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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석, 전원주택의 심벌

어설픈 전원생활

by 김옥진

5월은 사부작거리며 오는 듯 마는 듯 꽃들을 깨운다. 화려한 황제 붓꽃은 꽃분홍 작약의 터질듯한 봉우리를 깨우며 땅으로 스러진다. 이년이 넘도록 애를 태우던 데이지 꽃이 만개한 올봄은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마누라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늦잠 대장 남편은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시골의 다디단 아침 공기에 감탄을 한다든지 저 멀리 물 댄 논에 이는 잔물결의 아름다움, 이슬 맞은 꽃들의 향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나 매형 좀 말려봐 저러다가 쓰러질 것만 같아. 저 돌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벌써 1루 베를 다 까셨어." 게으름의 극치를 누리며 아직 꿈나라를 날고 있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꾸물거리며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아침 공기를 만난다. 저만치 일에 정신 팔린 남편이 보인다. 게슴츠레 뜬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꽃밭 한편에 가지런히 놓인 디딤석, 바로 내가 그토록 소원하던 디딤석이 깔려 있다. 자다 일어난 날 보고 함빡 웃는다. "자, 맘에 들어? 멋있지? 오늘 남은 디딤석 중 1 팔레트도 마저 깔아볼 거야" 결의에 찬 남편은 힘이 드는지 씩씩대며 말을 했다. 힘에 부치지만 근사해진 꽃길이 남편도 맘에 드는 눈치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어머니가 남기신 시골집은 계륵이었다. 그냥 두 자니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이 풀들이 무성해졌고 관심을 갖고 가꾸자니 몸이 힘들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원주택이 있어서 좋겠다고 했다. 디딤석을 향한 열정이 시작된 시기는 옆 땅 주인이 객토를 해서 비만 오면 우리 집 쪽으로 비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집도 마사토 100톤을 마당에 부었다. 기계의 도움도 빌어서 흙을 펼쳐 놓았지만 구석구석 손이 가는 일은 남아있었다. 도시인의 삽질을 상상해 보았는가! 남편과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수천 번의 삽질을 했다. 그러고는 며칠씩 앓아누웠다. 그 후 마당의 일부는 절간 마당처럼, 남은 일부는 잔디반풀 반인 초록 마당으로 보기 좋게 남았다. 그래도 아직 비가 오면 마당에 물이 괜다.


질척거리는 마당을 지날 때마다 디딤석이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눈먼 돈만 생기면 디딤돌을 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눈먼 돈 운운하는 것은 시골에 멀쩡한 자금을 투척하기가 싫다는 속내임을 안다. 사실은 여유 자금이 없어서, 도시의 생활이 바빠서, 몸이 아파서, 갖가지 이유는 언제나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 열거한 이유가 사라졌을까? 아니다. 그냥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뿐이다. 올해 시골집 해야 할 일 중에 최우선 순위로 '마당에 디딤석 깔기'를 놓았다.


홍천 철물점에 가서 그동안 눈도장을 몇 번씩이나 찍어두었던 구멍이 뚫려 있는 현무암 디딤석을 골랐다. 8cm 두께의 부정형 돌의 한 팔레트는 1.3톤이며 돌 한 개의 무게는 평균 40킬로다. 4 팔레트를 샀다. 디딤석 까는 일은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인부를 쓸 경우 하루 일당이 50만 원이라며 운을 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편을 바라보며 하품을 했다. 철물점 주인은 눈치 빠르게 꼬리를 감추었다. 뭐 어느 집은 여자 셋이 사는데 쉬엄쉬엄 자기들끼리 디딤 석을 깔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복권 당첨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결국 남편은 디딤석을 까는 일에 당첨되었다. 디딤석 노래하는 마누라 덕에 그는 디딤돌을 모두 깔 때까지 고생길이 열렸다.


크레인이 마당에 들어와 현무암 네 덩어리를 내려놓고 갔다. 마음 한편은 설레지만 또 다른 한편은 현무암 무게만큼 무겁다.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설레는 마음만 남기기로 한다. 이틀 후, 남편은 새벽 꼭두에 일어나 꽃밭 길가에 디딤 석을 놓았다. 오늘은 그만하자고 했다. 나는 마당에 줄을 띄우고 내일 디딤석을 깔 자리에 마사토를 깔았다. 남편은 내일도 죽어났다.

삐뚤빼뚤 엉터리라도 좋다. 디딤석만 깔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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