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서 뭐 하시려고요?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토요일 저녁, J 요가원에서 출산에 대한 강의를 했다. 아기의 태어남이, 여성의 출산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내 주장에 동조해주는 그들이 있어 갈 때마다 힘이 난다. 그래서 유일하게 J요가원에 강의를 놓치지 않는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탄생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신 기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기를 받아내는 일만큼 보람되다. 아기를 낳아 기른 요가 선생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겪는 출산과 육아의 모든 일들은 아기를 낳아 키운 엄마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엄마'라는 소리에 모두는 함께 눈물을 그렁거렸다. 아이를 수 없이 낳은 경험이 있더라도 아기를 잘 키웠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없다. 늘 부족하고 수 없이 실수와 후회를 하는 것이 '엄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가 밤새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여자들도 경험을 했건 안 했건 공감되는 것이 아기 낳는 일과 아이 키우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며 직장을 다녔던, 실수와 후회를 반복했던 나의 경험도 나누었다. 여성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공감에 끝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다들 일어서지를 않았다.'엄마가 되는 것'은 잘하던 못하던 다 칭찬받을 일인 거다.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 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대답을 한다.
눈을 떴다. 깜깜하다. 시계는 05:24를 지나고 있다. 여기가 어디지? 잠결에 목이 칼칼해서 물을 먹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다시 잠이 든 기억뿐. 둘째를 낳을 지연의 전화다. 아직 열흘도 더 남았는데, 그래서 맘 놓고 시골집에 왔는데, 정신이 퍼뜩! 몸도 벌떡! 음 시골이구나! 옷 입고 차에 오르기까지 딱 6분 걸렸다. 산과 들의 찬 공기가 차 앞유리에 성애를 만들었다. 운전석만 대충 긁어내고 히터를 최강으로, 바람도 최강으로 올렸다. 십여분 지나니 앞이 선명해지고 강원지역에 비나 눈이 온다는 예보에 염화칼슘 뿌리는 트럭을 재빠르게 뒤로 하고 내달렸다. 양수가 먼저 나온 지연은 이제 막 아기맞이가 시작된듯하다.

아침 7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휴일의 국도는 한산하다. 조바심에 달려온 마음과는 달리 지연은 20%의 진행이 되어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서 지금은 졸리다고 한다. 커튼으로 아침햇살을 차단하고 좀 자 두라고 했다. 아기의 심장박동수는 규칙적이고 열흘 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다. 등은 엄마의 왼쪽에 있으니 왼쪽으로 눕는 것이 아기에게 편하다. 다리 사이에 베개를 고여주고, 커튼을 닫고, 이제 막 일어난 개구쟁이 큰 아이를 데리고 안방에서 나왔다. 밤새 푹 잔 아이는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이럴 때는 조산사가 아니라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말에 많이 불안해했다. 아기 낳는 것을 도와주는 조산사라는 존재 때문에 아내가 집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라 여겼다. 쳐다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출산 중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난 항복할 수밖에 없을 기세였다. 걱정이 태산인 남편은 아주 많은 질문을 했었다. 내가 관찰한 지연은 건강하고 온순하며 아기도 잘 낳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남편의 불안은 제쳐두기로 했다. 세 번의 만남 동안 남편의 불안감 지수는 줄어드는 듯 보였지만 정작 진통이 오고 양막이 열리자 다시 윈래대로 돌아가버렸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은 불안하다는 증거다. 아직 아기를 만날 시간까지는 여유롭지만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나까지 좌불안석이다. 슬그머니 나와서 산을 끼고 있는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기다린다는 것은 출산의 필수 요소이다. 그녀와 아기를 생각하며 나무를, 하늘을, 풀과 꽃을 본다. 느린 걸음은 남편이 준 불안을 가라 앉히고 차분한 출산을 생각나게 했다.

오후가 되었다. 여전히 지연의 진통은 강하지 않다. 불안해하는 남편에게 낮잠을 선물한 후 진통 촉진을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지연의 아파트를 한 시간 동안 함께 걸었다. 밖에서는 진우가 주인공이다. 씽씽카를 타며 내달리는 동안 어미는 성큼성큼 하드워킹을 한다. 역시 걷는 것이 최고다. 진통이 세어진다.

