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다.
마흔여섯에 늦둥이를 품은 사랑이 엄마가 직장에서 여자 상무님과 마주쳤다.
"자기 임신했어? 배가 제법 큰 걸 보니 예정일이 다 되었나 봐!
네~
근데 자기 몇 살인데?
마흔여섯이에요."
화들짝 엄지 척을 보내며
"자기 진짜 멋있다! "
"저 조산원에서 자연출산으로 잘 낳고 올께요오."
더 힘 있게 엄지 척을 한다.
마흔여섯의 진통은 어떻게 올까? 딱 맞추어 예정일에 진통이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진진통이 걸린 그녀는 졸려한다. "졸리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진통 사이사이 깜박 졸릴 거예요. 그래도 좋습니다. 아기 심장소리가 고른 걸 보니 아기는 건강히 잘 있는 거지요. 매실주스 좀 드시겠어요? 한 번에 말고 조금씩 넘기세요. 속이 편안해지고 진액의 당분은 힘을 줄 겁니다. 어이쿠! 아기가 발로 차네요. 건강히 잘 있다는 징표입니다. 진통이 견딜만하면 좀 움직여 보시겠어요?. 일어난 김에 화장실에서 소변도 보고 오시면 아기 나오는 길이 넓어져서 아기 낳기가 수월해져요"
나의 이러한 제시에 그녀는 무척 긍정적이다.
언니가 될 지연이는 어제 새벽부터 진통이 오는 엄마를 두고 학교를 갔다. 어제 엄마가 걱정되어 공부가 안되었단다. 오늘도 학교를 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본다. 엄마가 아파하는 걸 보면 속상하고 무서울 것 같아서 동생이 태어나면 오겠다고 했다. 동생에게 쓴 편지는 부끄러우니 엄마가 아기 낳고 집으로 데리고 오면 단둘 이만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동생이 많이 보고 싶단다.
왜 그렇게 동생을 바라는 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다 때가 되어야 그리 되는 것임을 마흔여섯 나이에 둘째가 생기면서 알게 되었다. 딸의 동생을 소망하는 마음의 소리도 이번에서야 와 닿았단다. 어릴 적 기억을 해 보면 형제자매랑 한 지붕에서 복작복작 즐겁게 살았다.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늘 내편이 되는 부모님처럼 그들도 그랬다. 그들은 전적으로 나의 편이었다. 홀로 지냈던 딸은 그래서인지 동생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부모보다 더 많은 세월을 나와 함께 살아줄 내편이 필요했나 보다. 진통하는데 지연에게서 전화가 왔다"엄마는 괜찮아. 좀 더 기다려야 돼. 엄마 아직 안 낳았어. 사랑이가 나오고 싶어야 나오는 거야."지연이의 실망하는 표정이 상상이 간다.
조산원에 가면 바로 낳는 줄 알았나 보다. 엄마의 나이를 지연이는 모른다. 그냥 쑥 나오는 줄 안다. 조산원에 도착한 지 두 어 시간이 흘러간다. 진통은 제법 세져서 자궁문이 거의 다 벌어지고 양막이 팽팽해져 곧 아기맞이를 할 그녀는 그렇게 전화기 너머로 딸과 이야기를 한다. 끄응 ~~ 진통이 또다시 왔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또 다른 큰 산을 넘었다. 잠시 후 눈이 감기고 고요해진다. 살짝 잔다."좋은 생각 하세요. 말씀대로 아기는 제 나올 시간을 안답니다."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는 잠깐의 단잠에 빠졌다.
예상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그녀는 마흔여섯에 귀하디 귀한 둘째 딸을 얻었다.
선생님 덕분으로 46살에 용감하게
둘째를 조산원에서 낳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병원에서 제왕절개 해야 한다며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살면서 몇 시간씩 격려와 존중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어요.
아기 낳을 때
줄 곧 선생님께서 잘한다는 격려의 말을 들으며 베어 나오는 존중을 느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왜 행복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