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산모들에게 ' 3대 굴욕' 은 하고 싶지 않은 출산 전 처치로 알려져 있다. 관장, 회음 면도, 회음절개가 그것이다. 아기 낳는 여자들이 '굴욕' 운운하며 출산에 항거하게 된 데는 일부 의료인들의 책임과 인간미 잃어가는 출산 문화에 있다. 대부분의 굴욕 처치가 시행되는 곳은 너무 환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시된다. 출산은 인간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여전히 출산하는 대부분의 임산부들은 선택할 기회를 잃고 3대 굴욕을 당하고 있다.
대형화된 출산센터는 개별적인 공간을 제공할 만큼 너그럽지 않다. 아무리 그 굴욕에 대해 저항을 한다 해도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 20세기의 출산센터는 인간적인 면보다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출산 장소가 병원으로 바뀌기 전 세상의 모든 아기 낳는 여자는 관장을 하지 않았다. 아기를 낳기 위해 몸이 스스로 장을 비웠으며 그로 인해 진통은 시작된다.
비워진 장에서는 진통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 호르몬도 내보낸다. 변은 단번에 배출되지 않아서 변의를 자주 느끼는 산모는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된다. 당연히 걷고, 앉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엄마의 움직임에 아기는 제 자리를 잡고 쉽게 밖으로 향하게 된다. 출산을 시작하는 몸은 오케스트라 연주 같다.
병으로 전락해버린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기를 낳으러 간 산모는 배변을 위해 관장을 한다. 항문으로 비눗물이나 글리세린액을 주입해서 장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장을 비워 아기가 산도를 통과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장을 자극함으로써 진통을 좀 더 강하게 유도하기 위해, 출산 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출산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 건 그렇지 않건 간에 대부분의 산모에게 시행된다.
입원을 하면 한 장의 커튼만이 산모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산모는 불편하고 불쾌하다. 긴장을 풀어야 관장약이 잘 들어가는데 그런 분위기로는 쉽지 않다. 관장약을 주입한 후 10분간 참으라고 한다. 관장액이 더 깊숙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커튼 너머의 부산스러움, 자극으로 심하게 운동하는 장, 더 강해지는 계속되는 진통, 10분이라는 제한 시간들은 난생처음 극한 상황에 맞닥드려진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 겪어 내야 하는 한계를 느낀다. 10분은커녕 채 5분이 되기 전에 화장실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드물게 바닥에 실례를 하는 경우까지 있다. 맨 정신으로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하지만 그 수치를 위로받는 산모는 없다. 하물며 관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출산 시 변을 보는 산모에게 호통을 치는 의료진도 있다. 산모는 모욕감과 미안함을 느끼며 아기를 낳는다. 그녀의 출산은 수치스럼으로 기억된다. 출산 시 변 보는 일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출산 시 나오는 변에 대해 일언반구도 않는 자연출산센터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관장을 거부한다. 센터를 열기 전, 병원 출산 경험만 있던 나로서는 이런 요구들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관장 거부 요구는 계속되었고 결국 빠르게 거부를 받아들였다. 경험은 확신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지금껏 해 보지 않은 이유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에서 진통을 하도록 도와주니 자연스레 잦은 배변을 하고 입원을 하게 된다. 출산을 하면서 관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변이 나오지 않거나 아주 소량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아기를 낳기 전 시행되는 관장을 안 하게 되면 미개하다는 둥, 과학적이지 않다는 둥, 말들은 많지만 난 이제 확신한다. 충분히 기다리는 출산의 과정은 자연스레 배변을 유도하고 혹여 보이는 변은 낳는 산모나 아기에게 생각만큼 치명적이지 않다. 더하여 그런 일련의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기가 태어나는 아기에게도 오히려 이롭다.
혜경은 왜 자신이 집에서 아기를 낳으려 하는지, 자연스러운 출산이 왜 중요한 지 내게 열심히 말했다. 혜경이 나보다 출산에 대해 더 심도 있는 고민과 공부를 한 듯 보였다. 간간히 오는 진통만이 그녀의 목소리를 삼켰다. 미리 끓여 놓은 미역국도 먹고 온 집안을 걷고, 앉고, 구르다가 둘째 아기를 낳았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시간이 흘러 대학 교수가 된 혜경을 우연히 만났다. '어머 어머 어머!!! 반가워요! 선생님! 건강하시죠?' 눈물이 글썽해져서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았다. 촉촉해진 눈물을 애써 담으며 '제가요. 선생님 앞에서 똥을 쌌다니까요! 그때는 부끄러울 겨를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네요!' 그녀는 뜬금없이 내가 기억하지 못한 '변 본 것'을 기억하며 미안해했다. 내가 그 옛날 받았던 아이 사진을 꺼내 보이며 자랑도 했다. 슬쩍 거의 정상아에 가깝게 자란 첫 애 이야기도 했다. 여전히 전사로, 씩씩한 여성으로, 끔찍한 사랑을 품은 엄마로 살고 있는 혜경은 변함이 하나도 없다.
열매가 익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열매가 잘 익도록 사랑과 정성을 더하는 인간이 자연 중에 으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