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온 문자의 어설픈 영어는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케 했다. 동남아 여성이고, 둘째 아기고, 큰아이는 고향 나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불법체류자라서 직업도 없고, 친구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으니 당연, 의료보험도 없다. 임신한 것 같은데 아직 병원도 가지 않아 예정일도, 마지막 생리일도 모른단다. 남편이랑은 이혼을 할 예정이며 친구랑 셋이 아기를 키울 것이라 했다. 불법체류자라서 병원은 절대 안 간다고 했다.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지 대뜸 아기 낳는데 얼마냐고도 물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임신 20주 정도로 가늠이 되어서 시간은 여유로우니 차후에 다시 연락을 하자고 했다. 영어 안 되는 한국인과 엉터리 영어를 하는 외국 여자 사이의 소통은 톡이 올 때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전화번호가 연결되니 카카오톡이 연결되었다. 그곳에 올라져 있는 사진엔 형형색색의 문신과 짙은 마스카라와 눈썹,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 옷차림은 그녀가 범상치 않음을 짐작하게 했다. 출산 또한 건강치 않을 것 같았다. 아무런 연락 없이 두 달이 지나갔다. 어느 날 또다시 엉터리 같은 영어 톡이 왔다. 오늘 방문하고 싶은데 와도 되냐는 질문이었다. 병원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또다시 병원은 절대로 가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이이를 어쩔까!
나와 거리가 멀어서 그녀 집에서 가까운 선배 조산원을 소개해 주었다. '집도 여기서 가깝다는데 받아보지 뭐! 둘째 아기라며!' 다행히도 선배는 흔쾌히 아기를 받겠다고 했다. 사실 별 걱정은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산이기까지 하니 좀 저렴하게,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셈 치면 되겠다 싶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산모를 지례짐작으로 판단한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진통을 하게 되면 함께 출산을 도와줘야겠다고도 마음먹었다.
선배의 진찰 결과 그녀는 심각한 빈혈을 앓고 있었다. 검사를 하려고 2ml의 채혈을 하자 푹 고꾸라져 기절을 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혈색소 수치가 6.6이란다. 철분주사를 몇 번 맞아서 막달엔 간신히 10을 유지하게 되었다. 불법체류자들을 돕는 카톨릭 기관과 서너번 연결을 했었다. 코로나로 문은 닫고 있었지만 산모들은 대학병원과 연계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결은 매 순간마다 매끄럽지 않았다. K가 전화도 안 받고 문자를 넣어도 대답을 안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k의 소식은 거기까지였다. 빈혈이 해결되었으니, 경산이니, 선배가 잘 받아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임신해서 병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고 예정일 조차 모른다는 불법체류자 k의 혈색소 수치는 6.6. 빈혈에 대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고 그에 대비한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그녀.(일반 여성의 정상수치는 12 이상, 임산부의 정상수치는 10 이상.) 아기 아빠도 누군지 모르고 친구 집에 숨어 사는 여자. 태어 날 아기는 고향 친구들이랑 함께 키우겠다는 여자.
돈이 넉넉지 않아서 아기 낳을 여러 병원을 알아보았을 그녀에게 무료로 출산을 돕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아기를 낳다가 빈혈로 문제가 될 경우, 아기를 받는 일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생명이 그런 식으로 담보되어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 추방될 지라도 제대로 된 의료적 수혜를 받아 건강한 출산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병원 출산을 권유한 후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두 생명이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왜 자꾸만 그녀가 생각날까!
