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아기 낳으며 변 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산모들이 출산의 마지막에 보이는 '예쁜 작은 똥?'을 보며 내 일생이 지나갔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출산직전,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 극한 상황에서 그것을 닦아주고 미안하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슬쩍 버려주는 것은 아기 받는 사람의 도리다. 사실 가끔 똥 냄새에 속이 뒤집혀 헛구역질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는다. 자식의 똥은 구수하지만 남의 똥냄새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똥이 나오는 상황은 출산이 코앞이라는 증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모두의 긴 애씀이 종결된다는 의미, 아기가 곧 태어난다는 의미! 진실을 말하자면 아기의 머리가 엄마의 *직장까지 내려와서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조금 남아있던 똥이 탈출을 하는 것이다. 손가락 한마디 반쯤 안에 아기 머리가 만져진다.
처음으로 아기를 낳는 초산의 경우, 똥의 출현은 최소한 제왕절개는 피했다는 안심 증상이기도 하다. 긴 시간 힘쓴 아기 엄마에게 다 되었다고 확신을 심어주는 상황인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이 명료한 상태로 아기를 낳기 때문에 산모는 똥이 나오는 것을 명확히 안다. 수치스럽고 미안하다는 짧은 말들은 슬쩍 못들은 채 하기도 한다. 긴 시간을 진통한 어미에게 똥으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 비록 비위 상하는 똥이지만 출산 때 보는 똥의 의미는 그래서 내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똥을 싼 사람 중에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출산 호르몬 샤워를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출산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 호르몬은 진통제 역할도 하지만 기억을 잊게도 해 준다. 산모들이 기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기억을 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죄송하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산모들은 힘을 주다가도 아기의 몸에 똥이 묻을까 봐 걱정을 하기도 한다. 드물게는 묻히고 나오는 아기도 있다. 하지만 출산의 장소 어디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게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시대다. 그래서 굳이 아기가 태어날 때 똥이 묻었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똥이 마려운 느낌은 모두에게 있다. 걱정 말고 똥을 누면 된다! 열심히!
잠깐! 마구 힘을 주다가는 *회음에 상처가 많이 나니까 아기의 머리가 느껴지걸랑 짧게 짧게 힘을 주는 거다. 자연스레 진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똥이 나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자연 관장된 대부분의 산모들은 장이 깨끗이 비워져 있어서 안 나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똥이 나오건 안 나오건 아기가 태어나는 느낌은 똑같다. 그런 느낌이 오거든 더욱 자신 있게 아기를 안을 준비를 하면 된다.
진통 중에 잘 먹는 산모는 아기를 잘 낳는다. 온 장기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어서 호르몬의 분비 또한 자연스레 나온다. 진통 중 음식은 먹게 되면 아기를 내 보내는데 쓰일 힘을 확보할 수 있다. 배가 고프면 산모의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은 출산진행을 방해한다. 걱정하시 마시라! 지금 먹는 음식이 똥으로 변하기 전에 아기가 태어나니까. 입맛이 당기는 데로 맛있게 먹는 것이 출산에 더 이롭다.
출산 진행에 문제가 생겨 제왕절개를 하러 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산모들은 금식이 되어 있지 않아 나는 마취과 닥터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산모들이 드물게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한 산모들로 인해 모두 금식을 하며 진통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87년 12월, 나의 첫 아이 예정일이 다가온다. 아직 2주나 남은 그 날 새벽, 밤 근무 중에 양수가 샜다. 다행이도 간간히 진통이 오는 걸 보면 오늘이나 내일쯤에 내 배가 날씬해 질 것이다. 친정으로 퇴근해서 삼겹살로 점심을 먹고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종일 양수는 질금거리며 속옷을 적셨다. 저녁이 되어서야 규칙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저녁 다섯 시가 다 되어 입원을 했다. 내가 근무하는 산과 병동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며 몰려와 나의 출산을 궁금해 했다. 산통을 견디는 내 모습이 궁금했던 걸까? 나도 수치스럽지만 예외 없이 관장을 했다. 항문으로 차가운 비눗물이 300cc나 들어갔다. 체온에 맞게 따듯했으면 좀 편안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쁜 분만실은 산모들을 위해서 관장액을 따뜻하게 데울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냥 꾹 참았다. 효과적인 관장을 위해서는 관장액이 대장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 까지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잘 알고 있는 조산사인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들은 없다.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알아서 10분을 참겠지 싶은 분위기다. 나도 아기 낳으러 온 입원하는 산모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곤 했으니 10분을 꼭 참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깨끗이 장을 비우는데 걸리는 시간 10분, 이를 꽉 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관장액이 주입 된 후부터 진통이 멈추질 않았다. 볼성 사나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일단 화장실로 달려갔다. 진통이 쉬지 않고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화장실 문고리를 부여잡고 진땀을 흘렸지만 십 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변기에 앉았다. 고상하게 십 분을 기다리려 했던 나의 예상이 철저히 빗나갔다.
관장을 한 나는 아기를 낳으며 변을 보지 않았을까? 천만에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나는 다시 분만실로 복귀를 했다. 관장을 한 산모에게 버릇처럼 한 말 “10분간 참으셔야 해요”라는 문장에서 한 문장을 더 추가했다. “ 못 참으시겠으면 그냥 볼일 보셔도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