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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Jul 19.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19

헬레니즘 철학 편 - 5. 교훈이 싫다면 서당을 떠나라 A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기독교의 태동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많은 관계로, 이번에도 A, B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아 수경낭자는 밖으로 마실을 갔다. 수경낭자의 마을에는 큰 서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서당을 지날 때면 항상 어린아이들의 천자문 외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그리고 가끔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종아리를 걷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훈장님께 혼이 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수경낭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수경낭자는 교양 있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께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아왔다. 하루 중 적어도 몇 시간은 글을 배워야 했고, 또 몇 시간은 음악을, 또 몇 시간은 예절을 배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덧 해는 져버려서 밖에서 뛰어 놀지도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한 번은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적어도 정오께에는 국희낭자와 함께 밖에서 놀게 해달라고 아버님께 말도 해봤지만, 아버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본디 배워야 한다. 너에게는 이 정도가 가혹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앞으로 조선의 왕이 될 세자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규율에 맞추어 공부를 한다. 그래도 성군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너는 겨우 이 정도의 규율이 버티기 힘들다 하여서 포기하려 한다면, 장차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아버님께 꾸중을 들은 날에는 기분이 우울해졌지만 어린 수경낭자로서는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에는 아버님께 꾸중을 듣기가 무서워 열심히 공부하는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겉으로는 하는 척했지만 실은 너무도 하기 싫었고,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수경낭자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 깨달은 바가 있었다. 행동하는 것과 마음먹은 것이 다를 때 느껴지는 고통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서당의 아이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옆모습이 보였다. 바로 오선비였다. 가까이 다가가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니, 오선비는 서당에서 훈장님께 혼이 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게 웃고 있었다. 혼이 나는 아이들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아버님께 혼나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웃는 것 같아, 오선비가 괜스레 미워져 말을 걸었다.






수경낭자  오선비님 아니세요! 여기서 또 무얼 하고 계신가요?


오선비  오오 이게 누구요 수경낭자가 아니오? 낭자께서 서당 근처에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오? 갑자기 공부라도 하고 싶어 진 거요?


수경낭자  오선비님. 또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그냥 저는 날이 좋아 마실 나왔을 뿐이에요.


오선비  허허 그러시오? 그럼 하던 마실을 계속하시오. 나는 저기 서당에서 혼나고 있는 아이들을 계속 보고 있을 거요. 저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소.


수경낭자  오선비님. 훈장님께 혼나고 있는 아이들이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오선비님도 어린 시절 훈장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있으실 것 아니에요!


오선비  껄껄 미안하게 됐구려. 나는 서당을 다니지 못해서 그런 기억은 없소이다.


수경낭자  음... 그거야 어찌 됐든! 아이들이 아파하는데 그걸 재밌어하다니요!


오선비  껄껄 수경낭자는 재미가 없소? 나는 자주 이 서당 근처에 놀러 와서 잘 알고 있는데, 매번 혼이 나는 아이만 혼이 난다오. 아무래도 저 녀석은 상당한 말썽꾸러기인 듯하오. 아마도 서당에서 정해놓은 교훈을 자주 어기는 것이 아닌가 싶소.


수경낭자  그런데 오선비님은 그게 왜 재미가 있는 거죠?


오선비  내가 재미있는 것은 저 아이가 혼이 나는 모습이 아니오.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은, 항상 혼이 나면서도 저 아이는 꼭 서당에 나온다는 것이오. 서당의 교훈이 맞지 않으면 서당에 안 나오면 그만인 것을, 저 아이는 기어이 서당에 나와서 혼이 난단 말이지. 나는 그 모습이 재미가 있는 거요 껄껄. 어떻소? 재미있지 않소?


수경낭자  듣고 보니, 항상 혼이 나는데 왜 서당에 계속 나오고 있는지 궁금해지긴 하네요.


오선비  껄껄 별다른 것 있겠소? 서당에 안 가면 아버지에게 더 혼이 날 테니 마지못해 나오는 것 아니겠소?


수경낭자  저도 어린 시절 아버님이 무서워서 공부하는 척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네요.


오선비  저기에 있는 아이들은 아마 훈장님 보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더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려.


수경낭자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매번 혼이 날 것을 알면서도 서당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퍼지네요.


오선비  허허 수경낭자.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것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오.


수경낭자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오선비  나도 항상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수경낭자의 입술을 탐하지 않소? 하지만 슬펐던 적은 한 번도 없었소. 오늘은 날도 좋은데 혹시 수경낭자의 고운 입술을 한 번 맛볼 수 있겠소?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이번 챕터에서는 헬레니즘의 철학에서 알아볼 큰 흐름들 중 마지막인 초기 기독교의 형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세철학은 신플라톤주의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시작으로 사도(使徒) 바울에서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초기 기독교 철학 형성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시대와 시대를 구분하고, 연결 짓는 부분은 철학이 아닐지라도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형성기를 잘 이해하는 것은 헬레니즘의 철학을 마무리 짓는 중요한 의미가 있고, 중세철학의 초석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르네 마그리트, <통찰력>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는 철학적인 개념을 반드시 가지고 있겠지만, 초기부터 그러한 개념을 지닌 채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역시 원래 하나의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로서 시작되었다. 기독교적인 활동의 배후에 그러한 활동을 하게 하는 철학적 개념이 이미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활동과 실천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갖가지 철학을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선(先) 철학, 후(後) 종교가 아니라 선 종교, 후 철학의 개념인 것이다. 종교가 철학적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첫 문장에 나와 있듯이 모든 인간은 천성적으로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뒷받침할 만한 철학적 개념이 없다면, 오랫동안 그 행동에 만족할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활동은 무엇인가? 도대체 이 활동을 왜 하는가? 도대체 이 활동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도대체 이 활동은 나의 어떤 면을 고양시켜 주는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에,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가질 수 없다면 금세 회의를 느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람이 어떤 실천을 오랜 시간 계속해 나가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철학적인 이론이 있어야만 한다. 기독교 역시 기독교의 철학을 낳게 된 것은 기독교도들이 자신의 행동과 신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한 이유였고, 수단을 넘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절차이기도 했다.


