 손은 출산 기구를 준비하고 한 손은 아기의 머리와 닿아 있는 산모의 회음을 보호했다. 드디어 세 번째 진통이 온다. 세다!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이어 어깨가, 몸통이, 연이어 나왔다.


내 손위에서 버둥대는 핑크빛 예쁜 녀석이 눈을 떠 나를 본다. 양수와 피를 조심스레 닦고 미끈거리는 아기를 안아 산모의 가슴에 올려주었다. 거칠었던 산모의 숨소리는 천천히 잦아들고 있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었는지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고르게 숨을 쉰다.


아기가 태어난 지 2분정도가 지나서야 남편이 출산 가방을 가지고 다급히 들어왔다. 그의 눈과 입모양이 놀람을 대신한다.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이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수고 했어요 여보. 근데 아기 만져 봐도 돼요?"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럼요! 어서 칭찬도 해 주시고요" 그가 아기의 손을 잡자 아기도 아빠의 둘째손가락을 꽉 쥐었다. 엄마, 아빠, 아기의 손이 한 곳에 겹쳐졌다. 짧은 감동의 순간, 뭉쳐진 세 사람의 손을 보는 나도 감격스럽다. 태반이 떨어질 때까지 나는 조용히 침묵을 선사했다.


삼사 분 간격의 진통이 한두 시간 계속되면 출발하시라 했는데 왜 이리 늦게 오셨냐고 물었더니만 "다들 하늘이 노래져야 아기가 나온다는데 진통은 세져도 하늘은 여전히 노랗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멀었구나, 더 견뎌야겠다. 라고 생각 했죠. 그리고 초산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기를 낳으러 출발하는 것이라 알고 있었거든요. 다들 무척 아프다고 하는데 저는 참을 만했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아주 잘 참는 사람인가 봐요“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서 젖을 찾느라 고개를 연신 이리저리 돌리고 있고 엄마의 손은 아기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출산은 이런 것이다. 견딜만한 통증과 잠깐씩 내어주는 휴식시간이 있다.

빨리 꺼내 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아기는 제 할 일을 충실히 한다. 태아도 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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