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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Jul 10. 2018

현상학 들어보셨나요? (5)

본질직관


- 목차


현상학 들어보셨나요?(1) - 후설, 그는 누구인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2) - 후설 철학의 동기와 이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3) - 후설 현상학에서 태도의 문제

현상학 들어보셨나요?(4) - 판단중지와 환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5) - 본질직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6) - 의식과 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7) - 생활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8) 마지막 - 사랑의 공동체






본질직관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 내지 초월론적 환원과 더불어 후설 현상학의 방법론을 특징짓는 또 다른 대표적인 방법이 '본질직관'이다. 이 본질직관의 방법은 후설 현상학과는 처음부터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이 본질직관의 방법이기도 하다.




현상학적 학문성의 토대가 되는 본질직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후설은 자신의 철학을 데카르트처럼 하나의 확실한 무전제적인 토대 위에 정초 하려고 시도한다. 후설은 진리의 근거지로 파악된 초월론적 주관성을 기반으로 자신이 구상하는 엄밀한 학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 초월론적 주관성은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논리적 주관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성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지니는 개별적인 체험류이다. 그러므로 이 주관성은 구체적이고 생동적이며 실제적 사태에 가깝다. 그러나 개별적이라는 한계 때문에 일반적인 학의 기본요건인 보편성과 필연성, 특히 객관성이라는 형식적인 요건은 확보되기 어렵다. 그래서 후설의 현상학이 다분히 주관주의적인 유아론이 아니냐는 비판도 여기서 근거한다. 하지만 후설에 따르면 본질직관의 결과물인 본질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지하고 있다. 


 "현상들과 관련한 학적인 확정들은 우리가 이 현상들을 절대적인 개별자이자 유일한 것으로서 고정시키고 개념적으로 규정하고자 할 경우, 현상학적 환원에 따라 수행될 수 없는 것은 전적으로 분명하다." 


 "본질 보편성과 필연성을 바탕으로 사실이 자신의 합리적인 근거들, 곧 자신의 순수 가능성의 근거들에 소급해 연관되며 그럼으로써 학적으로 된다."




본질의 보편성과 필연성


 본질은 기본적으로 개별, 특수와는 대립된 개념이다. 개별적, 특수한 것으로부터 추상화되거나 일반화된 것을 우리는 흔히 본질이라고 부른다. 즉, 어떤 특정한 사물이 그렇게 불리고, 또 그런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지닌 본질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질은 이것 없이는 이와 같은 종의 사물이 자신이 속한 종의 범례로서 결코 생각될 수 없는 사물의 필수적인 요소다. 곧, 본질은 필연적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또 본질은 해당되는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보편적이다.




직관의 대상인 본질


 후설의 독특성은 이 본질이 직관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곧 본질이 주관 연관적이고 주관의 상관자라는 것이다. 후설에 따르면, 본질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이라기보다는 나에 의해서 파악되어야 할 인식의 대상이다. 그래서 후설은 본질직관의 방법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후설의 본질직관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개체 직관을 전제로 한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개별적 대상과 관련된 무수한 변양체를 상상 속에서 자유로이 만들어낸다. 그다음에 이러한 상상작용 속에서 산출된 다양한 대상의 모사물 내지 변양체들 속에서 공통되고 합치되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합치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한다. 이렇게 파악된 것이 바로 이 대상의 본질이다.




본질직관의 선험적 타당성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긴다. 본질직관이 과연 모든 사람이 수행해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본질직관은 여전히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요서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설은 자유 변경을 통한 다양한 변양체를 통하여 경험적이고 우연적인 사실성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곧, 자유 변경이 활성화될수록 본질 파악의 타당성과 완전성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경험적, 우연적 한계를 넘어설수록 말 그대로 선험적인 필연성의 영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후설은 이 본질직관을 통해 수학적인 영역과 같은 선험적 필연성의 세계로의 진입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설은 수학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무한성의 개념을 이 본질직관에 적용한다. 곧, 자유 변경은 하나의 무한한 변경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유 변경이 풍부해질수록 주관적인 타당성에 매몰되지 않고, 이른바 선험적, 보편적 타당성을 지닐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본질에 대한 선 이해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변양체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자유 변경은 이미 시작할 때부터 그 한계가 정해지지 않는가? 하는 점이 고려된다. 가령 의자의 변양체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쿠키나 쨈 등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는 이미 본질직관의 출발에서부터 파악될 예정인, 본질에 대한 '선지식'이 관여하고 있음을 뜻한다. 곧 본질직관 이전에, 나는 이것에 대한 본질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에만 본질직관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됨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질직관은 내가 이미 이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본질에 대한 선지식을 구체화하고 확증하는 과정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선지식이 도대체 어디서 유래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본질직관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지식이 경험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본질직관이 다시 경험적인 우연적인 사실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본질과 공동체성


 선지식이 어디서 나왔느냐를 떠나, 이러한 선지식이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선지식은 이른바 우리에게 하나의 습성 형태로 저장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습성이란 근본적으로 개인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다. 어떠한 습성도 전적으로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지는 않는다. 따라서 경험적인 형태로 축적된 선지식일지라도 전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상호 주관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즉, 이 선지식이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이해된 본질은 문화와 역사성이 개입됨으로써 본래 후설이 의도한 바와 같은 엄밀하고 선험적인 필연성과 보편성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보편성과 상호 주관성을 지닐 수 있다. 이는 말하자면 구체적인 보편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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