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가 필요해.

누구나 두렵습니다.

by 김옥진

넷째 아이를 낳을 미국 산모 티나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절대로 병원서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입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산업적인 현대의 출산을 첫아기를 낳으며 경험한 그녀는 그래서 더 강력하다. 강성의 남편마저 이 결정에 토를 달지 못한다. 내게 깐깐하게 보이려 애쓰는 남편과 자신의 출산을 도울 조산사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그녀가 대비된다. 아마 매번 출산 때마다 출산방법에 대해 부딪치지 않았을까? 까탈을 부릴 시간에 사랑을 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여전히 그런 까탈스런 제스처가 아내와 아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출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미국에서의 첫 아이의 출산은 티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회음절개로 출산 후 20일이나 지나 앉을 수 있었고 똑바로 누워서 힘을 주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아기는 품에서 떠나 신생아실로 가버려서 젖도 먹이지 못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둘째는 미국 자연출산센터에서 조산사와 함께 낳았다. 첫아기를 낳았던 상황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최소한 출산에 관한 한 그랬다. 하지만 둘째아기를 출산센터에서 낳기로 결정했을 때도 남편은 불만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장소와 사람들을 원했지만 그것이 아기를 낳을 때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을 티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기는 산모가 낳는 것, 낳는 사람의 의견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3년 후 셋째는 대만에서 조산사와 함께 가정 출산을 하였다. 제일 행복한 출산으로 기억되었기에 어느 나라에서든지 앞으로의 출산은 집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번 남편의 발령지는 한국, 넷째 아기가 생겼다. 발령지마다 가정 출산을 할 수 있는 조산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용산 캠프 내에 거주하는 산모가 가정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타나는 가정출산을 도와줄 내 연락처를 받아들고 안도했다. 아기를 받아야 하는 나도 티나의 전반적인 생활패턴과 병원 검진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산전 가정 방문 일자가 잡히고 초여름 연두빛이 무르익을 무렵 그 집을 방문했다. 용산의 미군부대 가정집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미군이나 가족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하고 신분증을 출입증으로 바꾸어야 한다. 많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가정출산을 위해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땅인데 안쪽 마을은 마치 외국의 어느 동네를 연상하게 했다. 사람 사는 곳이 모두 비슷하다. 햇살아래 노랑머리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근무를 하다가 잠시 들어왔는지 남편은 군복차림이다. 바른 자세로 앉아 메모를 한 종이를 들고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조산사 면허증을 확인하고 싶다! 수중 출산을 하고 싶은데 각각의 장비들은 어떻게 준비 하냐? 물은 그냥 일반 수돗물을 써도 되냐! 만약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 산소는 가지고 오냐! 만약 조산사가 늦게 오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 부대 내의 병원으로 가게 되면 얼마를 지불해야 하냐! 진행과정에서 병원으로 후송할 경우 너의 서비스는 어디까지며 그것 또한 얼마를 지불해야 하냐! 너 혼자 오냐! 아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냐! 기본적인 질문들이었으나 아이 셋을 낳은 남자의 넉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대부분이 첫아기를 낳는 남편들의 질문과 똑같았으며 긴긴 질문 중에 그가 아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응급 시 쓸 산소였다. 아이 셋을 낳았음에도 그는 아직도 출산을 날것으로 알고 있다. 티나의 아기를 받으며 내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을 안정시키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몇 가지를 대답하면서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긴 세월을 아기를 받아냈는데도 그 의구심은 없어지지 않았나 보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들이 두려워하면 나도 두려울 것이고 행복해 하면 나도 행복하다. 보이지 않지만 그런 기운은 출산을 도울 때마다 내 언저리에 항상 함께 있다.


무엇이던 티끌만큼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그의 생각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기를 낳는 것은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으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다 아는 진실이다. 아내가 알고 있는 출산에 대한 본능적인 능력은 그에게는 모두 소용이 없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에겐 걱정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 걱정은 옆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나도 슬슬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산소가 필요할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 시대에 출산을 돕는 일은 내 살을 파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정일이 다가오자 두 번째 만남이 있었다. 출산 상황 연습과 포터블출산 풀 만들기,

집안 구석구석 위치 알아놓기, 출산물품 챙기고 부족한 것 알려주기, 큰 아이들과의 인사가 끝났다. 친정어머니도 먼 곳으로부터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미소가 티나와 나를 일으켜 주리라. 어머니의 존재는 남편의 단단함을 변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군인남편은 이번에도 "산소" 예기를 꺼냈다. 가져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벽에 수축이 시작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 산소! 벌떡 일어나 산소부터 챙겼다. 빨리 아기가 태어나 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티나 집 근처에 가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싶다. 아침 일곱 시, 반포대교 근처에 도착했다. 진통의 강도가 어떠냐고 문자를 했더니만 아직 불규칙하단다. 일찍 들어가 봤자 불편할 것 같아 반포대교 한강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편의점에서 목을 축이고 자전거족과 롤러브레이드족, 조깅족들을 바라본다.


