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사가 보는 출산의 철학은 자연을 지지하는 거다. 인위적인 것은 하지 않으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주는 거다. 아기를 지켜낸 사람은 의료인이 아니라 어머니이며 혹 지키지 못한 생명 또한 존중할 줄 안다. 사랑과 지지로 막달에 이른 아기는 건강하다.
옛 태교를 보더라도 임신 중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사람은 온갖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아기를 품은 어미의 생각이 올바르면 아기도 올바르다. 부부의 정직한 사랑의 눈빛에 아기는 평안하다. 출산의 고됨은 남아 있지만 그 또한 자연임을 아가들은 안다. 얼마나 기특하게 세상을 향하는지 경이롭다.
이 새벽, 먼길을 달려온 새 생명이 있다. 잠든 아이들과 함께다. 순하게 두 아이들을 먼저 만났다. 셋째도 순하려나? 개성 있는 생명들은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 요 녀석은 아직 하늘을 보고 있어서 진통도 지지부진하고 약하다. 아주 조금 염려스럽지만 불안감은 도움이 되질 않으니 일단 마음을 가라 앉혔다. 밤잠을 못 잔 어미는 졸음이 몰려온다. 우선 한숨 더 자는 것이 순리다. 두 아이와 아빠는 차 안에서, 어미는 출산 방에서 잠을 잔다. 새벽바람을 가린 또 한 사람, 나도 좀 더 눈을 부쳐야겠다.
함께 온 오빠들은 일곱 시쯤 깼다. 아빠는 아이들을 제법 잘 돌본다.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겠다고 했다. 이런 편안함이 좋다. 걱정어린 눈빛은 하나도 없다. 아침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을테지만 형제는 친구되어 즐거울거다. 여덟 시쯤 초인종이 울렸다. 아비는 아이들과 김밥을 먹고 들어왔고 산실에 있는 두 여자를 위해 김밥 두 줄과 콩나물 국물을 들고 들어왔다. 나를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는 서둘러 아기가 나오기를, 나는 순리 껏 아기가 나오기를, 동상이몽의 두 여자는 김밥을 함께 먹었다.
새벽 내내 자는 듯 보였지만 진통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약할 뿐, 셋째는 태반이 엄마 배꼽 쪽으로 붙어 있어서 태반을 쳐다보며 하늘 보는 아기가 된 듯하다. 대부분의 태아는 태반 쪽을 쳐다보고 있다. 탯줄이 그곳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배꼽이랑 연결되어 있으니 지금의 하늘보는 자세는 이치적으로 맞다. 굳이 등 뒤에 태반을 두고 자기 몸에 탯줄을 두르고 있을 이유가 없는 거다. 골반과 체격이 좋으니 하늘을 보고 있더라도 걱정이 없다. 한숨 자고 제대로 진통이 오면 골반에 잘 들어갈 테니까.
시간은 태아를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70%의 진행을 보이면서 어미는 힘들어한다.'그만 하고 싶어요~'막바지에 이르면 대부분 어미들이 하는 말이다. 다 되었다는 뜻이다. 힘이 제법 들어가고 변이 조금 나왔다. 아기의 머리가 직장에 다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사실 그것들은 특별하지 않다. 내가 그녀의 몸을 기억하고 그녀 몸에 맞는 준비만 하면 된다. 탯줄을 자를 기구와 소독 장갑, 둘째 때 출혈을 했었기에 출혈 방지 수축제를 옆에 늘어놓았다.'힘주기 한 번에 낳을 수 있을까요?'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간절한 질문이다.'아마 서 너번 진통을 하며 서서히 나와야 회음 열상이 없을 거예요. 그래도 이게 어디예요? 힘내고 잘해 봅시다. 아주 조그만 열상도 없이 낳아보자고요. 딸이니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 소리를 들었는지 딸은 호흡을 맞추며 딱 한 번의 진통으로 세상에 나왔다. 기대했던 열상없이!
3.92킬로! 오빠들보다 더 크다. 막내가 제일 크다. 엄마의 가슴에 아기를 올려주고는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가족들을 불렀다. 후다다다닥~~~
너를 만난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봉우리가 차오를 때까지
숨죽여 애를 쓴 너를
이제서 눈에 넣고 마음에 담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껴주지 않아도
이른 새벽 꽃처럼 온 너를
이제서 눈에 넣고 마음에 담는다.
너를 만난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아기를 받아내고 안락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화초들 사이에 하얀 꽃봉오리가 올라와있다. 갓 태어난 아기 같이 그렇게 슬그머니 자라 꽃을 피우다니! 아기들이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자연은 서로 닮아있다.
잠시 후면 떠나간다. 이제 넷째는 없다고 결의를 다지는 부부에게 섭섭함이 슬금 밀려온다. 그 대신 내가 제천으로 놀러 간다고 말했다.
밤을 새우지 않아서도, 회음 열상이 없어서도, 아이들과 함께한 출산이라서, 좋다! 선한 부부와 뛰노는 세 아이들을 상상하니 참 흐뭇하다.
내일 몽골로 여행을 떠난다. 혹여 여행 중에 진통이 올까 봐 마음을 졸였었다. 떠나기 전날 , 마치 내가 떠날 것을 알기라도 하듯 자연스레 오늘을 택해준 서현이가 고맙다.
스쳐가는 모든 사람이 인연이라 하는데 무려 세 아이를 받은 인연처럼 고귀한 것이 있을까! 가벼운 맘으로 몽골의 초원을 눈에, 마음에 담아 올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