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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ug 09. 2024

오드리의 첫여름

어설픈  전원생활

밤 열 시부터 천둥과 벼락이 치며 비가 쏟아진다. 날씨가 너무 더워 비 덕분에 시원하기도 하지만 밖에 있는 코기찬열과 암탉 오드리가 걱정된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오드리의 먹이는 미리 닭장 안으로 옮겨놓았다. 오드리가 잘 있는지 걱정은 되었으나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오드리를 살피러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깜깜한 밤, 까만 동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터 똑똑한 오드리가 비를 잘 피해 닭장 안에 머물기를 기대하기로 했다. 지난번 억수로 퍼붓던 소나기를 잽싸게 피하는 오드리를 목격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오골계인 오드리조차도 모두 제 살 궁리는 잘한다. 내가 경험한 작은 세계는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사라질 때까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산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것이 어리석어 보이고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말이다. 삶은 견디는 것이니 오드리도 견뎌야만 한다. 처음 겪는 천둥과 벼락을 그저 잘 이겨내기를, 또한 비가 빨리 그치기를 바랐다.

밖이 훤하다. 오드리가 폭풍 치는 밤을 잘 보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마당으로 나갔다. 비구름이 물러난 한여름의 마당은 언제 폭풍이 쳤는지 알 수 없게 청량했다. 초록 풀 위에 까만 오드리가 벌레를 잡아먹고 있다. 이름을 부르니 종종거리며 내게로 달려왔다. "꼬꼬꼬" 아침 인사를 했다.

무서운 밤을 잘 지새운 오드리가 기특했다.

닭은 머리가 나쁘다는 통념과는 달리 오드리는 아주 똑똑하다. 내가 부르면 달려와 30센티 거리를 두고

언저리를 맴돈다. 시선을 주지 않으면 다가와 부리로 종아리를 쪼기도 하고 마당으로 나가면 특유의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해 닭장으로 비를 피할 줄도 알고 젖은 날개를 한쪽씩 펴서 일광욕도 한다. 동네 고양이 가족이 오면 2m의 간격을 두고 제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경계를 하는듯하다. 고백하건대 나의 사진첩에는 온통 오드리다.

오드리는 23일 만에 스스로 당차게 알을 깨고 나왔다. 동그란 알이 깨지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오드리는 알에서 나오기 전부터 삐약 소리를 냈다. 생명의 시작 소리에 가슴이 얼마나 철렁하던지. 완전히 깨고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알 속에서 계속 삐약 댔다. "엄마 거기 있어요? 저 나가요. 어디 가지 말고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촉촉이 젖은 몸으로 태어난  기진한 오골이는 팔딱거리는 심장을 부여안고 몇 시간 동안을 쓰러져 꼬물거리기만 했다. 마치 인간 아기가 태어나 24시간 정도를 그저 뱃속처럼 잠을 자는 것이랑 닮아 있었다.


온 가족은 오드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밤낮으로 지켜보았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보는 모습에 온 가족은 바람 박수를 쳤다. 소리를 내면 놀랄까 봐 허공에다 손만 휘젓는 소리 없는 박수, 바람 박수.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커지고 입은 하품하듯 커졌다. 어린 오골계는 사람 아기 못지않게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컸나 아침에 눈뜨자마자 오드리에게 달려갔다.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보고 싶어 안달을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처음, 닭을 부화시켜 보겠다고 하는 딸에게 아파트에서 어떻게 닭을 키울 거냐고 나무라듯 뱉었던 말들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자라고 보니 암탉이다. 처음엔 녀석을 '오골이'라고 불렀다. 나쁘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어느 날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오드리 헵번'이 떠올랐다. 맞다! 마음과 몸이 모두 아름다운 헵번, 오드리 헵번, 우리는 오골이를 '오드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꽃 피는 봄날에 오드리는 아파트를 벗어나 시골로 이사를 왔다. 오드리에게 작은 닭장을 지어주고, 추울까 봐 따듯한 전등도 켜주었다. 시골집엔 며칠씩 사람이 없어서 화재 걱정은 되었지만 오드리 걱정보다는 덜했다. 일이 있어 도시로 나올 때  나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도시의 일을 마치고는 오드리가 걱정되어 150km나 떨어져 있는 시골로 달려가는 모습이란!

비록 폭풍을 처음 경험하긴 했어도 이번 오드리의 첫여름의 기억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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