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낳으면 안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김옥진

오전 9시,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가 뜬다. 낯선 남자다.

아내가 집에서 진통 중인데 아주 많이 아파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무작정 내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연이어 산부인과 병원에 가지 않고 둘이서 아기를 낳기로 했다고 했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면 제일 먼저 나의 조언이 큰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한 걱정도 함께 온다. 출산을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을 테지만 지금 한계점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냥 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한다면 아주 간단명료하게 상황은 종료 된다. 하지만 나는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부부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지금까지 병원진찰을 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했다. 여러 개입이 있는 병원 출산은 인간답지 못하고 출산 후 아기와 떨어지는 것도 싫어서란다. 자칫 병원에 사정에 따른 제왕절개를 할 경우도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정상적 삶의 과정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나의 평상시 생각과 같았다. 내가 오지랖을 떨기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왜 그들만의 출산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그것을 위한 심리적, 물질적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 출산을 함께 할 지지자는 있는지? 응급 상황에 대한 인지가 있는지? (산모의 출혈이나 태어난 아기가 호흡을 못하는 경우에 대한 기본 지식 등이 그것이다) 혹시라도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라면 강력하게 병원으로 가라고 조언을 해야만 한다.


그 후엔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초산인지 경산인지? 예정일은 언제인지 얼마나 지났는지 혹은 남았는지? 산모의 나이와 키, 몸무게의 증가는? 마지막 병원 진찰의 결과는? 아기의 예상 체중, 양수 양, 태아의 위치를 물었다. 또 다시, 진통이 시작된 시간은? 가 진통은 얼마나 겪었는지? 질 분비물의 성상은 어떤지? 양수가 새었는지? 지금 진통의 간격은 어떤지? 진통 시 허리가 아픈지 배가 아픈지?( 만약 허리가 아프다면 골반의 전후가 좁다고 할 수 있고 배꼽 아래로 통증이 느껴진다면 골반의 크기가 좋은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외의 다른 어느 특정 부위가 아픈 곳은 없는지? 태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는지? (남편의 손을 배에 대고 있을 때 움직임을 감지되거나 산모가 느끼는 태동의 정도가 감지되는지를 물었다.) 산모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는 어떤지? 산모는 식사를 잘하고 있는지? 산모는 지금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산모가 대변을 진통 시작 후 몇 번을 보았는지? 마지막 소변본 것은 언제인지?


긴 질문과 답이 이어진 후 나는 아마도 지금쯤엔 대부분의 산모들이 제일 힘들어할 출산 활성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이 누군가에게 조언들 듣고 싶은 이유는 아내의 진통이 심해 지금쯤 아기가 나올 것만 같은 급박한 상황이라 여긴 것이다. 두려움은 그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남편의 지지력이 무너지면 아내는 그 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기 쉽다. 산고를 겪는 당사자도 정말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병원으로 가고 싶다. '우리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듯 해.’ 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빨리 지금 병원으로 가서 무통주사도 맞고 누군가에 의해 아기를 빨리 꺼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격하게 하게 된다. 드물게는 이 상황조차 견디고 아기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에도 전화를 한다. 아기의 머리카락이 보이는데 빨리 나오지 않을 경우 남편들은 두 번째 맨틀 붕괴를 경험한다. 지금 이 산모의 경우는 아직 아기의 머리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좀 일찍 전화를 걸어온 한 셈이다.


‘그만큼 집에서 견디었으니 지금쯤엔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병원으로 가라고 한 이유는 초산이기 때문에 힘주기 조절이 어렵고 만약 출산을 했다손 치더라도 초산의 경우 회음손상을 입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기 낳고 하루 이틀 후 회음 봉합을 위해 병원을 다녀와야 하는 번거로운 일도 생긴다.

긴긴 이야기를 한 후 통화를 마쳤다.


전화통화를 한 지 네 시간이 흘렀다. 내 예상대로라면 아기를 만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게도 소식을 전했을 텐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거나 응급사태가 되어 경황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조급증이 발동해서 아까 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저런! 병원은 안 갔단다. 아직도 산모는 졸면서 진통 중이다. 걱정스러워하는 내 목소리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에 가게 되면 제왕절개를 하게 될 것 같아서요. 힘들게 밤새 진통을 겪은 아내가 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사실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고 병원의 의료진이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수술을 해야겠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이 수술을 할 것 같아서 안가기로 결정했어요.”


어떠한 외부적 개입이 없는 집에서 진통을 견디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옳다. 가족들의 믿음이 그 상황을 견디게 한다. 여태껏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부부의 신뢰도 그 힘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을 돕는 것이 최선이 될까! 내 뇌리에 번쩍 그 근처에 사는 열정이 넘치는 새내기 조산사가 생각났다. 난 그녀의 품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나의 부탁을 꼭 들어줄 거라는 확신에 차서 도움을 청했다. 예상대로 새내기 조산사는 모든 일을 접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새내기 조산사가 처음 그들의 집에 도착해서 한 일은 아기와 산모의 건강상태다. 다행이도 산모도 좋아보였고 아기도 건강히 제 길을 가고 있다고 전해왔다. 자궁문은 거의 열렸는데 아직 아기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전화로 산모의 자세와 힘주기 등등을 조언하며 계속 함께 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아기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바깥 골반이 좁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아기머리가 보이고 두 시간동안 힘을 준 후 아기를 만났던 산모가 생각났다. 아기가 잘 버티면 기다려도 된다.


반전이다. 문이 열리고 친정어머니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셨단다. 딸이나 사위가 도통 전화를 받지 않아 덜컥 걱정이 된 어머니는 한 걸음에 딸집으로 온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본 친정어머니는 언성을 높이며 그 자리의 모두에게 화를 냈단다.


산모는 결국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오히려 병원에서는 집에서 아주 잘 견디고 왔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참았냐고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제왕절개 할까 봐 그랬다고 하니까 자기네들은 그렇게 무작정 제왕절개를 하지 않는다며 자궁 문 다 열려서 온 초산모는 거의 없다고 칭찬을 했단다.


분만실에 도착해서 바로 분만대로 옮겨진 그들은 45분 후 예쁜 아가를 만났다. 회음절개는 어쩔 수 없이 피하진 못했지만 아무런 약물을 쓰지 않고 아기를 만난 것으로 위안을 삼았 다. 여러모로 애쓴 후배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괜한 일을 벌였나, 그들의 계획이 그렇게나 무모한 일이었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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