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에게선 묵은 된장 내가 난다.
블랙홀보다 더 깊은 눈빛은 마주치기가 미안하다. 연두의 봄처럼 숫기없는 녀석은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서로의 거리는 50cm이다. 엉킨 털을 빗어 주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사춘기 사내 녀석의 길어진 앞머리 모양을 하고 유유히 한적한 논밭을 방황한다.
흰 눈이 내리는 들녘, 순돌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개로 변한다.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도 결승선 없는 논길을 정신 줄 놓고 내뺀다. 홀로 시린 겨울을, 봄을, 여름의 소나기를 맞으며 붉은 낙엽 같은 날들이 흘러간다.
집 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저 멀리 누렁개 순돌이가 마당 한가운데에 앉아있다. 축 처진 몸뚱이가 벌떡 선다. 우리를 향해 쏜살같이 뛴다. 차에 부딪쳐도 상관없다는 듯이. 늙은 몸뚱이에 달린 꼬리가 마당을 쓴다. 그래, 반갑다.
딱딱하게 굳은 몸뚱이를 묻으러 간다.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몸서리가 쳐친다. 순돌이의 영혼은 갈대밭의 바람을 타고 올랐을까. 흰 눈 위에 찍힌 녀석의 발자국에 마음이 저민다. 서슬 퍼런 파란 겨울 하늘에 기러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