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주 저는 '에티카'이다. 에티카는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2부는 신존재 증명, 345부는 인간의 감정을 다룬 윤리학이다.
신존재. 신은 존재하는가? 신은 무한자인가? 아니면, 유한자인가? 만일 유한자라고 한다면, 뭔가 끝이 있고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신은 무한자라고 말한다. 기존의 세계는 신이라는 절대자가 있고,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것이 맘에 안 들었다. 신은 절대자인데, 신이 자신 이외의 존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신은 자신이 만든 것과 관계가 형성되게 된다. 이는 말하자면 일종의 제약이다. 신에게 어떤 제약이 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제약이 생기게 되면 한계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좀 거친 예를 들어보면, 노예와 주인이 있다고 치자. 주인이 노예를 부려먹으려고 노예를 샀다. 그러면 노예에게 일을 시킬 텐데, 이 노예가 말도 잘 안 듣고, 일도 잘 안 한다. 그러면 주인은 노예를 속박하고 잘 부리려고 단속(?)을 하게 된다. 즉 지속적으로 신경이 쓰인다. 아니, 나는 주인인데 노예를 부리려고 노예와 관계를 맺고 신경을 써야 한다.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이 세계도 그렇다. 절대자인 신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은 신의 입장에서는 절대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아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 세계 전체를 신이라고 보면 어떨까? 신이란, 이 세계 전체의 모습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범신론적인 생각이다.
범신론. 신이 주변에 다 있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일본처럼 주전자의 신, 녹차의 신, 뭐 그냥 다 별의별 것이 신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신의 다양한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 어느 부분에서건 신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을 신이라고 비유해보자, 나는 기분이 좋을 수도, 기분이 나쁠 수도, 아플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나라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어떤 상태도 모두 나 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런 생각은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은, 창조주로서의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생각은 후대에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인 헤겔 역시 스피노자의 생각을 어느 정도 가공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345부인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부분은, 도식적으로는 '코나투스'의 개념을 알고 가면 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자신의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라는 것이다. 코나투스는 간단하게, 개개인이 모두 가지고 있는 에너지 정도로 생각을 해도 된다. 어떤 에너지인지는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가령, 내가 어떤 친구를 만난다고 할 때, 어떤 친구는 항상 불평, 불만이 가득해서 만나기만 하면, 내 기운까지도 쭉쭉 빠지게 한다. 이런 친구는 내 코나투스를 작아지게 만든다. 반면 어떤 친구는, 마치 비타민 같아서 같이 이야기만 해도 즐거운 영감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친구는 나의 코나투스를 증진시켜준다. 이처럼 개개인의 코나투스는 주변의 영향에 따라서 좋게 될 수도, 나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그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에서의 코나투스 개념이다.
여담으로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이 스피노자의 말이다. 물론 명확한 근거는 없다. 여기까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