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철학의 동기와 이념
- 목차
현상학 들어보셨나요?(1) - 후설, 그는 누구인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2) - 후설 철학의 동기와 이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3) - 후설 현상학에서 태도의 문제
현상학 들어보셨나요?(4) - 판단중지와 환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5) - 본질직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6) - 의식과 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7) - 생활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8) 마지막 - 사랑의 공동체
철학의 개혁을 위한 당대의 움직임
후설 철학의 성격과 구조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사상의 발전과정에 따라 여러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후설 철학은 학문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많은 발전과 변화를 겪긴 하지만, 근본 동기와 이념은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철학을 엄밀한 학문성에 따라 전면적으로 개혁하고자 함이다. 그 당시 이런 개혁을 추구했던 사람은 후설뿐만은 아니었고 대다수의 학자들이 공유했던 생각이다. 즉, 철학이 기존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틀을 벗어나 좀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연과학적인 방법처럼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에 기반을 두고자 했다. 이런 사고가 당시에 팽배해져 있었으며, 브렌타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철학의 진정한 방법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다름 아니다."
심리학에 대한 기대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 것이 당시 갓 등장한 심리학이다. 심리학은 철학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으며, 심리학이 정신과학 내지 사회과학 영역에서 모든 개별 학문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졌던 것이다. 브렌타노는 이러한 사고의 대표적인 지지자로서, 그는 심리학이 물리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브렌타노의 당시 혁신적인 사고는 본래 수학을 전공했던 후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철학도 과학처럼 엄밀하게 발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수학을 심리학적으로 정당화하다
당시 후설의 관심은 수학자답게 수학을 어떻게 심리학적으로 정초 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수학이 자연과학의 기초인 물리학의 토대라고 볼 때, 수학을 심리학적으로 정초 한다는 것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후 후설은 교수 자격 취득 논문으로 '수의 개념에 관하여 - 심리학적 분석'을 저술하였다. 하지만 후설은 오로지 심리 작용으로만 수학적 개념을 해명하려는 시도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수학이 주관적인 심리 작용으로 환원된다면, 수학적 진리가 주관화, 상대화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심리학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져 있었기 때문에, 논리학 역시 심리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학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관적인 심적 작용과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이를 초월하는 객관적이고 순수한 논리 그 자체의 세계가 있다고 보았으며, 전자는 후자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反)심리학주의에 영향을 받은 후설은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여 심리학 주의에 빠져있던 자신을 비판하고, 기존의 자기 생각을 수정한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후설은 '논리연구Ⅰ'을 저술한다. 이른바 심리학주의에서 순수 논리학의 객관적 존재를 전제하는 태도로 급격히 전환한 것이다.
현상학적 사고의 출발
자신의 기존 사고를 수정하였지만 후설은 여전히 심리학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심리학적인 방법이 지니는 철학적 가치와 정당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후설은 심리학과 엄밀한 철학을 연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후설은 심리적인 요소와 이를 넘어서 있는 객관적 논리적 존재를 어떤 식으로 결부시키느냐를 자신의 과제로 삼게 되었다.
이를 위해 후설이 택한 전략은 주관적 심적 작용과 객관적, 논리적 존재 사이에는 나름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양자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양자에는 상응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양자를 잇는 매개로 브렌타노의 의식에 대한 주요 규정인 '지향성'의 개념을 토대로 삼았다. 지향성이란, "모든 의식 작용은 반드시 어떤 것에 관한 의식으로서 그의 상관자인 대상을 지닌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양자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좋은 방법론적 틀이었다. 이로써 후설의 철학은 어떻게 의식이 자신의 지향적 대상과 관계를 맺는지, 정확히는 어떻게 의식이 지향적 대상을 인식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펼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논리연구Ⅰ'의 후속인 '논리연구Ⅱ'이다. 이 저서에서 후설은 자신의 철학을 '현상학'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기술적 심리학'이라고 부르게 된다. 후설은 현상학의 개념 규정과 관련해 '논리연구Ⅱ'의 초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상학은 기술적 심리학이다. 따라서 인식 비판은 본질적으로 심리학이거나 최소한 오직 심리학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 논리학도 심리학에 기반을 둔다. 순수 논리학의 그러한 심리학적 정초, 곧 하나의 엄밀한 기술적인 정초의 필요성은 우리로 하여금 논리학과 심리학이라는 두 학문분과의 상호 독립성을 의심케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순수 기술은 이론에 대한 단순한 전단계이지 이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식 체험을 단지 순수하게 기술하면서 탐구하는 것을 경험적 해명과 발생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심리학적인 탐구와 구분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 체험에 대한 순수 기술적 탐구를 기술적 심리학 대신 현상학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후설의 사상은 심리학주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차별화되는, 그러면서도 나름의 심리학적인 방법을 취하고자 하는 후설 철학의 고유한 방법이었다.
