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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29. 2023

"기억젤리"와 새해 인사

일상

옛날 옛적에 향지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나를 찾아 먼 길을 왔는데 낯설어 길을 헤매고 있었어요. 잰걸음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저 멀리 신호등 옆에 서 있는 하얀 원피스 입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단박에 그 사람이란 걸 알아챘어요.

왜냐하면 봉긋해진 배를 소중히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반가움에 두 팔을 막 흔들어 댔지요. 나와는 다르게 수줍은 듯 손만 흔드는 그녀를 건널목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서로는 자연스러운 출산에 대해 생각이 같았습니다. 처음 만난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 같았어요. 그녀가 선택한 출산이 고되고 힘들지도 모르지만 먼 길을 찾아올 가치가 있다고 말했어요. 조산사가 한 명이 일하는 곳으로 아기를 낳기 위해 찾아온 그녀가 참 대단해 보였죠. 코끝이 찡하도록 고맙기도 했어요.

달이 차고 아기가 태어날 준비를 마치자 향지 씨는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긴긴밤이 지나 낮이 돼서야

아기를 만났어요. 만만치 않은 출산의 과정이었지만 우리는 잘 이겨냈답니다. 처음으로 딸을 낳은 뒤 삼 년 후 아들도 태어났어요. 좋다 안 좋다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딸도 낳았고 아들도 생겨 완전체가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식구가 참 보기 좋았거든요. 조산사는 매우 힘든 직업이기는 하지만 고생 끝에 만나는 희열을 느끼는 직업으로서는 일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이 평범한 듯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만가지 일들을 겪어냅니다. 저도, 그녀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이 들어요. 세월과 함께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저는 회색 머리색의 할머니가 되었고 향지 씨도 중후한 중년이 되었어요. 작가가 꿈이었던 향지 씨는 동화 작가로 등단도 하고 상도 받았어요. 분주히 살아온 훈장인 셈이 지요. 보내온 동화책을 읽으며 제목처럼 제 마음도 말랑 젤리로 변했습니다.

향지 씨 딸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아들은 입시를 치렀습니다. 나름 개성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후면 2024년이 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을 떨었던 향지 씨 가족과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드리고 싶어 집니다. 제게도 마찬가지로 응원과 칭찬을 하겠습니다.

행복하고 보람 있는 새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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