남편은 진통 소식을 온 가족에게 알렸다. 시어머니의 걱정과 친정엄마의 제왕절개 환호는 신경이 쓰인다. 아기 낳는 지연의 염려보다 더 했을까? 부정적 에너지 세례에 지연은 얼마나 더 두려웠을까! 막연한 내 두려움과 맞먹었을까? 정신없었던 첫 아이 병원 출산 경험은 이번 가정 출산의 계기가 되었다. 자신 있는 건강한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전화벨은 꺼두고 걱정은 접어두었다. 시작되었으니 끝날 것이다. 확고한 그녀가 지금 진일보한 아기마지를 앞두고 있다.

제대로 진통이 오는 지연은 이제 남편과 아이를 잊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 아파하는 이를 지켜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요를 선물하는 것이 출산에 이롭다.

남편과 아이를 밖으로 내보냈다. 고요해진 집에서 그녀는 코를 골며 간간히 잔다. 떠들썩한 진통 소식의 전달과 아이의 쉼 없는 재잘거림은 더 이상 없다. 그저 오고 가는 건 수축이 주는 낮은 신음뿐, 뱃속의 아기는 용기 내어 간간히 움직인다. 밖에서 옆집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거실의 냉장고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지만 나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기는 견딜 만큼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본능적인 호르몬의 조화가 주는 산고의 시간은 짧다. 할 만한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연의 진진통 간격과 아기 밀어내기 반사"

오후 3시 13',16',20'. 25',30'. 33',38'. 41'... 물에 들어감

4시 01분 3.45kg 딸 출산.


지연이 거친 신음을 내며 몸에 걸쳐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따듯한 물이 그녀의 옷이 되었다. 연이어 아기 내어밀기가 시작되었다. 밖의 가족을 불렀다. 채 오분이 안되어 들어왔음은 그가 아드레날린으로 긴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따듯한 물에서 헤엄치며 태어났다. 놀람과 두려움이 수증기로 변했다. 네 식구와 둘라, 조산사! 여섯 명이 욕실 안에서 북적거린다.


지금쯤은 태어난 아기와 아내에게 눈을 맞춰도 좋으련만 여전히 그는 카메라를 챙기느라 바쁘다.

사실 카메라는 출산하는 이의 신경을 건드리는 물건이다. 본능적으로 새끼를 낳는 어미는 타인의 시선이 싫다. 기계의 시선도 싫다. 산모만큼은 아니지만 아기 받는 나도 카메라가 반갑지 않다. 이번 출산의 하이라이트는 '촬영'이라는 남편과 지연의 요구가 있었는데 출산에 카메라가 주는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는 강력한 그들의 요구에 묵살되었다.

동영상을 찍어 둘째 탄생을 기념하겠다는 의도보다 꼼꼼히 잘못을 지적하고픈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일반적인 둘째의 출산과정보다 지연의 진행은 매우 더딘 것이었다. 특히나 양막이 열린 경우는 급속도로 빠른 진행을 보이는 것이 상례이다

양막이 열리고 선뜻 진행이 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불안'이었지 않았을까! 네대의 카메라에 찍힌 출산 현장 사진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었다.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출산은 더 자연스러웠을 거다.


우리의 서두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두려움이 얼마나 쓸데없는 소모였는가를,
지연의 출산을 보며 나를 다시 돌아본다.


"출산 장면을 촬영해도 되나요?"상담을 하러 온 예비 부모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남편은 드디어 내가 할 일이 생겼구나 라는 표정이고, 할 일 없는 남편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여자는 좋다.

삼각대와 카메라가 출산 준비물에 더해진다. 어느 정도 진통을 한 후 내원하게 되면 집에서와 같은 상황으로 진통은 계속된다. 그냥 왔다 갔다 하다가 인상 한번 쓰고 호흡을 하거나, 누워서 끙끙거리는 것을 계속 찍는다. 급기야 배터리에 불이 들어온다. 조금 더 찬찬한 사람은 보조 배터리를 더 가지고 오지만 골반이 비좁거나 아기가 커서 오래 걸리는 경우는 그마저도 다 써버리기 일쑤다. 포커스를 맞추어 조준을 해 놓은 자리는 진통으로 계속 움직이는 산모를 찍을 수 없다. 힘주기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산모는 남편을 잡아야 한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곳으로 다가가 손을 잡다 보면 정작 산모의 모습은 찍히지 않고 널따란 남편 등만 열심히 찍히게 된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결국 아기를 낳고 나서 제대로 된 촬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사람이나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깟 사진이나 동영상이 뭐가 필요하냐며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아기'와'아내'에게 눈을 맞추고 대단한 일을 마친 그들을 칭찬한다. 그 순간, 아무 부부에게나 생기지 않는 또 다른 동포애? 가 생긴다. 닦고 조이고 충전해 가지고 온 카메라는 나동그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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