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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Mar 23. 2018

아버지와 맨소래담



 며칠 전, 물건을 옮길 일이 있어서 힘을 좀 썼더니만 그게 뭐라고 금세 근육통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팔뚝에 하나, 어깨에 하나 파스를 붙였다. 그런데 이놈의 파스가 워낙 냄새가 심해 팔뚝이랑 어깨에서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오더니 걸을 때마다 드문드문 내 코를 팍 쏘아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시원하면서도 뜨끈하고 코를 쏘아대는 파스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께 참 많이도 맞았다. 우리 집에는 적당한 길이의 나무 몽둥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몽둥이는 아버지가 낚시를 가셨을 때 몽둥이로 쓰면 좋겠다 싶은 나뭇가지를 꺾어온 것이었다. 가시가 박히지 않게 적당히 칼로 다듬어진 몽둥이였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보아도 이렇게 까지 해서 만들어 오셨어야 했나 싶었던 몽둥이였다. 시험 성적을 엉망으로 받아왔을 때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잘못을 했을 때면 아버지는 으레 숨겨놓은 몽둥이를 가져와서는 나를 혼내셨다. 아버지는 내 다리랑 엉덩이 쪽을 많이 때리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너무 아파서 손으로 허겁지겁 가려댔다.      


 "손 치워라! 뼈 부러진다!"      


 설마 손으로 막아대고 있는데 때리시겠느냐마는 난 정말 손가락뼈가 부러질까 무서워 손을 치웠다. 그렇게 한바탕 혼나고 나면, 내 엉덩이랑 허벅다리는 벌겋게 된 부분도 있고, 퍼렇게 멍이 든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내가 잠이 들면 아버지는 어디선가 간호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 초록색의 둥근 약통을 하나 들고 오셔서는 손가락으로 두어 번 푹푹 찍어서 내 멍이 든 엉덩이랑 허벅다리에 살살 발라주셨다. 


 "가만히 있어봐 약 좀 바르게…" 


 나중에야 알게 된 이름이지만 그 간호사 그림의 약은 맨소래담이었다.      


 어린 나이였기에 혼을 내는 아버지에게서는 내가 엇나가지 말고 곧게 커가라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고, 빨리 나으라고 약을 발라주시는 손길에서만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그 화끈대고 코를 쏘는 간호사 약의 냄새가 그리 싫지는 않았었다.     

 

 아들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 집안이라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분에 넘치는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혼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훌쩍 커버린 후로는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그 나무 몽둥이를 꺼내지는 않으셨는데, 이제는 다 커버려 매질이 통하지 않아 그러셨을 수도 있고, 내가 워낙에 실망스러운 삶을 살아가서 때릴 가치조차 없기 때문에 그러셨는지도 모른다. 난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덕분에 재수, 삼수까지 해서 겨우 대학에 입학한,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남들보다 2년이나 늦게 출발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더 이상 기대를 받지 못하고, 실망만을 안겨주는 아들이 되어버렸다. 이젠 기대가 없기에, 내가 그 나무 몽둥이를 볼 일은 더 이상 없어져버린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뒤로 나는 무슨 바람이 불어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하겠다고 달려들어서 20대 후반의 시간을 전부 보내 버렸다. 학생창업이 대부분 그렇듯 나는 실패했고, 집에서 책이나 보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이제 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내다 놓은 아들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내가 답답하셨는지 몽둥이가 아닌, 말로 매질을 하셨다. 


 "넌 세상 물정을 모른다. 취업도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넌 방구석에서 항상 뭐 하고 있는 거냐? 영어공부나 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책들만 붙잡고 있냐? 연, 고대 나온 놈들도 취업 안돼서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전부 달려드는데, 기껏 삼류대 나와서 너 같은 놈이 취업이 될 것 같어? 네가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네 친구들은 다 취업하는데 부럽지도 않디?"     

 

 아버지는 내게 종종 '삼류대 나와 가지고'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젠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아버지의 기대를 하나 이뤄 놓은 것이 있다면, 아버지 말씀대로 난 삼류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아버지가 참 많이도 미웠다. 그렇게 아버지께 욕을 두둑이 얻어먹은 다음날, 아버지는 평소 드시지도 않던 술을 잔뜩 드시고 오셔서는      


 "아들! 우리 아들 어디 있어? 다 아빠가 못나서 그렇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버지는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집에 오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업고 안방 침대에 눕혀 드렸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방에 눕히고 내방으로 돌아오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코를 쏘는 파스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린 시절 날 혼내시고 나면 아버지께서 늘 발라주시던 그 간호사가 그려져 있던 초록색 약통의, 그 냄새가 나는 듯했다. 이제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는 매질을 하고 약을 푹푹 찍어서 발라주기는 힘드셨는지,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예전처럼 나에게 약을 발라주셨다. 욕을 먹을 때만 해도 그렇게 미웠던 아버지였는데, 왜 난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에게 발라주시던 맨소래담이 괜스레 떠올라 내 마음을 다시 녹여놨던 걸까.   

   

 날 혼내시던 아버지를 미워했고, 약을 발라주시던 아버지를 사랑했다.     


 어쨌든 난 지금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마 근육통이 다 나을 때 까지는 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파스 냄새 덕분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를 듯하다.     


  내 유년의 시절이, 날 혼내시던 아버지의 매질이, 그리고 그 간호사 약이, 맨소래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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