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무통주사는 안 맞습니다.
산업적 출산에 대하여.
보름달이 영근 지 이틀이 지나면서 동그랗던 달의 가장자리가 벌써 조금씩 깎이고 있다. 이번에 태어날 아기의 예정일은 보름 하고도 5일 후다. 둥근달 언저리에는 보나 마나 아기들이 태어나므로 약속은 없다. 며칠을 뒹글 거리다가 문득 오늘, 산실을 따듯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촉은 내가 생각해도 가끔 소름이 돋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새벽에 진통 소식이 왔다. 어릴 적 아랫목이 생각나게 산실은 따듯하다. 움츠리며 달려온 가족 모두는 집에서 조촐한 식사를 마치고 7시에 출산센터에 도착했다. 이미 몇 번 와보았던 아이들에게 산실과 거실은 낯설지 않다. 50% 진행되었다. 순조롭다. 길면 세 시간 짧으면 한 시간 내에 아기가 태어날 거다.
셋째 아기를 낳는 선희는 무통주사라는 것이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무통분만으로 두 아이를 낳았다. 남들도 다 맞는데 나만 안 맞으면 손해 보는 듯해서, 진통이 엄청 아프다며 꼭 맞으라는 주위 경험자들 덕분이다. 힘주기 감각이 없어져서 남의 힘에 의해 아기는 태어났다. 무통을 맞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 걸 뒤늦게 깨달았다. 쎄디스트는 절대로 아니지만 이번 아기는 순수 자연진통을 경험해보고 싶다. 마취가 되어 내 몸이 움직이지 못했던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멀쩡한 나를 약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 아니란 생각도 했다. 태어날 아기에게 무통 마취제인 모르핀이 주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낳아보자! 진짜 진통은 아플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진통이라는 것이 궁금하다.
발동이 걸렸다. 오가는 강한 진통을 처음으로 느끼며 이러다가 더 아픈 거냐고 연신 조산사에게 물었다. 내가 결정한 일이니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니 견딜만하다. 진통이 강해지고 반 이상 자궁문이 열리자 따듯한 물을 준비되고 있다. 풀에 채워지는 물소리가 참 좋다. 강한 진통은 미칠 것 같이 아프지만 다음에 오는 진통은 약하고 짧아서 참을 만하다. 계속 커다란 진통만 온다면 절대로 견딜 수 없을 거다. 조산사는 자연스러운 진통은 강, 약, 중강, 약,,, 또다시 그렇게 온다며 잘하고 있다며 위로했다.
이런 고통은 정말 처음이야! 우와! 아프다!라고 생각될 때 물에 들어갔다. 따듯한 물 덕분에 잠시 황홀했다. 이젠 아기가 나올 차례! 강한 진통이 연신 휘몰아친다. 이런 진통이 계속된다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남편이 뒤에서 양팔을 잡아 힘을 보탰다. 한계를 느끼며 여섯 번 진통이 오고 갔다. 마지막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아들이 태어났다. 잽싸게 물속에서 아기를 안아 올렸다. 아! 해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선희의 출산이 완벽하기를 기도했다. 선희가 덜 아팠으면 좋겠고, 다른 이들의 출산보다 빠르면서도 출혈이 없었으면 좋겠고, 뭐니 뭐니 해도 두 딸이 갓 태어난 동생을 잘 받아들이길 바랬다. 나의 터치로 감통이 되고 내가 제시한 자세가 그녀에게 최선이 되길 기대했다. 아픈 것을 넘어서는 경험으로 기억되길 바랬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물속으로 아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뛰어들어왔다. 동생을 만져보며 신기해한다. 이십여분 애쓴 남편도, 옆방에서 기다렸던 친정어머니도 난생처음으로 출산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진통의 시작부터 아기를 만나기까지 무슨 계획이 있던 것처럼 보였다. 걱정이나 거리낌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자기 집처럼 편안했다.
유난을 떤다고, 왜 애를 셋 씩이나 낳냐고 친정어머니는 못마땅해하셨다. 갓 태어난 아기를 만난 감동, 아이 낳느라 기진한 딸을 보고도, 당신 딸이 참 기특하단 말씀은 결국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얼굴에는 쓰여 있다. 안도하는 얼굴, 말없이 딸을 응원하는 마음이 보인다. 슬그머니 출산비 결재도 하셨다. 다섯 살 손녀가 태반이 궁금하다며 내 옆에 다가와 쪼그리고 앉았다. 아기를 싸고 있던 넓은 양막도 보여주고 고깃덩이 같은 모체면 태반도 보여주었다. 나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알아들었으려나? 초롱한 눈을 내게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제법 철이 들어 보였다.
2020년 마지막으로 선희의 아기를 받았다. 선희네 가족은 순하고 평화로웠다. 먼저 낳은 두 딸들도 그들과 닮았다. 처음 만난 이유로 머뭇거렸던 내 맘이 기우였다, 순한 이들에게 걸었던 믿음이 확신으로 변한 오늘, 참 고리타분하고 심심한 말! 모두에게 "고맙다"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