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비 Apr 09.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5.

고대철학 편 - 3. 움직이지 않는 것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수경낭자는 오선비와 만난 뒤에는 항상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경낭자는 그저 맛난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를 듣고, 가장 친한 친구이자 김대감 댁 규수인 국희낭자와 꽃놀이를 다니면서 세상은 아주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오선비는 이러한 일들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지 이상한 말들만 늘어놓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먹는 것에는 관심이 있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느껴지는 것은 오선비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오선비 덕분에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은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모든 것이 변화한다'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니 세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사뭇 신비롭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저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꽃의 생명이 변화하여 피고 지는 것이었고, 그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자연의 흐름으로 다가왔다. 오선비와의 만남 후에 수경낭자는 마치 열병에 걸린 것처럼 세상의 변화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경낭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걸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현명하신 아버님에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느냐고 여쭈어보니 아버님께서는 "허허 우리 막내가 아직 봄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보구나, 하지만 물음이 재미있으니 대답을 해주마"라고 하시고는 대답을 해주셨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만약에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하지 않을 것 같구나 껄껄껄". 수경낭자는 한 번에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며칠 생각해보니 진리라는 것이 변화한다면 진리가 아닐 테니 진리는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친구인 국희낭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만약 물어본다면 분명 옆집의 이윤도령과 함께 놀릴 것이 뻔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저잣거리로 나섰다. 역시 오선비는 저잣거리에 있었는데, 오늘은 흥이 났는지 팔을 휘휘 저으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경낭자  오늘도 역시나 저잣거리에 계시는군요? 꼭 저잣거리가 집인 듯하네요? 호호     


오선비  아니 이게 누구요 수경낭자가 아니오? 시간이 참 많은 가보오 계속 이 미천한 선비를 찾아오시다니     


수경낭자  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서 왔지요. 저번에는 가만히 있으시더니, 오늘은 흥이 오르셨나 보죠?     


오선비  허허 그게 무슨 말씀 이시오? 수경낭자는 어찌 한 번을 못 맞추시오? 난 가만히 있는 중이었소     


수경낭자  오늘도 저를 놀리시나요? 분명 춤을 추고 계셨잖아요.     


오선비  허허 낭자는 항상 아무것도 모르고 말씀을 하시는구려, 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멍하니 있었소. 그러니 나는 움직이고 있던 것이 아니오.     


수경낭자  생각을 하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요?     


오선비  그렇소. 이런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요. 지금 수경낭자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오?     


수경낭자  (얼굴을 붉히며) 지금 제가 생각이 없다는 말씀이세요? 어찌 그렇게 무례한 말씀만 하시나요?     


오선비  껄껄 이제야 좀 움직이는 것 같소이다     


수경낭자  흥! 됐어요. 그보다 제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세상은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선비  허허 지금 진리라고 하셨소? 그런 말이 낭자의 고운 입술에서 튀어나오다니 아주 놀랄 일이오. 진리만은 변하지 않는다니 껄껄     


수경낭자  그래요 진리요. 진리만은 변하지 않는답니다.     


오선비  여기 저잣거리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보시오 이게 움직이고 있소? 안 움직이고 있소?     


수경낭자  오선비님은 눈이 없으신가 보네요? 당연히 움직이지 않고 있지요     


오선비  껄껄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진리 말고도 또 있었구려? 아니면 이 돌멩이도 진리라는 것이오?     


수경낭자  그건 아니지만... 지금 저를 또 놀리시는 거죠?     


오선비  껄껄 아니오 낭자를 놀리는 건 내게 재미가 없는 일이라니까!     


