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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2. 2024

고비나물을 아시나요?

어설픈 시골생활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들과 산은 온통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도토리와 밤, 우거진 숲 그늘엔 버섯과 온갖 양치류와 산나물이 자란다. 아무리 먹을거리가 가득해도 거두는 수고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허리를 굽혀야 하고 눈도 바쁘게 돌아간다. 점점 두둑해진 바구니에 기분이 좋아져도 또다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올봄, 봄나들이하듯 망태기를 둘러차고 산에 가지 않으려냐며 이웃은 내게 물었다. 고될 것이라는 생각은 차치하고 봄 소풍 생각만으로 신나게 따라나섰다. 이웃은 선심 쓰듯 비밀을 알려주었다. 저기 보이는 골짜기엔 고사리가 많고 요쪽 등성이엔 두릅이 많다며 알려주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아마도 내게 비밀을 가르쳐 준들 소용없을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그녀의 예감이 맞았다. 사실 그녀의 몫까지 따고 싶지도 않았다. 진즉에 경쟁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정말로 산의 경사가 심해서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산나물이 아무리 지천이라도 내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처음 배운 산미나리를 구별하느라 눈에 힘만 주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봄볕에 등이 따끈해졌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가느다란 시냇물이 바로 옆에서 흐른다. 물가엔 뾰족하게 버들이 피고 온갖 새들이 하늘을 난다. 고개를 한껏 들어야 볼 수 있는 하늘과 만나는 산의 경계는 경이로웠다. 숲에 안겨 그녀가 내려올 때까지 온전한 봄을 만났다. 가끔 멀리서 이웃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름 나를 배려해 위치를 알려주는 거다.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잘 다녀오라고 소리쳤다. 그날의 봄볕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기척이 났다. 그녀의 망태기는 그 새 불룩해져 있었다.

그녀는 나의 망태기가 텅텅 빈 것을 보며, 히죽 웃

으며 나의 기분은 괜찮은지 살피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대로 가득 뜯은 산나물로 즐거웠고 난 나대로 봄 산의 정령을 만나 행복했다.


일 년간 두고두고 먹을 마른 고사리와 고비나물을 샀다. 마른 고비와 고사리나물엔  그녀의 봄 걸음걸이와 양팔의 힘과 바지런한 손길이 담겨있다.

삶는 시간을 재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 널다란 앞마당 햇살에 널어 놓는 지혜도 함께.


자연에서 온 온갖 먹을거리엔 셀 수 없는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먹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찌운다.


뜯고, 삶고, 말린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원산지는 확실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 우리 집 앞산에서 뜯어온 나물들. 시골에 살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토종을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제사상에 올리거나 비빔밥을 해 먹으려고 장에서 나물을 찾아보면, 대부분 중국산이고 그나마 있는 국산은 비싸서 손에 쥐었다 결국 다시 내려

놓게 된다. 그나마 고비나물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사람들에게 고비라는 산나물은 점점 잊혀간다.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갖가지 맛들도 점점 사라져가니 어쩌면 좋을까!


내가 기억하는 고비나물은 외조부에게서 왔다. 어머니가 대물림하고 내가 또다시 고비를 기억한다. 여덟 살 때 외할아버지와 봄나물을 뜯으러 산에 간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손녀의 손을 잡고 산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끝없는 가르침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남은 기억은 온전치 않다. 나는 숲속에서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동그란 뭉텅이로 솟아있는 고비와 고사리를 뜯었을 것이다. 내 작은 손가락은 고사리가 꺾이며 튕겨지는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껏 살면서 '고비 '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물론 맛도 그렇다. 이웃의 정성에 잊혔던 고비나물이 나의 세상에 재등장 했다. 여덟 살 시절의 기억도 고비나물과 함께 생생하게 배달되었다.

내 버전으론, 외할아버지가 손녀와 함께

했던, 애틋하고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뜯어 할머니가 만드신 고비나물 맛을 육십 넘은 손녀가 되살려 냈다.


마른 나물 50그램만 꺼내도 한 접시가 된다. 가느다란 실 모양을 한 고사리와 고비나물은 데쳐지며 본 모양을 되찾는다. 다시 찬물에 여러 번 헹구고 담가 놓으면 점점 더 제모습을 찾아 통통해진다. 하루 이틀 우려내서 독기를 빼야지 먹을 수 있다. 모든 우리 음식엔 기다림이라는 조미료가 있다. 그 과정엔 정성과 사랑도 함께한다. 서둘러서도, 아무리 빨리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진득해야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나물을 만들며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같은 양치류이고 모양도 사는 곳도 비슷함에도 우려낸 물 색이 달랐다. 고비 우려낸 물색은 붉고, 고사리는 갈색이다. 붉은색을 내는 것들은 대개 심장에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고비가 심장에 좋은 음식일까? 찾아보아도 그런 말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약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뭐니 뭐니 해도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들이 가장 큰 효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나물을 뜯으러 가는 경쾌한 발걸음, 발견의 순간에 느끼는 환희, 봄 햇살, 삶고 말리는 정성, 깨끗한 곳에 보관하는 마음, 자식을 먹이려 하는 어머니의 마음등이,..


까맣게 마른 고비를 데치고 우려낸지 이틀째, 소금과 마늘, 참 기름, 들깨가루를 넣고 바락바락 주무른 뒤 볶는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모든 음식들은 부엌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나오는 듯 보였다. 수많은 지혜가 필요하고 시간과 노동이 더해져야 한 접시 고비나물이 완성된다는 걸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안다. 잊고 있던 고비가 꺼내져 딸에게 연결된다. 엄마가 될 딸들은 내가 만든 고비나물 맛을 기억해 내고 또다시 고비나물을 만들며 나와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겠지. 막 완성된 고비나물 간을 본다. 울 엄마 손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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