나는 출산대기 중인데 그들은 여유롭다. 늘 남의 떡은 커 보이는 법, 하지만 오월의 아침 강바람은 좋다. 가정 출산은 가끔 낯선 곳의 풍경과 함께하는 신선함이 있다. 네시간이 흘러도 연락이 없어서 아침 아홉 시쯤,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티나네 집에 들어갔다. 티나는 침대에 그냥 누워있었다. 아기 심음은 정상이고 진통이 미약한 듯 보여 내진은 하지 않았다. 산소통과 출산준비물들을 거실로 들여다 놓고 수중 출산 풀에 바람을 넣었다. 여전히 진통은 약해서 다시 부대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막 셔터문을 열고 있는 이태원 뒷골목의 작은 커피숍이 보인다. 가게 안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모닝커피를 마신다. 인쇄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조간신문도 뒤적거려 본다. 남들이 보면 이른 아침, 참 한가로운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자기네 집 근처서 머물고 있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자꾸 아직 수축이 불규칙하다고 문자가 온다. 미안한 마음일 거다. 괜찮다고 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은 기다림이며 이미 충분히 익숙하다.


낮 열두 시! 다시 들어갔다. 수축은 여전히 시원찮다. 아기 소리만 듣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내진하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진찰을 했더니 어머나 6센티나 열려있다. 그냥 집에 갔다간 큰 일을 치를 뻔했다. 빠르게 수중 출산 준비를 한다, 물의 온도를 맞추고 여러 가지 출산을 위한 물품들을 내 방식대로 준비했다.

"산소!"도 눈앞에 있다. 산모는 물에 들어가 한 시간 반 정도 있었다. 거의 진행이 되었는지 강한 수축에 양수가 터졌다. 깨끗지 않은 태변 색의 양수가 나왔다. 올 것이 왔구나! 덜컥! "산소"가 생각났다. 그리 까칠하게 굴더니만 결국 산소 쓸 일이 생기려나? 아내의 마음이 임신기간 동안 편치 않았음이다.


양막이 터지자 진통이 휘몰아친다. 쉴 새 없는 진통에 아기 심박동 수도 종종 떨어진다. 그냥 이 상황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빨리 태어날 이유는 없지만 산모의 몸이 아기를 그런 방식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 아기는 진통이 휘몰아치는 엄마를 만나서 그런 거다. 견디며 태어날 팔자다.


산소를 주기 시작했다. 사실 보통의 산모였다면 그냥 물 안에서 아기를 낳도록 했겠지만 이런 상황은 간섭을 해야 했다. 지금은 내가 지휘권자다. 그들에게 물 밖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을 했다. 태변 섞인 양수를 보니 더욱 더 불안했다. 이럴 때는 기도밖에 없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평상시에는 열심히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급할 때만 불러대는 나의 하느님, 오늘도 응급으로 내 곁에 와 주셨다. 결국 티나는 물 밖으로 나와 남편에게 기대어 넷째를 안았다. 힘주지 말고 황홀하게 낳자고 한 그녀와의 계획은 탁한 양수 덕분에 지킬 수 없었다.


우렁찬 울음과 더불어 나의 "산소" 트라우마는 한방에 날아갔다. 탯줄 색깔과 피부도 깨끗하다. 깨끗한 피부는 태변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호흡과 맥박도 서서히 잦아든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숨죽이고 있던 가족 모두가 뛰어나왔다.


딱딱한 그도 웃는다. 그를 만나고 처음 보는 웃음이다. 아! 저 사람도 웃을 줄 아는구나!

남편의 허세와 불안에 맞춰진 산모들을 종종 본다. 그들에게 "출산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남편에게서 전이된 불안은 두 생명에게 이롭지 않음이 증명된 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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