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민음사) 리뷰
오늘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 대하여 다루어보겠습니다. 솔제니친은 1962년 발표한 이 작품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고, 이후 <암 병동>과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솔제니친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나아가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함께 보시죠.
1. 수용소의 하루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제목 그대로 "이반 데니소비치가 수용소에서 보내는 하루"입니다. 민음사 기준 약 270페이지에 걸쳐서, 주인공 이반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의 하루를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그 하루 사이에 소소한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데, 솔제니친의 묘사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반이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시죠.
야채수프는 따뜻하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데, 다 식어버렸으니, 오늘은 그나마도 운이 없는 날이다. 그러나 슈호프는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설사, 지붕이 불탄다고 해도, 서두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이반을 따라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 갑니다. 점호를 받기 위해 밖에 서있는 동안 느끼는 추위, 힘든 작업 끝에 찾아온 식사 시간의 행복, 수용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이반과 함께 고스란히 느끼게 되죠. 그렇게 이반과 함께 하루를 다 보내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돌아 보며 우리는 안도하지만, 이건 기나긴 옥살이 중 고작 하루였죠... 책은 다음과 같이 끝이 납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중략)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 솔제니친의 삶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어떻게 이처럼 수용소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솔제니친 본인이 실제로 수용소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솔제니친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41년 23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합니다. 독일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하죠. 그런데... 1945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했는데, 이게 감시망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이 사적인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솔제니친은 무려 8년의 교정 노동형을 선고받고 강제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이 때 겪은 8년 간의 수용소 생활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3년 간의 거주 제한 유배 생활까지 한 뒤, 1956년에 마침내 솔제니친은 자유의 몸이 됩니다. 정말 끔찍하죠. 당시 러시아 사회의 공포 분위기는, 이 작품에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슈호프는 그저 단순하게 계산 속으로 결정해 버렸다. 즉,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반면, 인정하면 얼마가 됐든지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서명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고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비롯하여 체제 비판적인 그의 작품들이 탐탁치 않았던 '소련 작가 동맹'은, 그의 작품들을 검열하고 발표를 막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1969년 '소련 작가 동맹'으로부터 제명당하고, 1974년 국외 추방까지 당합니다. 이후 그가 오랜 망명 생활 끝에 1994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습니다.
3. 자유의 소중함
이오시프 스탈린은 1922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자리에 올라 1953년 사망 시까지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스탈린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분석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테니, 스탈린이 권력 유지를 위해 자행했던 "숙청"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스탈린은 1930년대 중후반, 조금이라도 본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거나 투옥하였습니다. 이 작품에도 "숙청"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그 사람한테서 들은 바로는 그때, 나를 추방했던 연대장도 연대 정치위원도 37년에 있었던 숙청 때 모두 총살 당했다는 거야. 그때는 프롤레타리아니 부농이니 하는 문제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야. 양심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던 거야... (중략)
그건 그렇고, 나중에 그중의 한 아가씨를 페초르에서 만나 은혜를 갚은 적도 있었지. 그녀는 35년에 있었던, 키로프 암살로 인한 대량 숙청에 걸려들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더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선해서 의료부에서 일하게 해주었지.
이러한 숙청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수백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너무나 억압되고 공포스러운 사회이자 시대였죠. 이 작품을 쓴 솔제니친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모두 공포정치의 희생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언제 수용소로 끌려갈지 몰라 벌벌 떨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