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 왜 살아? 아니, 졸혼도 괜찮아! 살아오면서 가끔씩 들었던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끝이 났다. 다 큰 아이들까지 그런 소리를 하게 되는 심각할 사건이 있었을 때는 이혼을 실행에 옮기는 준비도 했다. 며칠 되지 않아 분노는 말랑해지고 슬그머니 그는 다시 내 옆으로 와 있다.
엄마만 있으면 돼! 아빠는 없어도 돼! 그에게서 받은 상처로 아이들은 모진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다. 그가 없이 아이들과만 함께 살면 행복할까? 아이들이 그만큼 나를 생각해 줄까?
딸들과 카페를 가고 쇼핑을 한다. 늘 그렇듯 노트북 끼고 여자들 뒤를 따라다니는 그가 못마땅해 어느 날부터는 여자 셋만 다니게 되었다. 딸들이랑 알콩달콩 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지난 몇 달, 엄마와 붙어 다니는 딸들이 슬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혼기라는 것은 없어! 결혼은 원할 때 하면 돼! 쿨한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이 감정은 도대체 뭔가! 은근 졸혼, 이혼을 내게 부추기는 딸들이 원하는 것은 뭐지?
선언을 했다. "엄만 아빠랑 살 거야!"
산 밑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고 했다. 수제 햄버거가 일품이고 일 인분에 1.5만 원 정도만 있으면 뷰 좋은 곳에서 반나절을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뭐 한 끼에 1.5만 원? 게다가 커피까지 마시면 2.0만 원이잖아? 지난 나의 삶과 다른 삶을 사는 딸들! 부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남편과 그 카페를 찾아갔다. 평상시 같으면 조각 치즈케이크 하나만 시켜먹고 나왔을 거다. 커피, 치즈 조각 케이크, 수제 햄버거, 모두 시켰다. 비싸다고 움찔거리는 그를 한마디로 제압했다. "이거 딸들은 몇 번이나 먹어 본거야!" 데이트하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를 본다. 치과치료에 핼쑥해져 주름이 더 파여 있는 볼, 머리숱이 없어 바람이 불어도 날아갈 머리카락도 없는 남자가 앉아 있다. "먹자! 케이크가 부드러워 먹기 좋을 거야!"
"저도 결혼하면 선생님 남편분 같은 사람을 고를 거예요" 젊은 조산사 후배는 늘 나의 일을 도와주는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이야기했다. 남편의 일이 줄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한민국 방방곡곡 아기들을 받으러 갈 때면 남편은 나와 동행했다.
가정 출산은 우리에게 설레는 여행이었다. 난산을 만나면 며칠을 타지에 있어야 했는데 모텔로 여자 혼자 들어가는 일은 참 싫었다. 남편과 함께 다니면서 그 불편감은 당연히 없어졌다. 나처럼 모텔을 씩씩하게 들어가는 여자는 아마 없었을 거다. 그는 숙소가 없는 지방을 갈 때면 차 안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기도 하고 한겨울 시골 경로당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여러 개의 가방을 끌고 나온다. 밤새워 아기를 받아낸 내 몰골도 말이 아니지만 키 큰 몸을 웅크려 차 안에 맞추고 불편하게 뒤척였던 그의 몰골도 가관이다. 서로 흉보며 킬킬거렸다.
이제 먼 곳으로 아기를 받으러 가는 일은 접었다. 장거리 운전도 힘들지만 타고만 있어도 진이 빠진다.그리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도 않고 나도 하기 싫다. 천천히 함께 하는 삶을 살거다. 그가 있어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