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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뽑기

어설픈 시골생활

by 김옥진

장대비가 내린 어젯밤, 풀들은 한여름 뙤약볕에 말라버린 목을 축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당을 깔끔히 하기 위해서는 잡초의 뿌리들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풀을 뽑아야만 한다. 모자와 장갑, 팔토씨로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매의 눈으로 곳곳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잡초들을 뽑는다. 비 온 뒤 잡초 뽑는 맛이란! 뿌리 끝까지 모양이 흩트리지 않고 뽑혀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마법에 걸려든 사람처럼 그늘커튼을 쫓아가며 정신없이 풀 뽑기를 했다

풀은 쪼그리고 앉아 땅에 엎드려야만 보인다. 고개를 쳐들고는 절대로 풀을 볼 수 없다. 하찮은 잡초가 고개 숙이는 겸손을 깨우쳐 준다. 여름의 시골집을 유지하는 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풀 뽑기다.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잡초가 눈에 띈다. 아무 데서나 자라는 잡초는 잘못이 없다. 풀이 있어야 할 곳을 정해 놓은 사람들에게만 골칫거리인 게다. 땅에 코를 박고 풀을 뽑고 있는 내게 이웃 오이 아저씨는 늘 혀를 차며 말한다. "거, 풀 못 이겨요!" 풀을 이길 자는 세상에 없단다. 평생 농사를 지은 이의 지혜로운 말이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해서야 시계를 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딴 세상을 다녀온 기분이다. 며칠 못 가서 또다시 풀들은 아우성을 칠 것이 뻔하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이 좋다. 앞뜰이 훤해진다.

그 사이, 손끝은 모래알처럼 거칠해지고 손톱사이에는 고운 흙이 나란히 들어찼다. 나 혼자서 온 세상의 풀을 다 뽑은 듯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풀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딱한 나를 알아차렸다. 풀들에게 놀아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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