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Carpe diem)

유방암

by 김옥진

내일은 결전의 날이다. 유방암 치료를 하기 위해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이라서다. 사형수가 집행의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럴까. 심란한 마음을 어르고 달랜다.


항암 주사를 맞는 삼 개월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낼까. 구토와 메스 거림, 달아나버리는 머리카락을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알 수 없는 세계를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그냥 가볍게 남들 다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까. 가만히 있으나, 부지런히 다니나, 시간은 똑같이 흐를 텐데. 벌써부터 토악질이 나는 기분이 드는 건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워서일 거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내보자. 말라버린 나뭇잎이 되어 바람이 데려가는 데로 이리저리 다녀보자. 항암의 부작용인 면역저하로 몇 달간 가지 못할 불가마에 간다. 단 하루 만이라도 후끈 달아올라 내 몸을 휘저을 것들이 맥을 못 추도록, 불구덩이에서 힘을 빌려와야겠다. 달구어진 몸엔 염증이 맥을 못 춘단다. 면역력도 최대로 끌어올려준다 하니 못할 것이 없다. 요즘 자주 불가마에 갔더니 피부에 광이 난다. 볼그족족해진 사과 같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싱긋 웃어본다.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기분이다.


항암주사를 맞기로 한 후 제일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 부작용으로 100%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민머리, 상상이 되질 않는다. 머리를 삭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겸허히 사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모색한다. 항암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삭발을 하기, 가발도 준비한다. 주문한 가발이 어찌나 빠르게 배달이 되던지. 평상시에는 빠른 배달을 좋아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것만은 좀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문 다음 날 새벽에 문 앞에 도착했다. 배달된 가발의 감촉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이리저리 썼다 벗었다를 수없이 한다. 미장원에 가서 내 스타일에 맞추어 다듬기로 한다. 다행스럽게도 가발을 써보니 제법 자연스럽다. 꼭 필요할 때만 가발을 쓰고 그냥 삭발을 하고 다니고 싶다. 하지만 겨울이니, 모자를 쓴 우는 기분으로 자주 가발을 쓰기로 결정한다. 가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올겨울바람은 세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겨울에 바람이 불지 않기를 기도하다니. 억지를 부리는 내가 우습다. 이렇게 억지라도 부려야겠다.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려야겠다.


유방암 진료센터에는 갖가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있다. 나도 곧 모자가 필수품이 될 터. 어떤 모자가 멋스러울까 유심히 살핀다. 까만 방울이 달려 있고 짧은 챙이 달린 스키 모자가 맘에 든다. 끈이 달려있어 볼까지 덮어지는 모자다. 면으로 된 개량한복에 어울리는 주름 많은 감색 모자도 눈에 띈다. 얇고, 면으로 된 듯 보여 집에서 가볍게 써도 좋겠다. 드물게 가발을 쓴 사람도 눈에 띈다. 제법 멋스럽다. 평상시 살피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알지 못했던 세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웃었으면 좋겠다. 평소보다 더 많이, 일부러 웃기를 바란다. 그냥 세상은 늘 어찌할 수 없는 상황투성이로 되어 있다. 그저 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게 삶이다. 무엇이 올지 몰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바보다.


오늘은 내 것이고 내가 꾸미고 즐기는 시간으로 지난다. 어디 한번 안겨봐라. 춤추며 즐겨보자.

"카르페디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라틴어로 "현재를 잡아라" 또는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송가》에서 나온 표현으로, 전체 문맥은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다.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현 순간에 충실하라는 조언이다.

출처 -AI per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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