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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Jul 20.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20

헬레니즘 철학 편 - 5. 교훈이 싫다면 서당을 떠나라 B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편은 헬레니즘 철학 편 - 5. 교훈이 싫다면 서당을 떠나라 A에서 이어지는 편입니다.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사도바울은 유태인인이며, 동시에 로마의 시민이었다. 그는 유태인이기에 율법의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처음에는 예수의 추종자들을 자신들의 전통을(율법의 전통) 파괴하려는 위험한 사람들이라 여겼으며,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지 못하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후에 예수에 대한 신앙에게로 개종하였고, 예전 자신이 유태인의 전통을 보호하려 시간과 노력을 바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선전하였다. 그의 저술들은 기독교회에 보냈던 단편적인 편지 몇 통들이 전부이지만 후세에 이르는 영향력은 몇 통 안 되는 편지들에 비할 때 엄청난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본래 철학자는 아니었으며 남겨진 저술들도 적은데(저술이라기보다는, 위에 언급한 대로 단편적인 편지들), 그 까닭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시간을 바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편지들은 후에 기독교 철학에 있어 지배적인 원리들이 되었다. 


 그의 신앙적인 개념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죄에 대한 사상과 은총에 대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죄나 은총에 관한 것은 유태교에서 관심을 가졌던 사상들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도바울은 기독교로의 개종 이전에는 율법의 전통 아래에서 성장했다. 그는 유태교의 전통, 즉 모세의 율법을 신성한 진리의 법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중압감으로 작용한 듯하다. 아무리 율법을 따르며 행동한다 하더라도 율법이 터부시하고 있는 욕망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동경들마저 없애버릴 수는 없었고, 그러한 마음속의 가책은 그가 짊어지기엔 너무도 가혹한 형벌처럼 느꼈던 것이다. 그가 느끼기에 인간이 육체적인 동물인 이상 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아니다". 아무리 율법에 따라 외적으로 선한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내면적 본성만큼은 이성적으로도, 천성적으로도, 어떤 결단력으로도 여전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인간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이 자신의 내면으로 강림해야만 벗어난다고 느꼈고, 또 이는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종교적인 체험에 대해서 내린 결론으로 개종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즉 사도바울은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신 앞에서는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한 명의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마르크 샤갈, <jew at prayer>


 사도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힘이란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들어온 힘이고, 인간의 천성을 바꿔줄 힘이고, 더욱 중요하게는 인간을 드디어 '영(靈)적'인 인간으로 변형시켜줄 힘이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이 힘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힘을 통해서만 인간은 영적으로 될 수 있고 이러한 변형을 통해서만 내적 평화와 평온을 얻고 드디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육체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의 변형을 원했고, 그러한 변형에는 하나님의 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육체는 외적인 것이요, 영(靈)은 내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영적인 인간으로 변형이 되면, 인간은 더 이상 외적인 가르침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외적인 가르침이란 자신이 따랐던 유태교의 전통, 즉 모세의 율법이었다. 율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유태인의 의식과 관례에서 벗어남이고,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영적인 인간이 됨이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힘을 '은총'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인간은 드디어 죄에서 벗어나고, 육체적 인간에서 벗어나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은총을 받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였으며, 이는 기적이라 하였다.


 사도바울의 사상은 이원론적이라고 불리어지는데 이는 인간을 육체적 인간, 영적 인간으로 나누듯이 물질적 세계와 하나님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관장하는 두 가지의 법에 관한 나눔이었다. 두 가지의 법 중 하나는 구천계법(舊天啓法)이고, 하나는 신천계법(新天啓法)이었다. 여기서 구천계법이란 자신이 한 때 따랐던 모세의 율법을 뜻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율법의 목적은 일종의 교육이었는데, 인간들로 하여금 인간 스스로의 죄악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인 것이고 일시적인 교육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죄임을 안다고 하는 것과 그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신천계법이란 율법에 따른 죄의 교육이 아닌 복음에 따른, 은총에 의한 구원이었다. 그리고 이 복음이란, 율법과 달리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영구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율법을 따른다 한들 그것은 외적인 행동의 제한 즉, 육체적인 결박일 뿐 내적인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사도바울은 이 가르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재생되어야 한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육체적 인간에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재생된다는 것은 영적인 인간으로의 재탄생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이전 챕터에서 다루었던 플로티노스의 만물복귀(萬物復歸)의 개념과 흡사하게 하나님의 선물인 은총을 받는다면 인간은 언제든지 영적인 인간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느끼기에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눈에 들어서 죄가 사해지고 구원되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것을 사도바울은 사죄(赦罪)라 하였다. 사도바울에게 이 사죄는 신앙에 의해서만 오는 것이요, 행위를 통해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하지만 사도바울이 말하는 은총의 개념은 사실상 개인적인 체험에 의한 것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다소 분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사도바울은 항상 이 분명하지 못한 개념에 호소하고, 은총을 받은 후의 삶에 대해서만 논하였으며, 이런 것이 결여될 때의 타락만을 말하였으며, 자신의 사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확립하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기독교도들은 사도바울의 생존 시에도, 후세에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데 몰두하였지만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래서 교회의 공식적인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관한 논쟁들의 해결책으로 삼위일체설을 긍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자신이 제시한 개념들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내놓아주지 못했지만, 그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항구적이었다. 그 영향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유태교와 기독교의 절연이었다. 이는 유태인이 따르는 모세의 율법을 유태인에게만 한정되는 특수한 규율로, 그리고 율법이 가지는 권위나 지위를 떨어뜨렸다. 이는 까다로운 율법에 대해 반항심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둘째는 나사렛의 예수를 그리스도와 동일시 여기게 된 것이다. 셋째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라고 여긴 사도바울의 주장이 하나의 새로운 문제들, 예전 희랍 철학에서는 없었던 문제들, 기독교에서의 고유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고유한 문제란,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어떤 도덕적인 행동을 통해서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이성이 신앙의 밑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희랍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 여기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이자 목적으로 여겨 왔었는데 이것을 뒤집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그렇다 할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보다는 현명하다", 즉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이성을 펼친다 하더라도, 신앙(그것이 어리석다 할지라도)보다는 우월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통한 신앙의 비판 역시 부당한 것으로 만들고, 그러한 행위 자체도 죄의 흔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본격적인 중세시대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성은 신앙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권위를, 또 인간 자신을 신에게 넘겨주게 된 것이다.






철학자 소개


* 사도바울

 사도바울은 현재의 그리스도교가 있게끔 한 사람이다.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성장하였으며, 율법이 가지는 외적인 강제성과 그것을 따를 수 없는 자신의 내적인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하였다. 그가 남긴 저술들은 이렇다 할 것은 없지만, 그 몇 안 되는 저술들이 후세의 그리스도교 형성에 아주 중요한 개념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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