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버지와 정 반대로 털털하다.

살아가기. 남편이야기

by 김옥진

부엌을 떠나겠다고 선포한 지 어언 삼 년이 되어간다. 나는 떠났고 대신 그에게 선물로 줘버렸다. 그 공간은 가끔 나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되도록 그의 공간을 침범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솔직하다. 냉장고 안 구석구석 가득 찬 먹을거리와 먹지 못하는 재료와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 어제, 난 필사적으로 냉장고와 사투를 벌였다. 야채칸이 오만 잡동사니로 그득하다. 언제 적 쪽파인지 비닐 안에 녹아 있고, 먹다 남긴 양파의 단면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아기 주먹보다 작은 감자 한 알이 구석에서 나를 비웃는다. 나 같으면 찌개를 만들 때 넣어 의붓자식처럼 굴러다니지 않게 했을 텐데 말이다. 김치 담긴 그릇이 세 개, 멸치 볶음 종지가 두 개, 일주일 전 그가 만든 양파 절임은 삼겹살 기름을 둥둥 띠운 채 초 간장에 담겨 있다. 오래전 이모가 준 고들빼기김치는 상하지도 않는다. 미련 없이 버렸다. 스팸도 떡하니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통조림은 냉장고에 넣어 두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수 없이 했건만... 내 말은 귓전이고 그만의 강박은 또다시 통조림을 냉장고에 넣게 했을 거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만 유통 기간을 넘기지 않고 순환된다.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를 탓하기 전에, 평생 바깥일로 돌아다녔을 그를 생각하면 정신없는 냉장고에서 반찬이 나오고, 국물을 끓일 생각을 한다는 것은 칭찬을 해줘도 모자라다. 두부가 얼마고, 호박이 이 마트보다 저 마트가 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난 히쭉 웃어 준다. 배추와 열무를 사서 절이고 씻어 김치를 만들어 주기를 야무지게 꿈꾸는 나. 하지만 그는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야물지 못한 주부인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한 칸 한 칸 냉장고를 정리하며 비록 여기저기 상한 재료와 음식이 있다 손 치더라도 아무 말 없이 가끔은 내가 부엌에 서리라. 그가 먹거리를 만들려 장을 보고 나름 정리해서 넣어 둔 예쁜 맘을 읽고 그를 흉보지 않으리라.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오늘도 그는 신나는 장보기를 하러 가면 어떠냐고 자꾸 내게 묻는다. 그것도 그냥 스스로 가면 좋으련만... 못 이기는 척, 장 볼 채비를 한다.

