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3차 6일째
3차 항암 6일 차. 너무나 멀쩡히 지나간 닷새간의 기간이 황홀하다. 입맛도 그럭저럭 유지된다. 이번 3차 항암은 그렇게 고생하지 않으며 넘어가려나 했다. 웬걸, 6일 차가 되어 일장춘몽임을 깨닫는다. 고양이 톰이 날마다 생쥐 제리에게 골탕을 먹는 것처럼 기대와 실망, 고통을 맛본다. 입맛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2차 항암 후 나타났던 입맛실조 증세랑 똑같다. 내 눈에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충전제는 먹거리가 아닌 사물처럼만 보인다.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비현실감에 마치 엄마가 사라져 버린 아기가 된 기분이다. 아무도 돌봐줄 이 없는 홀로 된 아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정신의 세계가 있을 수 있는지. 지금껏 살며 최초로 경험하는 또 하나의 신세계다. 하지만 유기체는 공급망이 완성되어야 산다.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뭔가라도 넣어야 한다.
만 하루 반을 거의 금식상태로 보낸 후 겨우 생각난 것이 딸기다. 아쉽게도 호위무사가 사 온 딸기는 색과 모양만 딸기다. 어쩌다 사 온 것이 최상급이 아니라서도 그럴 테고 내 입맛도 문제일 테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러키 세븐' 일곱 개가 뱃속으로 들어간다. 행운의 숫자 7개를 그냥 입에 넣어 삼켰다. 막연한 바람일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거라도 믿고 싶다. 하루 반 사이 1킬로가 빠졌다.
기운이 없으니 하루 종일 잔다. 저녁이 돼서야 무청 선지해장국이 떠오른다. 무청시래기는 이번 항암치료에서 나를 살려낸 일등공신이다. 왜 그것이 당기는지는 알 수없다. 요 며칠 다시 동장국이 쳐들어 왔으니 배달을 시킨다. 무청과 함께 온 선지를 섞어 다섯 수저를 먹었다. 후춧가루가 입에서부터 위까지 존재를 들어낸다. 맵다. 그래도 밥이 조금이라도 넘어가니 기운이 난다. 다행이다.
종일 잔 결과는 또다시 긴 밤을 뜬눈으로 새우게 한다. 몸이 하라는 데로 따라야지 별수 없다.
한밤중에 녹두 빈대떡이 떠오른다. 엄마의 손길, 목소리, 맛이 엉킨 사랑 복합체인 녹두 빈대떡, 명절이 아니어도. 끼니때가 되지 않았어도 당장 먹고 싶다. 입맛이 고개를 드는걸까. 엄마는 오늘, 날 살리러 녹두 빈대떡이 되어 내게로 온다. 새벽 세시, 코스코서 사온 냉동 눅두빈대떡을 꺼낸다. 1/4쪽을 새콤한 초간장에 듬뿍 찍는다. 엄마가 내 몸에, 내 맘에 들어온다. 편안하다. "남겨진 나날들" 책을 읽고 토지 2권 스무 장을 읽고, 읽기를 쓴다. 까맣던 하늘이 흐끄무리 청색을 띤다. 아침이 온다.
사진출처: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 마녀비스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