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철학 편 - 6. 갈라진 길 A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많은 관계로, 이번에는 A, B, C 세 편으로 나누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수경낭자는 아버님께 학문을 배웠다. 조선은 유교로부터 발전된 성리학을 나라의 기본 학문으로 삼고 있는데, 그 때문에 성리학은 나라의 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곧이어 아버님은 안타까운 어조로 조선의 조정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현재 조선은 크게 동인과 서인으로 분류되는 붕당정치를 이루고 있는데 치열한 다툼이 있다 하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동인이건 서인이건 본래 같은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거늘, 의견의 차이로 인해서 붕당을 결성하고, 서로 다투기만 하면 나라에 혼란만 초래할 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사실 수경낭자는 조선의 조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동인과 서인이 어떤 차이로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理)와 기(氣)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지만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동인은 퇴계이황의 가르침을 따르고, 서인은 율곡이이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만 기억해두었다. 수경낭자는 문득 사람들이 왜 서로 싸우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면 참 좋을 텐데 왜 이리 편을 가르는지 수경낭자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었다. 아무런 다툼 없는 편안한 삶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한 명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오선비였다. 오선비는 항상 저잣거리에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슬퍼 보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의 조정이야 어찌 됐든 큰 관심은 없지만 왠지 오선비의 의견이 궁금하여 저잣거리로 향했다. 오늘도 오선비는 역시 저잣거리에 드러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수경낭자 호호 오선비님 주무시고 계신가요?
(깊게 잠이 들었는지 오선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흔들어 깨우기가 미안해서 수경낭자는 한참을 기다렸다)
오선비 음... 잠들어 버렸군. 거참 이상한 꿈이야...
수경낭자 호호 일어나셨나요? 제가 불러도 쿨쿨 주무시던데요?
오선비 아 이게 누구요 수경낭자가 아니오? 흔들어 깨우지 그러셨소? 남이 자는 것을 빤히 보고 있다니 거참 고약한 취미를 가지셨소?
수경낭자 고약하다니요! 무례하시군요? 곤히 주무셔서 깨우지 않은 것뿐이라고요.
오선비 허허 농담이요 진정하시오 수경낭자.
수경낭자 그보다 무슨 꿈을 꾸셨길래 일어나시자마자 이상한 꿈이야 라고 말씀하시나요?
오선비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궁금하시오? 어려운 일은 아니니 말해드리겠소이다.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그래서 내 어느 길로 갈까 고민을 했소. 그런데 이거야 원 아무리 고민을 해도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좋을지 선택을 못 하겠는 거요. 그래서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돌면서 고민을 하다가 내 걸어왔던 길을 다시 보게 되었소. 그런데 그 길은 애초에 갈라진 길이 아니었지 않소? 그래서 나는 걸어왔었던 한 갈래로 된 길로 다시 돌아서 걸어갔소. 허허 이런 개꿈을 꾸었소.
수경낭자 호호 그것 참 이상한 꿈이군요? 그런데 왜 앞으로 안 가고 뒤로 돌아가셨죠?
(수경낭자는 오선비의 꿈 이야기가 재미있어 붕당에 관한 이야기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선비 내 꿈에서 가만 생각을 해보니, 어차피 내가 걸어갈 때는 앞을 보면서 걸어가지 않소?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가건 앞으로 가는 것이라면 고민 없는 한 길로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느꼈던 것 같소.
수경낭자 고민 없는 한 길이라고요?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생각해볼 만한 것 같네요.
오선비 허허 나랑 자주 이야기를 하더니 수경낭자도 시간 죽이는 일이 재밌어진 거요?
수경낭자 호호 그런가요?
오선비 길이라는 것은 걷다 보면 나누어지기도 하고, 다시 합쳐지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 다르기에 어느 쪽 길로 갈 것인지는 전부 다를 것이오. 하지만 결국은 다 만나게 될 것이니 너무 심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하오.
수경낭자 결국은 다시 만나게 된다고요?
오선비 허허 그렇소. 원래 길은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니었소? 내 모든 길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하오.
수경낭자 오선비님도 걸어가는 길이 있으실 텐데, 길 끝에 무엇이 있었으면 하시나요?
오선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생각이 났소. 난 길 끝에 수경낭자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오. 그리고 한 번 안아 주었으면 하오. 힘들게 걸어왔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소? 껄껄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이번 챕터는 헬레니즘 철학의 마지막 챕터이자 기독교 형성기를 종결짓는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사도바울 이후의 기독교적 분위기를 이해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이해가 갖추어져야만 왜 기독교가 철학을 낳게 되었는지, 그리고 성(聖)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루어낸 업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왕국의 기초는 사도바울과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인 약 4세기 동안에 걸쳐서 형성되었는데, 이 기초는 사도바울에서 그 시작이 있었고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완성되었다. 앞 챕터에서 말했던 대로 사도바울은 기독교 형성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지만, 다소 미흡한 획이었다. 애초에 그는 철학자는 아니었으며, 기독교적인 사상을 설파하는데 일생을 바쳤기에 특별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적 사유를 시작할 수 있게 끔은 했어도, 그 사유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철학적 개념은 형성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낳은 여러 기독교도 집단들 사이에는 어떠한 규율도 없었으며, 조직 자체의 통일성도, 어떤 공통된 신념 역시 없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에 와서야 교회는 어느 정도 공식적인 제도와 신조 그리고 철학적 개념을 갖추게 된 것이다.
사도바울과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의 시대는 보통 교부시대(敎父時代)라고 불리어지며, 교부들이 완성해 나간 기독교 철학은 후세에 교부철학(敎父哲學)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교부란, 기독교적 신앙에 관한 종교적, 도덕적 사상을 표명한 저술가들을 뜻한다. 교부들 중 일부는 철학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었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감정을 품기도 하였다. 교부들은 본래 신앙에 기초를 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철학을 신앙이 없는 자들의 자만심이 만들어 낸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희랍사상 전체를 신에게 반대되는, 순전히 인간적인 조작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당시의 교부들에게는 철학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될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기독교도들 중에서는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종종 희랍적 사유를 통해 기독교적 신념들과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독교내에서의 분열을 뜻했으며, 교부들은 그 이유가 철학적 사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부들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기독교도들을 이단이라고 비난하고 퇴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가 기독교도들에게(일반 사람들에게 까지도) 철학 자체를 의심스러운 일 혹은 죄를 짓는 일 등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명백한 이유를 들 수 없는, 감정적인 철학에 대한 비판은 영구적일 수 없었다. 그들은 근본을 찾아야 했다. 기독교에 반감을 갖는 교양 있는 적대자들에 대하여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또 자신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종교적 신앙을 하나의 합리적인 행위로 정당화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철학에 소양이 있는 기독교도들은 희랍의 사상들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체계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용한 희랍의 사상은 플라톤 철학과 플로티노스의 철학이었다. 그 이유는 희랍의 철학들 중에서 기독교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에 더욱 확고한 신념을 줄 수 있다면, 철학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학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철학을 신앙의 아래에서 봉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는, 다음 편인 갈라진 길 B, C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