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사인 나는 진통하는 이의 아기가 건강히 태어날 때까지 두렵다. 38년 동안 익숙해졌는데 뭘 죽는소리를 하냐고들 하지만 진심으로, 진심으로 아직도 두렵다. 세상의 단 하나뿐인 존재를 어찌 미물인 내가 속속들이 알 수 있을까! 기다리는 동안 두려움이 전이될까 봐 별짓을 다한다. 기도도 하고, 명상도 하고, 평정을 찾기 위해 아우토겐(autogen)도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진정할 수 있는 것들을 총동원한다. 대부분은 여러 방면으로 검증한 건강한 산모들이라 대부분 잘 낳는다. 문제는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의 한계이다. 건강하다는 것의 범주는 무궁무진하다. 건강한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행히도 산모 스스로가 문제를 알아채고 적절히 출산 장소를 변경하기도 한다.
두려움 없이 아기를 받아내는 사람이 있을까?
하도 힘들어 명상하러 인도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의 일은 명상이며, 가르치면서도 명상을 한다. 명상이 일이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음식도 함께 먹는다. 모든 것이 풀 요리다. 적게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고 덩달아 마음도 그렇게 된다. 고상해 보이는 명상가도 자신의 직업에 염증이 날까? 문득 나보다 평안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그들에게 딴지를 걸고 싶다. 내가 인도서 태어나 명상 선생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아마 며칠 안 가서 다시 아기 받으러 간다에 100% 건다.
가부좌로 앉아 몸과 마음을 느끼는 매 순간은 참 좋다. 소그룹으로 나뉘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여러 가지 두려움들이 나열되었고 특히 나는 출산을 도울 때 느끼는 두려움을 꺼냈다. 안 무서우려면 어찌해야 하냐고 물었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출산을 돕는 도중 느끼는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두려움이라 했다. 맞서야 한다고 했다. 부딪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대신 두려움이 올 때 타인을 위한 마음을 꺼내어 그를 위로하라고 했다. 진통하는 산모 곁에서 위로하는 마음을 꺼내고 아기에게 용기를 주는 생각을 하라고 했다. 사실 이미 아기 받으며 늘 해 왔던 것이다. 아마 모든 아기 받는 사람들의 마음도 똑같지 않을까? 나를 꺼내 놓으니 두려움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한 것은 그 일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도 했다. 나의 일을 좋아하고 있었나? 우울이 바닥을 칠 때는 주변머리가 없어서, 게을러서, 머리가 나빠서, 가난해서 이 일로 먹고사는 것이라 여겼다. 명쾌한 말! '아기 받는 일이 좋아서 같은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말에 황홀했다. 그래! 난 이 일을 좋아해! 방송이나 잡지사 인터뷰 때 단골로 묻는 질문은 '당신은 산파 일을 좋아하나요?'였다. 그때마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었던 기억이 난다. 열거한 우울의 양보다 태어남을 도와주는 행복감이 훨씬 많았다. 결혼식에서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주는 친정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갓난것의 양수를 닦아 어미의 품에 건네는 것을 상상해 보시라!
'잘 살아라!' 아기가 어미의 가슴으로 옮겨간 순간 두려움은 없어진다. 이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결국 아기들은 나를 다시 살도록 제자리에 놓아준다.
나는 내 일이 좋다!
하루 종일 진통을 한 산모가 막바지 힘을 준다. 진통 간간히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태아 심박수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통만 오면 뚝뚝 떨어지다가 진통이 사라지면 회복이 된다. 짧은 탯줄이 당겨진 증상이다. 되도록이면 탯줄이 당겨지지 않게 해야 해서 급기야 산모를 일으켜 앉혔다. 일단 진통이 오면 내려온 곳까지는 다시 죽죽 내려오니 그때만 산모의 허리를 굽혀 탯줄이 당겨지지 않게 해야 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나의 생각이 맞았다. 지금으로서는 병원으로 후송할 수가 없다. 죽으나 사나 출산을 해야 한다. 긴장한 내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미칠 것 같다. 경동맥도 펄떡대고 얼굴이 시뻘겋다. 쿵쾅거리는 몸과 마음에 처방은 기도다. 기도하라고 소리쳤다. 남편도 기도하고 힘쓰는 아내도 기도를 했다. 진통이 사라질 때는 아기를 다시 자궁 안으로 올려 보냈다. 조금씩 조금씩 더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하는 시점, 되도록이면 빨리 아기를 태어나게 해야 한다. 남편에게 아기의 엉덩이를 밀어주라고 소리쳤다. 그 사이 진통은 사라졌다. 산모에게 산소를 주고는 아기의 심박수를 체크한다. 뚝 떨어졌던 박동이 서서히 제 자리로 온다. 아가야 제발 정신 차리자! 다음번에 나오는 거야! 알았지! 다음 진통에 남편이 온 힘을 다해 배를 누르고 나의 기압 소리에 맞춰 아기가 태어났다. 엄마의 가슴에 올려지지 않을 정도로 역시나 탯줄이 짧다. 대신 제법 굵다. 굵은 탯줄이 아기를 살렸다. 만약 탯줄이 얇았다면 이 과정을 견딜 수 없었을 거다. 온몸이 망진 창이지만 뽀송한 아기가 내 심장을 위로했다. 아기가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어지럽다!
그. 래. 도
새 생명을 받아내는 조산사! 산파!
난 내 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