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항암3차 11일째 , 난 살아나는 중이다.

by 김옥진

3차 항암 5일 후부터, 나는 동굴 속에 있다. 입맛과 의욕은 차치하더라도 걸을 기운이 없다. 몸뚱아리를 움직이는 것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고 사지는 거적처럼 너덜너덜하다. 체중은 급기야 54킬로대로 내려간다. 체중의 10%가 빠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자면 되는 아주 쉬운 답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잠도 잘 수가 없어 불면의 괴로움도 혹독히 치른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며칠째 보고 나니 뇌가 멈춰버린다. 책을 보며 항암 기간을 보낸다 했다. 그것은 최소한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에 해당된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부엌 쪽과 세탁실은 당연히 매일 결석이다. 음식을 만들지 않으니 냉장고 열 일도 없다. 대신 다른 식구들이 부엌을 도맡았다.


나는 지금 그저 뭔가를 조금이라도 입에 넣어야 하고, 비몽사몽 쪽잠을 자야 하고, 약을 먹는 좀비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3차 항암 후 7일 차부터 또다시 뿌연 소변을 본다. T/C 치료 약 중 한 가지가 방광에 문제를 일으킨다 한다. 두 번째 항암부터 이런 증세로 고생을 했다. 또 그럴까 봐 정말 열심히 처방된 항생제를 먹었다. 다 나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항암제 자체가 면역을 또다시 떨어뜨린다는 쉬운 사실을 그새 잊었었나. 몸에다가 면역 떨어지는 부작용 약을 넣어 놓고서 딴소리를 하는 나는 바보인가. 그래도 이러다 말겠지 하며 며칠을 보낸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닌듯싶어 급기야 다니던 동네 내과를 간다. 참고로 지난번 방광염 때 대학병원서 받은 처방전을 가셔갔더니 고맙게도 똑같은 항생제로 처방해 준다. 동네 병원을 간 김에 영양제도 맞겠다고 했다. 어느 코에 걸려서라도 빨리 징그럽고 어두운 동굴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


영양제를 맞아서일까 아니면 회복이 될 시기라서일까 입맛이 돈다. 콩나물이 먹고 싶다. 염분이 부족했는지 국밥집의 짭조름한 새우젓과 무말랭이에 자꾸 손이 간다. 콩나물은 모두 건져먹고 밥알은 애피타이저로 먹었다. 눈에 물이 돌고 정신이 든다. 걸음걸이에도 올 때보다 힘이 생긴다.


냄새 세포도 정신을 차린 걸까. 어디선가 봄 내음이 날아다닌다. 국밥집 코너를 돌자 평상시 즐겨 찾던 빵집 카페가 나타났다. 밥을 먹었는데도 이리 반가울 수가! 좀 더 다리에 힘을 주고 잰걸음으로 카페 문을 향한다. 사열하듯 진열된 빵들이 나를 유혹한다. 얘들아 제아무리 수단을 동원해 나를 유혹해도 항암제는 굳건하단다. 오늘은 소보루빵을 한 개만 사랑해 줄게. 호위무사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온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지 세 달이 되었다. 딱 한 모금만 마신 뺏어 먹는 커피가 오늘따라 참 맛있다. 영양제와 커피가 콜라보되어서일까. 몸이 꼿꼿해진다. 국밥과 소보루빵을 연거푸 먹다니. 나는 살아나는 중이다.


카페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에 봄이 들어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젊은이들 덕분에 거리 풍경은 더없이 발랄하다. 힘찬 발걸음과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유독 시선이 간다.


시간은 공평한 법, 그래서 그냥 두어도 비운 곳을 채우고 헌 곳엔 새것을 선물한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된다. 할 일은 없다. 그저 시간에 기대어 꽃 피울 날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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