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전원생활
해마다 언 땅이 녹기 시작하면 모종과 씨앗을 심을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오가는 길에 화원이라도 있으면 심을 곳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사기도 했다.
모든 물건값이 모두 오천 원 미만인 다이소가 보인다. 딱히 사야 할 물건이 없어도 눈요기하러 들어갔다. 진열된 상품들을 보면 계절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구부터 봄 꽃씨들이 즐비하다. 여전히 오싹해서 점퍼를 벗지 못하고 있지만 봄은 오고 있다. 시스터 데이지 씨앗에 눈이 갔다. 꽃씨에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능력과는 반대로 자본주의는 1000원의 가치를 부여했다. 일반 모종 가게의 씨앗 값에 비하면 싼 셈이다. 가볍게 느껴지는 1000원에 소비심리가 흔들거린다. 낚였다는 사실보다 화려한 데이지 꽃이 펼쳐질 꽃밭을 상상한다. 냉큼 꽃씨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구절초 같기도 하고 보랏빛 들국화 모양이랑도 닮아있어서일까. 데이지 꽃은 어디서 많이 보았던 것처럼 친근하다. 오래전 데이지 꽃을 처음 본 것은 지인의 시골집에서다. 꽃의 지름이 5센티가 넘게 커서 멀리서도 아주 잘 보였다. 그믐 밤을 환히 비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꽃씨를 샀던 마음과는 다르게 씨앗은 일 년이 넘도록 골방에서 잠을 잤다. 데이지는 그렇게 내게서 까맣게 잊혔다.
계절은 쉬지 않고 시간을 집어삼켰다. 겨울의 오싹한 날씨는 몸살을 데려와 내 몸에서 두 달을 지내다 사라지며 이마에 주름을 남겼다. 해가 조금씩 길어지더니 봄 냄새가 스민다. 북서풍도 질세라 남동풍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골에 들어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봄에 심을 씨앗들을 점검했다. 박스 벽 쪽에 납작 붙어있는 데이지 꽃씨를 발견했다. 아! 데이지... 소풍날 보물을 찾은 기분이 이랬을까. 꽃씨를 가슴에 품으며 올해엔 잊지 말고 심으리라 다짐했다.
늦도록 봄을 시샘하듯 눈이 오고 쌀쌀한 날들이 지나갔다. 전깃줄 위로 봄의 전령사인 제비가 앉았다. 봄이 오면 하는 일 중 하나는 양지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땅을 쳐다보는 일이다. 쩍쩍 갈라진 흙 사이로 연둣빛들이 등장했다. 데이지를 어디에 심을까. 날씨는 아직도 동장군을 잡고 있건만 나도 모르는 사이 데이지를 심을 곳을 찾는다. 표고버섯을 키우려 세워둔 참나무 아래가 눈에 띄었다. 햇살이 강하지 않아 모종을 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씨앗통 맨 위에 두었던 데이지 꽃씨 봉투를 꺼냈다. 깨알같이 새까만 데이지 씨앗은 흙을 덮어주기 민망할 정도로 작았다. 흙을 씨앗 크기의 세배로 덮어준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씨앗 크기의 세배를 덮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갓난아기 보듬듯 흙을 부숴 곱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가는 나뭇가지를 주어 씨앗을 뿌릴 곳에 선을 그었다. 까만 씨앗은 흙에 떨어져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주문을 왼다. 잘 자라라, 잘 자라라. 덮는 둥 마는 둥 흙을 덮었다. 비가 온 후라 땅은 촉촉해서 싹이 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씨앗을 심은 사람의 마음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마당 한편을 본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마음이다. 씨를 뿌린 지 2주가 지나자 조바심이 밀려온다. 혹시 일 년이 지난 씨앗이라 발아가 되지 않는 것일까. 흙을 너무 많이 덮어버렸나. 토양이 문제가 있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꽃씨 봉투에 쓰여있는 안내문엔 싹이 나기까지 짧게는 2주에서 3주나 걸린다고 한다. 춥기로 유명한 홍천이 원인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씨앗을 심은 지 3주가 지나 시골에 들어왔다. 흙을 비집고 나온 연둣빛 싹이 나란히 줄을 섰다. 떡잎은 양팔을 길게 벌리며 나를 반겼다. 나왔구나! 흰 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순백의 데이지 꽃이 바람에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또다시 우물에서 숭늉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