현상학의 기본 이념과 성격
첫째, 현상학적 태도는 존재 그 자체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의 성격을 가진다. 이는 어떠한 이론적 전제나 편견 없이 주어진 대로 기술한다는 의미이며, '무전제성의 원리'와 일치된다. 후설은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가정을 특히 경계했다. 이는 확실한 근거 없이 단순히 전제되거나 주장될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둘째, 어떠한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적고 가장 직접적으로 존재 자체와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의식이다. 후설은 의식의 토대에서 존재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현상학은 인식론적 탐구에 초점을 두며, 이 인식론은 인식 주관이 대상 내지 객관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 인식 과정에 중점을 둔다. 후설은 주관적 의식 체험에 주목하는 것은 심리적 작용으로서의 사실적 측면이 아니라, 의식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 정확히는 의식과 대상과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즉, 현상학의 과제는 의식이 대상에 어떻게 인식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만약 의식이 이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후설의 현상학은 주관과 객관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후설 사상의 발전과 변화
이처럼 후설은 '논리연구Ⅰ, Ⅱ'에서 자신의 철학적 방향과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현상학의 철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후 현상학은 많은 변화를 겪지만 이는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보다 심화되고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설은 '논리연구'에 이어 '이념들Ⅰ'을 출간하여 '절대적, 초월론적 의식'의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이 의식이 외적 세계에 대해 독립적임과 동시에 근원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우선성을 바탕으로 초월론적 의식에 의해 세계가 규정된다는 이른바 '관념론적'세계관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노선변경에서도 '논리연구'에서 천명된 현상학의 방향성만은 유지한다. 후설은 초기에는 단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이념적 대상에 국한되었던 것이 점차 대상의 성격이 구체화되고 외연이 확대되면서 대상은 이제 세계 일반으로 확장된다. 이제 현상학의 중심 주제는 단순한 의식 분석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떻게 의식 주관과 상관성을 맺고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1920년대 이후, 의식에 대한 단순한 형식적, 정적 분석이 아닌 시간성, 역사성의 개념이 가미된 '발생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이른바 '발생적 현상학'의 체계가 정립되는데, 이에 상응하여 의식의 상관자인 세계 또한 그 구체성과 역사성 속에서 해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후설의 천명인 무전제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의식과 세계와의 상관성을 순수하게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학의 근본 동기였다.
"경험적 대상과 소여 방식 간의 이 보편적 상관관계 아 프리오리가 처음으로 밝혀졌을 때, 이는 내게 매우 깊은 감명을 주었다. 따라서 그 이후 나의 삶의 전 연구는 이 상관관계 아 프리오리를 체계적으로 해명해 정리하고자 하는 과제에 의해 이끌렸다."
방법론과 체계 사이에서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과 세계와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틀로서 발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설의 현상학은 한편으로는 어떤 체계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념들Ⅰ'이후, 후설 스스로 자신의 현상학을 '초월론적 현상학'이라고 부를 때 이러한 체계의 모습이 드러난다.
본래 철학에서 체계라 하면 어떤 세계관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특정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상학이 어떤 체계를 전제한다는 것은 근본 방향인 '무전제성의 원리'에 상충하게 된다. 그러므로 후설의 현상학이 방법과 체계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후설의 철학은 사실 인식론적 관심에서 출발했다. 즉, '우리 인간이 어떻게 대상 내지 진리를 알게 되는가?'하는 문제가 후설 철학의 기본 문제의식이자 출발점이다. 그리고 현상학은 이에 대한 방법론적 도구였다.
그러나 모든 인식론적 철학들은 인식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식 주관과 인식능력에 대한 해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식 주관이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또 어느 정도의 인식능력을 지니고 있는지가 해명되지 않고서는 인식론적 논의가 전개될 수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에 대한 어떤 존재론적인 성격 규정을 하게 되고, 이에 맞추어 인식대상 또한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존재론적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무전제적으로 의식 체험에 대해 주어진 그대로 기술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의식 주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존재론적인 규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후설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존재론적 체계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렇다면, 후설의 현상학은 결국 방법론적인가 존재론적인가? 혹은 무전제성을 지니는가? 체계를 지니는가? 결론적으로 현상학은 양자 모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만 어느 쪽에 힘을 주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양자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디머(Alwin Diemer)는 이렇게 말한다.
"현상학은 사실 우선 인식론으로서 나타나고, 계속 발전할수록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존재의 로고스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보편적인 존재론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지향성을 근본 원칙으로 삼는 참된 형이상학이다."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현상학의 기본정신은 여전히 방법론적인 관심에 의해 주도되면서 존재자 내지 사태 자체를 편견 없이 주어진 그대로 밝히고자 함이다. 현상학은 어떤 이론에 맞추어 사태 내지 존재를 규정하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사태 자체, 문제 자체로부터 유발된다. 현상학은 탐구하려는 존재자가 주관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일상적 생각(객관주의에 매몰된)을 하나의 편견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후설 현상학은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한 마디로 요약되어도 큰 무리는 없다.
"어떻게 존재자가 의식 주관에 주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