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첫 항암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다. 내 인생 세 번째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니 즐거운 맘으로 받아들인다. 토하면 토하면 되고, 머리칼이 빠지면 가발을 쓰면 된다. 나를 돌보았던 날이 언제 있었을까. 자, 이제부터라도 이기적으로 나를 돌본다.
잠에 빠져 있었다. 아직 깜깜한데 남편 전화가 울린다. 밤에 오는 전화는 불길하다. 끊어진다. 잠시 후 또 울린다. 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남편은 "어? 처남 웬일이야" 큰 동생이다. 누나가 항암주사 맞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깼단다. 내 진료 시간을 정확히 몰라 무작정 병원으로 왔단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동생이 아프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괜스레 일찍 잠을깨윘다고 겸연쩍게 말한다. 내가 주사를 맞는 동안 홀로 있을 매형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나 뭐라나. 나를 생각해서 오려 했다는 걸 뻔히 아는데 그렇게, 예쁘게, 말을 한다. 가슴 저 밑바닥이 서 뜨끈한 것이 올라온다. 결국 우리는 병원으로 출발하려 했던 시간에서 30분 더 일찍 일어났다. 항암제 맞는 생각을 잊고 동생 볼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병원이라는 곳은 바쁘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뭔 설명도 그리 많은지. 지금도 어리바리한데 더 나이가 더 들면 병원에서 하는 말들은 당최 이해할 수 없을듯하다. 과연 몇 살부터 병원에 발을 끊어야 할까.
유방암 전문 간호사로부터 항암주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는다. A4용지 두 장 반이나 되는 안내서를 설명하느라 침이 마른다. 물이라도 떠다 주고 싶다. 설명을 마쳤는데 셀로판지로 포장이 된 밤색 털 모자를 덥석 안겨준다. 유방암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카락이 빠질 것을 생각한 선물이란다. 측은지심의 눈빛, 공감의 눈빛에 얼어있던 맘이 녹는다. 아픈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천부적으로 갖는 품성이 아닐까. 그런 맘이 없으면 일하기가 참 힘든 직업이다. 또다시 따듯해진다. 모자 안엔 예쁜 손 글씨로 항암치료를 잘 이겨내라는 격려 편지가 들어 있다. 서울 성모병원 문 애리라고 쓰여있다. 간호사인지, 직원인지, 그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한 땀 한 땀 무늬를 놓았던 손길을 느낀다. 눈물을 안 흘리려고 작심했는데 결국 코끝이 빨개진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선의를 느낄 때 감동한다. 착한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알 수 없는 김애리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1시 진료는 지연되어 12시가 넘어 교수님을 만났다. 차분한 그에게서 신뢰를 느낀다. 다정을 느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병이 다 나은듯하다.
오후 두 시가 다 되어 항암 주사 혈관을 잡았다. 환자가 너무 많아 복도에서 열 명쯤 되는 환자들이 줄줄이 주사를 맞고 있다. 나도 복도에서 주사를 맞는다. 아픈 사람이 참 많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닷새 전부터 입맛이 돌았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안 먹었음을 알리는 배꼽시계가 정신을 차린다. 입맛이 뚝 떨어졌으나 남편에게 보리차 250cc 와 작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주사를 달고 복도에 서서 먹었다. 부끄러웠으나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바로 버렸다. 돌아서는 남편에게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벌써 먹었단다. 나는 지금껏 괜한 것들을 걱정하며 살았다.
드디어 두시에 TC라는 항암주사를 맞는다. 약은 두 가지다. 중간중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리식염수에 항 히스타민제가 섞인 수액을 맞는다. "자, 이것이 첫 번째 항암제입니다. 처음이라 혹시라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어딘가 불편하시면 바로 알려 주세요" 약을 연결하고 간 담당 간호사가 연신 나를 들여다본다. 약 삼십 분이 지난 후 이상 증세가 없다고 하니 점적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항암제는 결국 독이나 마찬가지다. 내 몸의 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성분이다. 적군이다. 물리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들이 내 몸 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들어오는 것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살피기로 한다. 수액세트에 떨어지는 방울 수를 노려 본다. 약 일분에 50방울이 떨어진다. 그런데 아무런 증상이 없다. 약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냥 일반 수액을 맞는듯하다. 더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정도가 혈관으로, 입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설명을 들었어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네"소리만 한다. 사실 알아서 뭐 하랴.
어느 순간부터 꼬치꼬치 따지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걸까. 물방울을 세고 있자니 물방울 최면에 걸린 듯 눈이 감긴다. 내 코 고는 소소리에몇번이나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나 민폐였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꿀잠을 잔것 같은데 이제 겨우 삼십 분이 흘렀다. 아직도 멀었다. 또다시 눈을 감는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자극했지만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부터는 안대를 가져와야겠다. 슬슬 발도 시리다. 핫팩도 가져와야지.
오후 여섯 시 반, 장장 다섯 시간 만에 첫 번째 항암주사 투여가 끝났다. 종일 병원에 있었다. 병원으로 소풍을 온 것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배가 고프다고. 항암주사 맞고 배고픈 여자는 흔치 않을 터, 그 말을 들은 남편이 폭소를 터뜨린다. 나는 미역국을, 동생은 순두부, 남편은 고등어구이를 시켰다. 나만 그릇을 몽땅 비웠다. 두 사람은 밥을 남겼다. 스트레스가 남긴 밥에 담겨있다. 병 걸린 나는 편하고, 그들은 불편하다. 결국 이래서 세상은 더하고 빼면 공평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