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을 거부한 출산* 2010년 초가을 오후, 국제학교 외국인 부인의 둘째 아기가 태어나려 한다. 그녀는 가정 출산을 원한다. 널따란 거실 중앙엔 벌써 수중 출산을 위한 풀을 불어놓고 물을 받고 있다. 오후 햇살이 눈부시다. 아기의 심음을 듣고 자궁 수축을 체크했다. 첵크래봤자 그녀가 걷다 멈추거나 낮은 신음을 하는 것을 관찰하여 적어 보는 것이다. 아직 6~8분 간격, 그런 진통이 견딜 만 한지 잘 움직인다. 그녀는 응급상황을 제외하고는 내진 및 모든 의료적 행위를 을 거부했다. 그러니 진통은 시작되었으나 도통 지금의 진행상황을 가늠할 수가 없다. 진통의 강도를 알 수 있는 NST(non stress test)도 당연히 안 한다. 가정 출산 경험을 안 해 본 다른 의료진들은 이런 상황이 어리둥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료적 출산이 몸에 밴 그곳의 모두는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조바심을 내고 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긴장해서 달려갔던 마음과는 반대로 집안은 너무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다. 우리는 근처 가게에서 커피도 사 오고 간식도 사 왔다. 우리를 그림자 취급하는 그녀는 당당하다. 배를 만지며 걸어 다니다가 급기야 졸리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더 황당했다. 우리도 그이 집 소파에서 나른한 오후 햇살을 즐겼다. 가정 출산이 흔하지 않았던 그때, 출산은 그렇게 느긋이 기다려 주는 것이라는 것을 거기 있던 모두는 배웠다. 약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이제 진통이 강해져서 따듯한 물이 필요하다며 옷을 벗었다. 스스로 언제 아기가 태어나는지를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주인공이고 그곳의 모든 사람은 엑스트라다. 간간히 세어진 진통으로 신음소리를 내곤 하지만 들어줄만하다. 산모가 내는 소리는 출산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풀 모퉁이를 등받이 삼아 기댄 채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힘도 준다. 아기가 다 내려온 거다. 갑자기 조용히, 빠르게 아기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는 지금 아기가 나오는 거냐고 눈짓으로 묻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하고 민첩하게 항문 쪽 회음을 받쳐주었다. 아기 머리가 조금씩 보였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다섯 번, 드디어 아기가 물속으로 나왔다. 햇살이 물에 비쳐 반짝이고 물 안의 아기는 눈을 떴다. 여전한 가을 오후 햇살은 속속들이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했다. 서두르지 않고 아기를 꺼내 안은 산모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남편도 딴일을 하다가 허둥대며 달려온다.잠깐, 감동의 영화 장면 같이 느껴졌다. 빨리 썩션을 하라며 툭 치는 의사는 조바심이 난 눈치다. "괜찮습니다!" 십여년가까이 순수 자연출산을 해 왔던 나는 뭔가를 빨리빨리 하지 않아도, 아기는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초인간적인 순간에 방해꾼이 되어서는 안 됨을 누누히 봐 왔다. 있는 듯 없는 듯 좀 더 세심히 살피는 일만 추가하면 된다. 아직 탯줄에서 맥이 잡힌다. 잠깐 동안은 아직 뱃속 상태이니 아기가 적응할 때까지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맞다. 아기 호흡은 고르게 변했다. 태맥도 여전하다. 십여 분간 아기는 따듯한 물, 엄마의 맨살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데로, 아무런 의학적 처치 없이, 내진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물에서 아기를 만났다. 처음으로 수중 출산을 접한 동료가 가져온 많은 물품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많은 물건들은 그의 불안이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이런 거였구나! 말하지 않아도 한 수를 배운 그는 그 후 많은 아이 낳는 산모에게 따듯한 물을 선물하는 센터를 열었다.
*대형화된 의료의 필수코스 '내진'* 어찌 보면 내진은 대형화된 의료가 만들어 낸 편의주의적 의료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진통이 시작되면 자궁문은 열릴 테고 따라서 아기가 태어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사람들은 내진이 싫은데 자꾸 들춰보아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결국 현대 의학은 아기 낳는 것을 병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은희가 겪은 내진 트라우마* 은희가 써온 출산 계획서에는 출산할 때 내진은 안 하고 싶다고 쓰여있다. 첫아기인데? 내진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왜 저리도 내진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을까 궁금하다. 첫아기를 15주 때 아기를 잃었다. 아기가 꺼내지는 과정에서의 내진은 고문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다시는 산부인과를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게 남았다. 아기를 갖는 것조차 두려윘다. 다시 임신을 하고 나서는 아기 낳는 일 보다 내진이 더 공포스럽다. 조산원을 찾아온 이유도 내진을 안 해도 된다고 해서다. 은희가 진통이 걸려 처음 오게 되면 딱 한 번만 내진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원했던 대로 아기를 낳았다.
*내진에 대한 예의* 아이를 낳으러 가면 필수 진찰 중 하나가 내진(vaginal examination)이다. 아기가 골반 안으로 얼마나 내려와 있으며, 자궁문은 또 얼마나 얇아졌고 열렸는지 확인한다. 진행된 정도에 따라 아기가 태어나는 시간과 난산 혹은 순산을 할 수 있을지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의사나 조산사는 소독약을 바르고 검지와 중지를 질 안에 넣어야 상황을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유지해 주기 위해 부드러운 천으로 덮어 준다. 중간에 진통이 오게 되면 진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준다. 가끔 진통이 올 때 내진을 하는 것은 양막의 팽창 정도와 아기의 하강을 느낄 수 있어서 순산을 가늠하기가 편리해서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먼저 차가운 소독약으로 놀라고 내진의 과정에서 두 번째 놀란다. 긴장을 하지 말아야 서로가 편안한데 서로의 입장은 천양지차다. 바쁘더라도 진찰자는 충분히 긴장을 풀게 해 줄 수 있는 배려를 해야 하고 산모는 그들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배려와 신뢰가 있는 내진은 아프거나 기분 나쁘지 않다.
*조금 열린 자궁문에 기죽지 말자* 출산의 과정에서 내진을 안 하면 위험할까?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진찰을 하러 간 사람도, 진찰을 하는 사람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아기를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내진을 한다. 결과에 따라 단단히 각오를 다져야 할 수도 있다. 많이 진통하고 왔다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10% 정도라면 크게 실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궁문이 3cm 미만으로 열린 초산이라면 맘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가는 것이 좋으며 되도록 집에서 6시간 정도 진통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경산의 경우는 자궁 개대의 여부보다는 7분 간격의 진통이 한두 시간 지속되면 입원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삼교대가 불필요한 내진을 하게 한다* 출산 장소가 병원으로 바뀌면서 산모도 병원의 시스템에 따라 아기를 낳아야만 한다. 그중 하나가 삼교 대하는 의료진이다. 다음 근무자에게 지금 입원해 있는 산모의 진행을 알려주어야 하고, 인계받은 사람은 확인을 위해 재차 내진을 한다. 대형화된 출산센터의 근무자에게 내진이란 산모의 진행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 의무이다. 근무 시스템을 변경하게 되면 내진의 횟수는 줄어들겠지만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진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출산 장소로 가는 시간을 늦추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