고흐, <아몬드 나무>


 기독교는 본래 종교였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여러 종교들의 종합이었기 때문에 어떤 종파들끼리는 친밀한 관계가 있었으며 어떤 종파들끼리는 적대적인 관계가 있기도 했다. 종교가 철학을 낳은 것이라면, 이렇게 다양한 종파들이 낳은 철학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예로,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 있어 가톨릭 사상의 절정으로 추앙받는 성(聖) 토머스아퀴나스가 너무 지나친 권위로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하는 자도 있었고, 각자가 자기 자신의 종교적 권위가 되고 안내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비록 지금의 가톨릭은 하나의 통일성을 갖추고, 그 발전에 있어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철학적인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인 제도 하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야 이 정도의 제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지 과거에는 무수한 격변이 있어왔다(물론 지금도 그 격변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모든 사상을 망라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번 챕터에서는 기독교의 초기 형성기에 관한 중요한 인물인 사도(使徒) 바울과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중에서 우선적으로 사도바울을 다룰 것이며, 다음 챕터에서는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를 다룰 예정이다.


고흐, <황색의 그리스도>


 사도바울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는 것이 시작으로 좋을듯하다. 기독교는 잘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명사를 본래 고유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칭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유태어)인 '메시아'를 희랍어(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이다. 메시아는 주로 '구세주' 정도로 우리말로 번역되는데 이는 개인적인 인물로 이해되기도 하고, 유태인 전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지 인류의 구원사상(救援思想)에 있어서의 중심적 존재임은 틀림없다. 최초의 예수 추종자들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예수를 자연히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예수 추종자들은 대개 유태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나 메시아라는 말의 엄밀성에 대하여 다소 애매하고 부적합하게 느끼게 되었다. 때문에, 이 칭호를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나 메시아라는 말보다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로 잘 알려지게 된 것이다. 


 유태교와 기독교는 사용하는 종교적 용어부터 신앙까지, 그 시작부터 기초를 달리 한 종교들이지만 유태교와 기독교 사이에 긴밀한 연결성이 있음은 아주 명백하다. 유태교는 구약을, 기독교는 예수의 행적이 담긴 신약을 기본으로 삼지만 사실 나사렛의 예수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유태교도였다(여기서 예수를 나사렛의 예수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의 의미를 명백히 하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구분 짓는 수단으로 출생지역을 이름 앞에 붙이곤 하였다. 예수는 당시 특별한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는 다소 특수한 신념을 가진 유태인이었음은 확실하다. 그는 유태교의 전통을 개혁하고, 그것으로 유태교를 좀 더 훌륭한 종교로 발전시키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예수의 행적과 예수의 말들 그리고 예수의 사상에 대해서 믿을만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신약의 복음서들도 어떤 저자들이(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문서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논어의 경우에도, 공자가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문서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반드시 경계를 요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런 생각이 기독교인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비칠지라도). 어떤 종교의 창시자든지 자신의 종교가 나중에 어떤 일을 만들게 될지는 알기 힘든 법이다. 예수 역시 그러했다. 예수는 자신의 행적과 가르침이 유태교를 배격하고, 새로운 종교의 창시와 그 밖의 무수한 유인(誘因)의 시발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듯했다.


니콜라 투르니에, <성(聖) 바오로>


 유태교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따르는, 즉 모세의 율법을 따르고 숭배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였고, 예수 역시 유태인이었다. 다만 예수는 율법의 근본적인 의의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해석을 내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유태교 내에서의 일이었지, 유태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기독교도 속에 속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유태교도 속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태교와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것은 학자들의 열성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의 기원은 예수 자신이 구상한 것이 아니라, 예수 사후에 다른 이들에 의해서 발전된 것이다. 이런 발전은 단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것은 절대 아니겠으나, 현재의 기독교의 발전에 있어서는 사도바울이 큰 기여를 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 사도바울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의 해방이라고 주장했다는 관점에서, 오히려 예수보다도 기독교 탄생의 기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예수와 사도바울이 의도했던 것에 대한 성취만으로 볼 때, 예수는 실패하였고 사도바울은 성공했다. 여기서 사도바울의 성공이란 예수를 자기 자신보다도 더욱 유력한 인물로, 그리고 후세 기독교 사상의 소임을 예수에게 부여했다는 점이다.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편인, 헬레니즘 철학 편 - 5. 교훈이 싫다면 서당을 떠나라 B에서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헬레니즘 철학 편 - 5. 교훈이 싫다면 서당을 떠나라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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