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 셋 낳고 정관수술하다
산후 6주 이야기
일요일의 출산센터 건물은 조용하다.
셋째를 가졌다는 경민이 가족들과 함께 오고 있다. 일 층부터 점점 가깝게 들리는 아이들 소리는 활기차다. 만 다섯 살이 안 된 한별이, 세 살 가람이는 들과 산에서 햇살 받으며 컸다. 아이들에게 태어난 곳은 놀이터이며 제 집이다. 울컥 고맙다. 깔끔한 경민의 몸을 두 아이를 받아낸 나는 잘 안다. 이번 출산, 걱정 일도 없다. 거리낌 없는 출산 잔치를 할 거다.
셋째 아이 소식을 전해온 그는 45세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오 년 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결혼하지 않고 살려했던 미혼의 시절이 까마득하긴 해도 또 다른 세상이 이리도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넷까지는 자신이 없다.
아내가 셋째를 가졌다는 소식에, 넷째를 임신한다면 또다시 즐거워할 그녀이기에 용기 내어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아이 낳는 고통과 정관수술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하는 불임수술이 아내를 위하는 최소한의 사랑 표현이란 생각을 한다. 남들이 쉽게 여기는 정관수술은 생각보다 아팠다.
아이들이랑 몸으로 놀아주던 경민의 남편이 왠지 오늘은 움직임이 둔하다. 내게 눈을 찡긋하며 남편이 정관수술을 한 지 5일이 지났다고 만삭 아내가 귀띔한다. 부부지간에 쉽게 약속을 하긴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남성의 영구 불임술인 정관수술이다. 남편은 본인의 결정이 자랑스러운 듯 애써 의연한 척했다. 늘 웃는 얼굴이라 싱거운 사람 같아 보였는데 약속을 지킨 그가 갑자기 멋져 보였다. 폐경이 되도록 나의 남자는 정관수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어른을 코를 꿰어 비뇨기과에 데려갈 수도 없었고, 날이 슬금슬금 가더니만, 결국 폐경이 되었다. 나의 남편은 약속을 어겼다. 약속을 지킨 남편을 가진 경민이 부럽다.
경민은 나이 35에 첫 아이를 낳았다. 조심스러웠던 첫 아이 출산은 이후 경민이 또다시 품고 낳을 아기들에 대해 확신을 주었다. 건강하고 깨끗한 출산과정에 나조차도 놀랐다. 남편에게 장가 잘 가셨다고 의미심장한 칭찬을 다섯 번이나 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밤 열두 시, 셋째가 태어나려 살짝 배가 뭉친다고 한다. 한두 시간 후면 더 진행이 되어 연락 올 것을 생각하니 잠이 깨버렸다. 가족들 깨지 않게 조용히 출산센터로 나갔다. 경민의 두 아이는 각각 엄마와 아빠를 닮았다. 이번엔 누구를 닮은 아기가 태어날까? 한밤중의 주택가 길은 한적하고 사방은 조용하다.
새벽 네시, 네 식구가 들어온다. 두 아이는 기특하게도 잠이 깨어 걸어서 들어왔다. 가지고 온 단출한 출산 가방엔 첫 아이 때부터 썼던 기저귀와 배내저고리 등이 들어있다. 서른다섯에 아이를 낳았으니 기저귀 나이도 다섯 살이다. 오 년 묵은 기저귀는 수 없이 빨아서 변색되었지만 태어날 아기에게는 이롭다. 물건들을 보니 나도 감회가 새롭다. 태어난 아기가 춥지 않도록 따듯한 방바닥에 넣어 둔다. 그 기저귀로 열 달의 양수를 닦고, 덮고, 바닥에 깔아 젖을 먹을 것이다. 아버지의 저녁밥이 식지 않도록 아랫목에 넣어두셨던 엄마를 나도 따라 한다. 따듯한 것은 정성이고 기도며 사랑이다.
도착 후의 북적임도 잠시, 진통이 강하지 않아 모두들 잠을 잔다. 엄마 아빠가 있으면 아이들은 어디서나 잠을 잘 잔다. 70%나 진행이 되었는데 잠을 자다니! 양막을 인공적으로 열고 유도분만제를 조금만 주면 태어났던 많은 아기들이 생각났다. "그러렴 기다려줄 수 있단다!"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지 이 식구들은 아침 일곱 시까지 쌕쌕! 쿨쿨!, 드르렁!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 덕분에 나도 잠시지만 달콤한 쪽잠을 잤다. 결국 막내는 동이 트고, 가족들이 깰 때쯤 태어났다.
부부는 이번 출산이 마지막이라 남다르다. 경민의 가슴 위에서 꼬무락거리는 처음 만난 어린것, 아이를 줄줄이 낳아도 똑같지 않은 이 신비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긴장의 끝판이었던 첫 아이 출산, 진통하는 아내를 웃겨주느라 목이 아팠었다. 둘째를 가졌다며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 온 그다. 임신을 하면 생각나는 이가 나여서 고마웠다.
아기가 태어나고 복닥거리며 다섯 가족은 출산센터에 머물렀다. 미역국도 함께 먹고 TV도 보며 다섯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갈 시간, 차까지 어린것을 안아 데려갔다. 두 아이들은 작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따끈따끈한 맘을 가진 다섯 식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묶이고 잘린 정관이 기를 쓰고 다시 붙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