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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an 15. 2024

빛바랜 백일사진의 단상

일상

나는 1961년 늦여름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진통이 강해지자 아버지는 산파를 부르러 갔다. 거의 칠삭둥이였던 작은 아기는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세상으로 나와버렸다. 그녀는 와서 별 할 일 없이 탯줄만 자르고 돌아갔다. 조산사인 나는 어머니의 산고와 아버지의 당혹스러움, 달려온 조산사의 마음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할딱거리는 작은 아기를 두고 세 사람의 마음은 달랐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아버지들의 마음은 '끝났다'로 안도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진통은 끝났지만 여전히 온전치 않은 몸으로 작은 아기를 돌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을 테고 산파는 허탕을 친 아쉬움을 품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셋이 느낀 공감의 말은 '어이구 이쁘다 녀석!' 일 거라고 백 프로  확신한다.

그 시절은 병원도 흔치 않았다. 달을 채우지 못한  아기에게 문제가 생겨도 그저 제 명이 그만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태어남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주위에는 태어나기 전에, 혹은 낳다가, 또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십 년이 겨우 넘었던 팍팍한 나라는 미숙아에 대한 의료적 혜택을 베풀 수 없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외할아버지는 손녀가 너무 작아 어디 살겠냐며 혀 차는 소리를 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세상은 변하여 조산아들을 위한 인큐베이터나 분유를 만들어 냈지만 나는 천연 인큐베이터인 어머니의 품속과 자연이 만들어낸 미숙아를 위한 어머니의 젖을 먹었다. 아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일찍 태어난 아기를 위해 어머니의 몸은 뱃속 아기 나이에 맞는 젖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신비의 젖은 나를 살려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별 탈 없이 자랐다. 어머니의 젖꼭지가 헐도록 열심히 먹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종종 아픈 젖꼭지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상처로 딱지 앉은 젖꼭지를 물릴 때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며 몸을 떠는 모습을 다시 재현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 몸서리를 쳐댔다.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온 나는 열심히 젖을 먹었음에도 발달이 늦었다. 앉는 것도 고개를 가누는 것도 늦었다. 어머니는 주먹을 쥐어 내 얼굴에 대보면 딱 고만했었다고 회상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주먹만 한 얼굴이 빨리 자라기를 바랐을 것이다. 늘 그 이야기 끝엔 '고만했던 것이...'라는 접미사가 붙곤 했다. 백일을 거뜬히 살아온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관으로 향하는 어머니가 보인다. 겨울 날씨에 감기가 들지 않을까 강보에 꼭 싸맨 손길도 느껴진다. 기억나지 않는 백일 사진엔 고개를 45°로 삐딱하게 한 채 앞을 쳐다보는 아기가 앉아있다. 백일이 되도록 고개를 가누지 못했던 내 앞에서 백일 사진을 찍느라 재롱? 을 부리는 어머니를 상상해 본다. 사진사는 몇 번이나 셔터를 눌렀을까. 어머니의 까꿍 소리는 기억 속에 없지만 나의 깊숙한 내면에 사랑의 목소리로 자리하고 있을 터다.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배냇머리는 병아리의 솜털처럼 부숭부숭하게 하늘로 솟아 있다. 꽃 핀 이라도 꽂아 주고 싶었을 어머니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겨우 오 센티 정도로 자라 있다. 여름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겨울을 맞았다. 배냇저고리를 졸업하고 입은 첫 니트 원피스, 팔목은 두어 번 접혀 있다. 접힌 손목엔 외할머니가 선물했음직한 방울 팔지가 앙증맞다.

어머니는 백일빔을 고르기 위해 종로에 있는 신 백화점에서 과소비를 하셨다고 했다. 조그만 니트 원피스를 얼른 입혀보고 싶었을 거다. 미소를 띤  어머니의 얼굴이 그립다. 손수 지었을 것 같은 양말은 아마 동일 계통의 세련된 색이지 않을까 싶다. 흑백사진이라 무슨 색이었을까 궁금하다.


사진 속의 아기와 한참 동안 눈 맞춤을 했다.


어젯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목주름 사이에 때 같은 끈적한 것을 닦아주고 있었다. 아주 살살, 조심스럽게, 따듯한 물에 수건을 적셔가며. 수건이 차가워질 새라 다시 따듯한 물에 헹구고, 또 헹구고. 어머니는 푸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웃고 계셨다. 너무나 생생해서 다시 눈을 감았으나 더 이상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복한 웃음을 보여 주신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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