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4대

누구나 두렵습니다.

by 김옥진

새벽 일찍, 둘째아기의 출산이 시작되었다. 헐레벌떡 먼 길을 달려 왔는데 산모의 집은 아직 조용하다. 모든 것을 갖추고 기다렸건만 새벽부터 시작된 진통은 쉽사리 강해지지 않았다. 산모와 출산을 도울 우리는 아파트 옆 산도 오르고 첫째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만삭의 엄마가 아이와 까르르 까르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새삼 평화롭다. 부산스럽지 않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출산, 이것이 옳다. 진통이 세어지기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렇게 오전의 시간은 지나갔다.


산모의 첫 아이 병원출산 경험은 이번 가정출산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로 가버린 아기, 원치 않는 누운 출산자세, 한기와 배고픔의 기억은 둘째아기를 집에서 낳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아내의 의견에 마지못해 찬성을 한 남편은 불안을 위로해 줄 물건으로 카메라를 선택했다. 그것도 4대나. 이렇게나 많은 카메라로 아내의 출산을 찍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괜시리 카메라가 신경 쓰였다. 이리저리 피해 다녀도 소용이 없어서 그냥 없는 물건인 듯 여겼다. 아직 본격적인 진통이 없는데도 카메라는 열심히 제 일을 한다.


진통이 시작되자 남편은 아내의 출산소식을 알리려 여기저기 전화도 했다. 여전한 시어머니의 걱정과 친정엄마의 제왕절개 선호는 그곳의 모두를 신경 쓰이게 했다. 불안으로 야기된 가족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정작 아기를 낳는 산모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하여 본능적 두려움만 더할 뿐이다.


남편의 전화소리와 흥분한 큰아이의 재잘거림이 출산의 방해물임을 주지시키기엔 늦은 듯하다. 나는 그저 그 모습만 말없이 지켜보았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은 출산 시 작동하는 원시 뇌보다 대뇌 신 피질을 자극하여 출산이 정지되거나 난산을 초래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미셀오당은 저서 〚농부와 산과의사〛에서 말한다.

경산의 산모가 아직도 진통이 뜸한 이유는 가족모두의 불안과 소리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찍히는 카메라를 산모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점심때가 되어 그들은 평상시처럼 점심을 차려 먹었다. 진통은 밥을 먹을 동안 뜸해 진다는 사실, 밥을 먹은 다음엔 졸음이 온다는 사실, 아무런 참견이 없는 자연출산을 하면서 알게 된 꿀 팁이다. 나도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건너편의 프른 숲을 감상하며 찐 계란과 바나나 우유, 커피를 마셨다.


가정출산을 위해 도착한 낯선 곳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은 유명한 여행지에서 느끼는 자유로움만큼 감미롭다. 이렇게 뜸을 들여야 출산은 더욱 자연스러워짐을 알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커피를 음미해도 된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보니 점심을 먹고 난 산모는 예상대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뱃속의 아기도 노동을 하기 전 충전을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낮잠을 잔다. 반대로 큰아이는 점심을 먹고 나서 더욱 활기차졌다. 지금부터는 출산할 산모를 위해 차단을 해야 한다. 지지부지한 진통에 발동을 걸리게 하는 특단의 조치, 고요를 불러야 할 차례다.


남편에게 설명을 하고 두 사람을 잠시 밖을 내보냈다. 잠깐 낮잠을 잔 산모는 남편과 아이가 나가자 기대한 대로 진통이 더욱 강해졌다. 출산호르몬은 거스를 것이 없을 때 최고로 분비된다. 다행인 것은 자연스레 분비되는 호르몬이 주는 산고는 견딜만하게 짧다는 것이다. 진통 강도가 세어지는지 산모는 간간히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요해진 거실에서 들리 는 소리라고는 옆집 사람의 발소리와 냉장고 소리뿐이다.


진통이 제대로 오기 시작했다. 13“16”,20“.25”,30“.33”,38“.41”진통의 간격은 점점 강해지며 드디어 본격 괘도에 올랐다. 이제서야 아기는 본격적으로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산모의 배에 손을 얹어 자궁수축의 강도를 읽고 아기의 움직임을 느낀다. 진통의 간격은 3분, 4분, 5분, 5분 또다시 3분, 평균의 간격은 4분, 역시나 자연스러운 진통은 기계처럼 정확하지 않다. 아기가 태어날 시간이 되어도 자연스러운 진통은 촉진제를 쓴 산모의 진통처럼 자주 휘몰아치지 않는다. 가끔은 아기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이 기적 같은 출산, 덕분에 산모도 태아도 힘을 모을 수 있다.


드디어 가끔씩 힘이 들어간다. 아기가 많이 내려왔음을 알려주는 증상이다. 밖으로 나간 남편과 아이를 불러들이고 수중출산을 위해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았다. 고요한 거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모두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연락을 하자마자 채 오 분이 안 되어 남편이 들어왔음은 여전히 그의 긴장을 말해준다. 흥분하며 들어오는 아이도 함께 진정시켜야 했다. 작게 속삭이니 아이도 작게 속삭인다.


따듯한 물속으로 입수한 지 이 십 여분 후 아기가 물속으로 태어났다. 여전히 네 대의 카메라는 이 광경을 낱낱이 기록을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출산을 실행에 옮긴 아내의 뚝심은 네 대의 카메라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맨 가슴으로 아기를 안을 준비를 한 사람은 이길 수 없는 거다. 출산현장의 엑스트라인 나는 그들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간간히 아기의 안녕과 산모를 살피며 그들만의 축제를 응원했다.


그동안의 우리의 서두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쓸데없는 소모였는가를, 떠들썩함이 출산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남편은 알게 되었으려나? 네 대의 카메라로 남편은 위로를 받았으려나?

산모의 바람 데로 아기는 태어나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았고 바로 젖을 먹었으며 가족의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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