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중지와 환원
- 목차
현상학 들어보셨나요?(1) - 후설, 그는 누구인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2) - 후설 철학의 동기와 이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3) - 후설 현상학에서 태도의 문제
현상학 들어보셨나요?(4) - 판단중지와 환원
현상학 들어보셨나요?(5) - 본질직관
현상학 들어보셨나요?(6) - 의식과 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7) - 생활세계
현상학 들어보셨나요?(8) 마지막 - 사랑의 공동체
판단중지와 환원
후설의 철학에서 '참된 철학적 태도'란 세계 전체에 대해 열린 태도를 의미한다. 물론 세계 전체를 다루어 온 철학 이론과 과학이론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무수한 규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설이 태도와 관련해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려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세계 개념이 정당한 철학적 태도에 근거해 규정되지 못했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제 후설이 무전제성의 원리에 입각해 철저한 무선입견성의 열린 태도에 기반을 두고 세계를 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자연적 태도에 대한 반성
후설의 논의는 일상적, 자연적 태도로부터 시작한다. '자연적 태도'란 소박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실 태도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일상적, 자연적 태도는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 될 것도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를 철학적으로 바라볼 때는 문제가 된다. 이러한 태도가 철학적일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박하다 라는 것은, 어떠한 비판적 반성 없이 당연하게 그리고 습관적으로 어떤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말한다. 그러므로 소박한 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편견에 근거한 판단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굳게 참되다고 믿는 것이다.
자연적 태도는 기본적으로 실용적인 관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자신의 실용적 목적과 욕구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즉, 우리 눈앞의 대상에만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한된 대상적 관심에 의해 지배되는 한, 이 배경을 이루는 전체로서의 세계는 눈에 들어오기 힘들어진다. 더구나 자신의 주관적 의견 내지 편견에 의해 대상을 바라보므로 오직 상대적인 시선에서만 이 세계를 접하게 되는 것이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이를 '독사(doxa)'라 하여 경계하였다.
자연적 태도의 소박성과 세계 존재에 대한 믿음
자연적 태도는 개개의 대상에 시선이 쏠려있다 하더라도 항상 이 배경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자연적 태도는 이 배경이 되는 세계를 당연히 실재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이는 곧, 세계 속의 개별적 대상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 세계 자체의 실재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후설은 이 세계 존재의 실재성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일종의 습관적 믿음이라고 본다. 후설은 이 믿음을 가리켜 특별히 '자연적 태도의 일반적 정립'이라고 부른다. 이 믿음은 너무나 견고해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계가 우리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객관주의적 태도에 물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적 태도와 객관주의는 구조적인 유사성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객관주의는 자연적 태도의 세련된 이론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제까지의 서구 철학이 학적으로, 보다 근본적이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주의를 취함으로써 자연적 태도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후설의 방법론적 입장은 보다 분명해진다. 철학이 철저히 중립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연적 태도에 내재된 뿌리 깊은 객관주의적 편견 또는 태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즉 자연적 태도가 지닌 세계 존재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설은 바로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를 말한다.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는 자연적 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태도에서 소박하게 전제된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일단 보류하는 것이다. 곧 판단중지란 '자연적 삶의 태도를 완전히 변경'하는 것이다.
"판단중지를 통해 자연적 태도의 본질에 속하는 일반적 정립의 효력을 무력화시키고, 이 정립이 존재적 관점에서 포괄하는 모든 것, 따라서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고 현존하는 전 자연적 세계에 단번에 괄호를 친다."
이를 통해, 의식을 초월해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초월적 대상(신을 포함한) 또한 일단 효력을 잃는다.
* 위의 인용구에서 말하는 '괄호를 친다'라는 것은, 판단을 보류한다는 말이자, 일종의 의지로 이해해도 된다.
판단중지와 반성적 태도
자연적 태도에서는 사실 세계 자체가 주제화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시선이 오직 대상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후설은 말한다.
"자연적 태도는 그때그때 주어진 대상에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즉, 판단중지의 본래 문제의식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대상에만 쏠려 있는 우리의 일면적인 태도인 것이다. 자연적 태도의 핵심은 한 마디로, 나 자신에게 관심이 돌려지지 않고, 외부 대상으로만 나의 시선이 향해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반성적 태도의 결여이다.
판단중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 - 초월론적 의식
판단중지를 통해 이제 나의 시선은 나의 의식 내부로 향하게 된다. 판단중지를 통한 의식은 세계의 일부로서의 경험적, 심리적 의식은 아니다. 판단중지를 통해 모든 세계적 존재가 일시적으로나마 타당성과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판단중지 후에도 남아 있는 의식, 말하자면 '세계무화(世界無化)의 잔여', '현상학적 잔여'로서 세계 존재의 배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이 의식은 세계에 속하지 않고 이를 초월해 있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후설은 판단중지를 통해 드러난 이 의식은 경험적, 세계적 대상과는 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내-존재로서의 경험적, 심리적 의식과는 차별화되는 순수한 의식을 가리켜 후설은 특별히 '초월론적 의식', 혹은 '초월론적 주관성'이라고 부른다.
후설은 이 판단중지로, 은폐되었던 혹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초월론적 의식이 드러나는 과정을 '초월론적 환원'이라고 부른다. 곧 판단중지는 '초월론적 의식'으로의 '환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판단중지와 환원의 최종 목적
후설은 단순히 초월론적 의식의 발견을 위하여 판단중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판단중지를 통해 초월론적 의식을 환원하고, 초월론적 의식에 대한 상관자(相關者)로서 세계를 주제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이 세계가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고 보이는가?라는 후설의 근본적인 물음을 풀어나가는 좋은 방법이다. 즉, 세계의 소여 방식 내지 현상(현출) 방식을 토대로 세계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설 현상학에서 세계에 대한 문제는 의식과 동떨어져 고찰될 수 없으며, 판단중지는 후설 스스로 말하듯 세계 자체와 세계의식 간의 초월론적 상관관계의 발견과 탐구를 위해서 이다. 후설은 말한다.
"처음부터 현상학자는 자명한 것을 의심스럽고 수수께끼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리하여 장차 다름 아닌 세계 존재의 보편적 자명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학적 주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역설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상학에서는 의식 자체의 고찰보다는 세계의 해명이 보다 더 중요한 과제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