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으로 거쳐를 옮긴 어르신은 산소포화도가 75까지 떨어졌다며 가족에게 위중함을 알려왔다. 드시는 것도 이젠 미음만 간신히 넘긴다고 했다. 영양제 주사와 입맛을 돋우는 약을 드시는 것이 어떠냐며 슬쩍 물어왔다. 가족이 돌보기엔 정도가 지나쳐 요양원으로 거쳐를 옮기면서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 두었지만 그런 소식을 듣고 그래도 그냥 두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월요일마다 요양원에 온다는 가정간호사에게서 영양주사를 맞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의 눈에 물이 고인다.
엄마에게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는데 인사불성이 되어 말도 안 하고 종일 잠만 자는 기력 쇠약의 엄마는 그냥 눈을 감은 채 오늘도 말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오늘 밤에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말에, 코로나로 임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가족 모두는 안달이 났다. "살 만큼 사셨으니..."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해당되지 않다. 준비 없이 엄마를 보낸 나는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남편의 이별준비를 위해 잠시라도 우리 집으로 모시자고 아이들과 합의를 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 지며 내 삶에 들어올 시어머니가 부담스러웠지만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이란는 말을 하고는 내 엄마이면 그런생각이 들었을까?라는 생각과 괜한 짓을 하는 것은아닐까 싶기도 했다. 결국 시누이의 반대로 나의 제안은 알량한 효도로 치부되었다. 내 엄마가 아니니까, 괜히 또 오지랖을 떨었나 싶기도 하다. 살면서 힘들 때 "네 복이 그만큼이야" 라는 말에 상처받은 나는 어르신에게 "어르신 복도 그만큼이네요"라고 되돌려 준다.
오늘, 어르신의 시간은 끝을 향하고, 시작하는 생명 하나는 첫울음을 터뜨리며 내 손에 안겼다.
하루에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조산원, 어떻게 보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금, 복닦거리며 출산을 많이 하는 병원보다 안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약을 하고 오는 이들이 누구와 언제 어디서 확진자와 접촉했는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문진과 열을 재는 것, 마스크를 쓰는 것이 조산원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나를 코로나로부터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문득, 집에서 출산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 방역의 최고의 방법은 집에 머무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밖에 나가지 않고 안전한 집에서의 출산은 필연적 접촉을 최소화해서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 덕분에 임신과 출산이 병이 아닌 것을 깨닫는 사람도 많아지지 않을까!
세상은 시끄럽지만 아기들은 태어난다. 조금 이상한 건 요사이엔 밤중 출산이 드물어졌다는 것!
나야 참 좋지만 내게 오는 산모들만 그런 건지, 다른 출산센터도 그런지 아무튼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능적인 DNA도 바뀌고 있다는 건데! 동물 행동 학자들은 같은 종족이 잠이 들어야 어미들은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고요함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주로 낮에 활동하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전기를 발명하면서 밤을 잃어버렸다. 사랑도 함께 잃어버렸다. 사랑하는 밤을 일어버린 어린생명조차도 그렇게 된듯싶다.
이른 아침, 둘째가 태어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샤워도 하고, 로션도 바르고, 눈썹도 예쁘게 그리고, 양말도 신고 출산센터로 나갔다. 평소 같으면 세수는 하는 둥마는둥 뛰쳐나갔을 것이다. 며칠째 잠도 느긋이 자서 컨디션도 좋다. 라벤더 향을 피우고, 한번 더 바닥을 닦고, 출산 준비물을 확인하고, 시간이 남아 김밥 한 줄, 아메리카노 한 잔도 곁들인다. 차트를 다시 되짚어보고 이번 출산을 어떻게 하고 싶어 했는지 확인한다.
"남편은 밖에, 아이는 놀라지 않도록"그녀의 출산 바람은 참 싱겁다. 싱거운 사람이 아기를 잘 낳는다. 이번 출산 또한 편안할 것이다.
진통이 강해 보이지만 아이에게 간간히 미소 짓는 엄마사랑받는 아들은 당당하다. 산모는 잦은 진통에 자꾸만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예의 주시하며 함께 온 아이에게 TV를 틀어주었다. 티브이는 아이와 함께 하는 출산에 응급 장난감이다. 무심한듯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옆방 분위기와는 반대로 서로 다른 화면을 보고 있는 모습이 한가해 보인다. 사랑은 '응시'에서 시작하고, 사랑이 깊어지는데도 '응시'가 필요하다. 모두들 기계를 더 많이 쳐다보는 세상이 되었다.
옆 출산 방의 어미는 호흡이 거칠어진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임을 들키지 않게 아기마지 준비를 한다. 엎드려 있던 그녀의 신음소리는 잠시 후 아기를 만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자세를 바꾸어 옆으로 누웠다. 땅콩 볼을 다리 사이에 넣어 주어 아기의 출산 공간을 확보하고 힘주기 자세를 조용히 알려준다. 폭풍 같은 큰 진통은 아기를 힘껏 밀어내었다. 아기마지가 가까워졌다고 알리려 옆방으로 가 보니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다른 화면에 집중해 있다. 산모가 출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부르겠다고 했다. 세 번 정도의 진통이 오고 간 후 아기가 태어났다. 첫 호흡을 한 아기가 우는 소리, 가족을 부르는 내 소리, 어미의 가쁜 숨소리, 쿵쿵 달려오는 발소리, 모두 다 왠지 정겹다. 양수를 닦은 후 아기는 어미 가슴에 안겼다.
도착한 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아기가 태어났다.
두 생명 모두가 깨끗하다. 너무 깔끔하다.
휘둥그레진 남편의 눈빛이 내 등 뒤에 꽂힌다."와~이렇게 아기가 나왔네! 첫애보다 정말 순식간인데!"
아내에게 유난을 떤다며 자연출산센터의 출산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남편의 얼굴이 펴졌다. 강성 아내를 만나 차마 강력하게 병원 출산을 주장하지 못했던 남편,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한다.
"당신! 장가 잘 간 줄 아시오!"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