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백담은 지금에서야 봄이다. 바닥이 보이는 거울 같은 물은 백개의 웅덩이를 거쳐 흘러간다. 쉼 없이 흐르는 물은 초록의 깊은 용소도 들르고 나지막한 반짝이는 웅덩이에도 잠시 놀다간다. 천길 낭떠러지 옆으로 난 길을 오싹한 마음으로 지나면 널따란 절 입구가 보인다. 땅에 발을 딛는 기쁨이 이런 걸까.
한 걸음 한 걸음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한껏 물오른 두 그루의 아카시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정신이 아찔하다. 행복한 마음이 넘쳐흐른다. 계곡의 크고 작은 돌들은 여전히 소원을 담은 채 돌탑이 되어 서 있다. 지나쳐간 사람들의 수많은 소원들은 이루어졌을까? 계절이 바뀌는 동안 쌓였다 무너지기를 반복했던 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루고 싶었던 소원조차 잊혀진 나의 소원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머니는 거친 손으로 돌탑을 쌓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처구니없다는 건 알지만 나는 어머니의 돌탑이 남아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거린다. 내 마음만 요동치고 하얀 크고 작은 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묵묵부답이다
깊은 숲을 거쳐 나온 바람은 여전히 서늘하여 얇아진 옷깃을 여미게 하고, 짧은 소매를 끌어당기게 한다. 버스 한 대에 실려 나온 상춘객들은 넓은 절마당에 흩어졌다 사라진다. 절간 찻집에 앉았다. 바람에 춤추는 풍경은 심부를 꿰뚫고, 간간이 날아온 숲 향기는 꿰뚫어진 상흔을 치유한다. 오욕 칠정이 사라지니 나도 바람이 되려나!
따끈한 대추차를 맞았다. 내 앞에 차려진 것들을 위해 수많은 고운 마음들이 어우러져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