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 생각

'혼자'를 연습하러 갔습니다.

어설픈 시골생활

by 김옥진

엄마, 저 혼자 엄마 집에서 잤어요.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 단 한 번도 엄마 집에서 혼자 잔 적이 없었거든요. 뭐 용기라고 이야기할 것까진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용기가 필요했어요.

저는 원주 갈 일이 생겼고, 엄마 사위 재성이는 속초로 여행을 떠난 참이었지요. 엄마도 아시다시피 엄마 사위 재성이는 저의 껌딱지잖아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날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쓰인다고 어찌나 징징대던지요. 속내는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저는 알고 있어요. 원주에서 일을 마친 후 한참을 망설였어요. 집으로 갈까? 홍천으로 갈까? 소풍놀이를 끝낸 재성이 픽업을 핑계로 속초로 갈까? 속초에서 혼자 좋은 숙소를 잡고 바다랑 함께 잠이 드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결국 오늘의 제일 큰 주제 '혼자'이니 어디서든 혼자 있다면 상관이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엄마와 단둘이 지낼 용기를 꺼내기로 했지요. 어스름 노을빛을 뚫고 홍천으로 달려갑니다. 평일 국도는 번잡하지 않아 좋았어요. 차창을 모두 여니 골짜기마다 가득 찬 밤꽃 향기가 차 안에 가득 차더라고요.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뿜는 숲이 있다는 것이 경이로왔어요. 나이 먹어도 새삼스러운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니 홀로 있는 엄마 집이 보여요. 아직도 엄마가 없는 집은 그립고 쓸쓸하고 외로워요. 희미해지다가도 짙어지는 여러 우울의 감정들은 죽고 나서야만 비로소 사라지겠지요. 그냥 내버려 두자고 또다시 다짐해 봅니다. 문을 열기 전에 마당과 꽃밭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계절 꽃들은 앞서니 뒤서니 피고 지고 제멋대로 뻗어나가요. 참, 홍천 집에는 엉뚱한 엄마 손녀 예슬이가 부화시켜 키운 오드리가 살아요. 혹 무슨 일이라도 날까 싶어 집으로 돌아올 땐 닭장에 가둬두곤 했는데 지금은 그대로 두고 옵니다. 자유롭게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는 오골계 오드리를 집사로 둔 셈이에요. 녀석이 날 보더니 반갑다고 뒤뚱거리며 달려와요. 쓸쓸한 집이 오드리 덕분에 생기가 생겼어요.

엄마가 사랑하는 맏이, 기서가 가꾼 채소들도 잘 자라고 있고 마당의 디딤돌 공사도 그럭저럭 마무리가 돼가고 있어요. 디딤돌을 함께 깔면서 엄마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삐뚤빼뚤 깔아놓은 디딤돌을 보시면 분명 한마디 하실 거라며 모두 웃었답니다. 그저 인생은 낯선 일들로 가득해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살 수 없다고 인정하며 살기로 했답니다. 젊었을 때는 참 아쉽다고 여겼는데 지금에서야 이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엄마방 창문을 활짝 열었어요. 뜨거운 바람과 차가운 바람이 뒤엉켜 들어옵니다. 캐머마일 단내도 논에 가득 찬 물기를 머금고 저를 반깁니다, 개구리 합창을 들으며 한참 동안 심호흡을 했어요. 혹 바람 사이에 엄마 냄새가 들어있을까 하고 다시 한번들이 쉬었습니다. 애쓰는 저를 보고 엄마도 애를 쓰셨겠지요. 자, 오늘은 엄마랑 잡니다. 종일 운전을 해서 피곤합니다. 엄마의 잠드는 시간, 아홉 시 뉴스 시간이에요. 저도 엄마처럼 그 시간에 잠을 자려합니다. 도시생활의 습관이 바뀔지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그냥 누웠습니다. 창을 열어 놓으니 가끔씩 바람이 제 얼굴을 쓰다듬네요. 엄마의 손길이려니 생각하려 해요.


아주 잘 잤습니다. 여러 꿈들도 꾼 것 같지만 기억나질 않아요.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듭니다. 혼자여도 잘 지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가끔 혼자이고 싶을 땐 엄마를 만나러 올 예정입니다.


내일은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에요. 우리 가족들 모두 재밌고 즐겁게 기일을 지낼게요. 엄마도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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