선뜻 불법체류자 k산모를 받아주겠다는 선배 조산사에게 고마웠지만 한편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사실 불법체류자라서 여러 가지로 내가 곤란하게 되는 것이 귀찮고 싫었다. 지난날 내가 만났던 중국, 일본인, 베트남, 필리핀 산모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나쁜 한국 남편들의 아내로 기죽어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아기를 낳고 애달파하며 입양을 보내기도 하고, 아기를 많이 낳는다고 진통하는 아내의 배를 차 버리는 남편도 만났었다. 출생증명서에 남편의 이름을 빈칸으로 남기면 몇 년 후 영낙없이 비자 문제로 다시 나를 찾아오곤 했었다. 그런 일들은 화가 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회의감도 들게 했으며, 그들을 도울 수 없는 무력감은 아기를 받아내는 일보다 더 괴롭고 힘든 것이었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나쁜 건강상태도 솉트처럼 붙어 다녔다. 출산하면서 출혈을 하고 진행도 더디고 힘들었으며 남편들의 외조는 오히려 출산을 방해하는 것들이었다. 조산사는 정상이고 건강한 산모의 아기만을 받아야 하지만 내칠 수가 없었다. 불쌍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알량한 나의 정의감은 늘 턱없이 여러 면에서 충분치 않았다.
K를 돌보던 선배에게서 k가 오전 아홉 시에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행이다. 우선 잘 낳고 훗일을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잘 낳아라. 건강해라.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큰일이 나고 있었다. 진통이 잦아지니 막달 혈압이 140/90이던 것이 180/120으로 매우 높아졌고 자궁문이 6cm 개 대부 터 진행이 더 이상 안된다고 했다. 오후 세시엔 아기의 머리가 하늘을 보고 있어서 잘 내려오지 못하고 있고 , 그로 인해 자궁문까지 붓기 시작했단다. 그러면 잘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경부가 손상을 입어 출혈을 할 수도 있다. 같은 나라 친구 두 명은 산모를 두고 줄행랑을 쳤고 보호자는 전화를 안 받는단다. 게다가 지친 k가 수술을 시켜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단다. 사실 높은 혈압만으로도 병원으로 후송을 했어야 했지만 아기를 낳을 때마다 혈압이 높았었다며 후송을 완강히 거부를 했다고 했다.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 '이란 말을 하면서 이번이 셋째 출산이라고 고백을 했단다. 일반 산부인과는 혈압 높은, 처음 온 산모는 절대로 받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K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결국 대한민국 대학병원뿐이다.어쩌나!
도움 청할 딱 한 분이 생각났다. 체면 차릴 새가 없다. 진통도 진통이려니와 저러다 산모가 뇌혈관이 터지면 두 생명 모두가 사라진다. 생명대학원 J신부님께 전화했다. 그다음 성모병원 영성부원장이신 A 신부님의 승낙으로 k는 st.Mary에 입원을 허락 받았다. 응급실>분만실>수술실>응급 제왕절개, 일사천리로 k와 아기는 목숨을 건졌다.
K의 진통을 함께한 M조산원 원장님은 보호자 대신 혼자서 입원 수속을 하고, 수술하고 아기가 나올 때까지 수술실 앞을 지키셨다. 조산사는 늘 이런 일을 안고 산다. 살려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365일,24시간을 그렇게 일한다. 저녁 아홉 시 반 3.6킬로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 실려 수술실을 나왔다. 건강히 울었단다. K는 수술을 무사히 마쳤으나 혈압이 높아서 혈압강하제 쓰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집으로 가셨다.
두 생명 모두가 살았다.
아가야~
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 여러 사람이 있단다. 꼭 기억하렴!
너희 엄마와 함께 조산원으로 와준 두 필리핀 친구들,
종일 너의 탄생을 위해 애쓰신 m조산원 원장님, 너를 여의도 성모병원까지 데리고 가신 M조산원 원장님 남편분. 여의도성모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학장님이신 J 신부님, 여의도 성모병원 A 영성부원장 신부님, 퇴근도 못하시고 마중 나와계셨던 여의도 성모병원 수녀님과 행정실 직원분. 분만실 팀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하신 의사 선생님 및 수술실 팀, 코로나 중환자 격리병동팀, 훗날 더 애써주실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계시단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잘 견디고 건강히 태어난 너에게도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