옷장은 꽉 차 있는데 입을 옷이 없다. 알고 보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리가 안되어 있는 거다. 입고 나서 깨끗이 세탁을 해 놓아야 다음에 금방 입을 수 있는데 대부분 한두 번 입다 그냥 걸어 놓은 것이다. 옷들은 퀴퀴한 냄새도 나는 듯하고 일부는 구겨져 있다. 당연히 그 옷은 선택되어 입혀지지 않는다. 나의 게으름에, 바쁘다는 핑계에 옷들이 본래의 자태는 사라지고 서서히 버려질 준비를 한다. 유행이 지나서, 체형이 바뀌어 입기가 불편해서도 그렇다. 그리고 또다시 옷을 소비한다. 그래서 나의 수많은 옷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진다.. 필리핀에 살았던 적이 있다. 더운 나 라인만큼 사람들은 해뜨기 전에 일찍 움직이고 해 지고 나서 거리로 나온다. 잘 사는 사람들이나, 임시 외국서 일하러 들어와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일을 했기에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한 데에서 생활해야 하는 그들 대부분은 흰 티셔츠에 반바지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낡아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까지 했다. 입성을 중요시하는 나는 그런 그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들에겐 옷은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 다른 차원인 듯 보였다. 당시 나는 볼링에 푹 빠져 있었다. 새벽 세 시까지 볼링장에 있었으니까. 봉급의 삼분의 일은 볼링장 사장에게로 돌아갔다. 볼링을 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인 부자들도 있었는데 (벤츠가 가족 한 명당 한 대씩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입은 옷은 참 가관이었다. 임산부처럼 불룩 나온 배를 하고는 낡은 티셔츠로 간신히 가려져있다. 금방이라도 볼기가 보일 듯 한 엉덩이에 걸쳐진 반바지, 낡아 빠진 흰 티셔츠는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배꼽도 가려 주었다. 가끔 볼링 자세로 팔이 올려질라치면 살짝씩 그들의 출렁이는 배와 배꼽, 보일락 말락 하는 엉덩이를 보는 스릴도 있었다. 가끔 낡디 낡아 구멍이 난 면 T셔츠 속으로 속살이 들여다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건 나뿐이다. 그 볼링장 누구도 그들의 옷에 난 구멍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볼링장에서는 볼링을 치며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입고 있는 옷은 상관치 않는 그들만의 신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신나게 소리치며 손뼉 쳤던 그들은 유유히 벤츠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벤츠도 없고 집도 없는 내가 옷의 색을 맞추고 구두와 가방이 그 색에 어울리는지 고민을 하는 것 이 괴변스럽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공무원 박봉에도 그의 옷에는 부잣집 사장 못지않게 돈을 쓰셨다. 가끔 어머니가 아버지의 옷을 사는데 들이는 돈을 보며 흠칫 놀란적도 있었으니까. 입성이 좋으면 어디 가서라도 무시당하지 않고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그랬다. 깔끔한 아버지 성격과 어머니의 그런 대범함은 내게 아버지는 정말 젠틀한 멋쟁이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바지의 주름이 구겨질세라 앉을자리가 있어도 꼿꼿한 자세로 서 계셨다는 후일담도 있다. 어릴 적 나와 동생은 비가 오는 날이면 구두와 장화를 들고 아버지 출근길과 퇴근길을 배웅하고 또 마중 나갔다. 멋쟁이 아버지를 위해 출근길에 구두는 그렇게 우리 손에 들려 호사를 누린 셈이다. 퇴근길 또한 그다음 날의 출근길을 위해 아버지의 구두와 장화는 우리들 손에 들려졌다. 세상이 좋아져 지금은 그런 흙탕길에 신발이 더럽혀지는 일은 없다.


나랑 함께 사는 그는 아버지와 정 반대로 털털하다. 나 또한 옷으로 잘 보이려는 허황된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호한 나와 털털한 그가 만나 우린 대충 본인들이 입고 싶은데로 하고 산다. 그래서 그는 구겨진 셔츠 입기가 다반사고 흙 묻은 지저분한 구두를 개의치 않는다. 담뱃불이 날려 구멍 난 비싼 바바리를 아깝다며 입고 다니는 그다. 뒤쪽에 난 구멍인데 어떠냔다. 내가 안보이니 괜찮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셔서 슬그머니 그 바바리를 내다 버리셨다.


한 번은 한꺼번에 스무 개의 남편 와이셔츠를 다려놓고 내게 마누라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며 구시렁구시렁하셨다. 내가 남편의 셔츠를 다리지 않는 이유의 내면엔 아버지의 셔츠를 빳빳하게 다리느라 고생한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어릴 적 반항심의 발현이 아닐까? '자기 옷은 자기가 다리기' 남편과 결혼 전 약속한 것 중 하나다. 남편 옷을 다리지 않는 딸에게 겉으로는 뭐라 하셨으나 속으로는 나를 응원했을 어머니는 지금 곁에 없다. 링클프리 옷을 주로 사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면 셔츠는 여전히 구겨져 있다. 가끔은 남편도 다림질 안된 셔츠를 입으며 어머니를 기억할까?
불쑥 오래된 이야기가 생각나게 한 내 옷장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여러 곳서, 여러 이유를 핑계로 사들인 옷들이 제 역할을 다 했는지, 다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내가 모델이 아닐진대, 젊은 청춘의 한가운데가 훌쩍 지나갔는데, 멋진 옷을 탐낼 이유는 이젠 없다. 요사인 불편치 않고, 부드러운 것만 찾다 보니 뱃살만 늘어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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