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공사장의 소리)
여름. 수탉이 울기 전, 작은 지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씨발! 저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래. 오늘은 저 고장 난 선풍기 날개를 고쳐야 한다. (주섬주섬 바지를 입는다) 밖을 나서기 전 어젯밤 밖에 널어 둔 재킷을 가지러 가는데, 이게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늘 그렇듯 재킷은 먼지투성이다. 주머니 속에 있는 흙을 털어내며 현관을 나선다. 집 앞으로는 논밭 풍경이 보이는데, 그냥 바라만 봐도 속이 뻥 뚫리는 것 마냥 좋다.
먼지만 없다면.
자, 여기서 오른쪽으로, 아니 왼쪽 길로 돌아서면 얼마 안 가 작은 수로가 나온다. 어릴 적 이곳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우렁이를 잡아 오시곤 했다. 서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할 풍경이다. 이제 우렁이를 더는 볼 수 없다.
늘 그렇듯, 저기 20미터 남짓에서는 녹색연합 회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저들을 빨갱이라고 불렀다. 이유를 물어보면, 시위를 하면 그냥 다 빨갱이라고 했다. 그래, 그래. 존나 웃긴 일이다. 저들이 시위하는 이유는,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먹지도 못할 것을? 왜 저 짓거리를 하는 것일까? 심지어 우리 동네에 살지도 않으면서... 그런데 만약 저어새가 정말 사라진다면? 아니, 물론,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왜냐면 저어새는 존나게 많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
(먼지를 끌며 다가오는 트럭 발견) 저 멀리서 거대한 트럭들이 줄지어 나에게 온다. 길이 좁기 때문에 나는 풀숲 쪽으로 몸을 피한다. 저것들이 일으키는 먼지 덕분에 앞이 잠시 안 보인다. 먼지가 걷히면서 저 멀리 거대한 크레인들이 보인다. 너무 많은 크레인 구조 덕분에 그 숫자를 셀 수 조차 없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한국 기업이 근처에 공단을 세우고 있다. 덕분에 같은 계열사의 '스타필드'라는 복합 쇼핑몰도 들어섰다.
디올, 프라다, 펜디, 고야드, 구찌, 델보, 발렌시아가, 버버리,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티노, 페라가모, 지방시, 셀린느, 까르띠에, 베르사체, 벨루티, 발렉스트라, 몽클레어, 에트로, 랑방, 콜롬보, 톰 포드, 마놀로, 바놀로 블라닉, 톰 브라운, 마스터마인드, 돌체앤가바다, 휴고보스, 매카트니, 마크 제이콥스, 메종 마르지엘라, 아크네, 에르메네질도 제냐, 아르마니, 겐조, 스톤 아일랜드, 멀버리, 폴 스미스...
우리는 시골에 사는데 누가 씨발 저곳을 이용할까?
재밌는 건,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거다. 나는 종종 그들을 바라보기를 즐긴다. 나는 그들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눠봤다.
1. 저어새를 지키기 위한 사람. 이 말은 즉, 상업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
2. 대규모 상업시설을 찬성하는 사람들
3. 양쪽 진영에서 어떤 이익. 즉,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주 우스꽝스럽다. 진짜, 진짜, 정말로 살아 있는 희비극이다.
철물점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 저기 언덕이 보인다. 언덕을 오를 때, 아주 희한한 것을 목격했는데, 포크레인이 무언가를 부수고 있었다. 뭐지? 가만 생각해보니 그 루머가 맞는 것 같다. 오래전 저곳엔 마을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종종 기와나 도자기가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공사 중에 그것들이 발견되면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하고, 문화재청에서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이 발견되면, 공사가 잠정적으로 중단되기 때문에 종종 나와도 모른 척 그냥 부수고 공사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아마 저게 그런 현장이 아닌가 싶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내 일도 아니고, 나는 그냥 고장 난 선풍기 날개만 사면 되니까.
저 멀리 평상 위에서 부채질하며 앉아 있는 철물점 주인과 그의 친구들이 보인다.
"아저씨, 선풍기 날개 하나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