(수경낭자는 이 무례한 오선비를 어찌해야 골탕을 먹일 수 있을지 가만히 생각했다)

(오선비는 그런 수경낭자의 모습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오선비  껄껄 쉴 새 없이 말하는 그대의 입술만큼이나 움직이지 않는 그대의 입술도 참 곱소, 내게는 그대의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 진리 인가 보오!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헤라클레이토스의 판타레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었는데, 그의 의견처럼 만물은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서 변화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마저도 변하고 있다. 물론 헤라클레이토스도 그러한 흐름을 꿰고 있는 하나의 원리인 로고스가 있다고 말하긴 했었지만,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 있는 원리일 뿐 만물이 변화한다는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살펴보다 보면, 후에 자세히 알아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교하는 것 못지않게 상반되는 견해로 비교되는 두 철학자가 있는데,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와 이번에 만나 볼 파르메니데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주장이었던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은 고정 불변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극단적으로 만물이 운동하는 것조차 부정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이끌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이었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처음 접할 때 굉장히 난해할 수 있다. 하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따라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진정한 실재의 불변성 내지 항구성을 강조하였으며, 잡다한 유전(변화)의 세계, 우리 주위에서 전개되는 인간적인 것들의 세계는 허망한 세계이며 비실재적인 세계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파르메니데스의 말들은 모호하고, 난해하기도 한데, 그가 남긴 말들을 몇 가지 알아보면 이렇다.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사고와 존재는 같다"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들어가면, 진이 빠질 수가 있으니,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의 주장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설명하기에 앞서,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철학에서 '존재'를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는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있다', 여기 컵이 '있다', 강아지가 '있네' 이처럼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할 때 '있다'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은 단순히 이 '있다'의 개념이 아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하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 하고, '생성' 된다는 것에 대한 반대 개념이다. 즉, '변화', '생성'의 반대 개념이 '존재'이다. 마치 '움직인다'의 반대가 '정지'인 것처럼. 즉, 파르메니데스에게 '존재'하는 것이란, 변화하지 않고, 생성되지 않는, 고정 불변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을 뜻한다.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 만이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과는 사과다." 같은 단순한 동어 반복이 아니며, 논리학에서 말하는 a=a 동일률도 아니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인 것이다. 


 헷갈릴 수가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이 말에서 처음의 존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이다. 즉 '고정 불변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존재우리가 흔히 말하는 '있다'의 개념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정리하자면, 고정 불변하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만을, 우리는 진짜로 '있다(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한 풀어서 설명을 했는데, 이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고와 존재는 같다"는 간단하게만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존재할 수 없고, 그러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만 설명했는데, 여기서 너무 자세하게 들어가게 되면, 금세 철학에 대한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존재'라는 개념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주장을 토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입문 단계에서는 첫 번째 주장인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만 우선 이해하고 가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처음에는 감을 잡기 조차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만나보게 될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접하게 되면, 조금 더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하나의 장편시로 발표하였다고 전해지는데 1부는 진리의 길, 2부는 속견의 길이다. 1부의 내용은 앞서 말했던 두 가지 의견에서 도출되는 것들, 그리고 오직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개념이다. 2부의 내용은 대부분 유실되어서 추측해야 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진리와 속견, 지식과 오류, 실재와 가상, 지성과 감각 등의 서로 대립되게 나누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에 속아 변화하는 만물에 현혹당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허망한 것이며, 불변의 진리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엘레아의 제논


 파르메니데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철학자 중에 제논이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것을 증명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을 만들어 냈다. 제논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 것들이며, 우리는 그런 감각적인 들에 속고 있다."      


 제논이 남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문제인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을 알아보기로 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인데, 제논은 그런 뛰어난 영웅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적어도 한 뼘이라도 거북이가 아킬레우스의 앞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걸음걸이를 조금만 빨리해도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을 따라잡는 것을 알고 있고, 앞지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논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바꾸게 되면 아주 까다롭게 되어버린다. 제논은 이렇게 주장한다.                                                   


프란츠 마슈, <아킬레우스의 승리>


잘 보시오! 이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약간 앞서있는 상태로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해봅시다. 시합이 시작되면 거북이와 아킬레우스가 함께 움직일 것이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처음 있던 자리로 오게 되면, 거북이는 몇 발자국 걸어갔을 테니 거북이는 아직 아킬레우스의 앞에 있소. 그리고 또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던 자리까지 갔다고 해봅시다. 여러분 거북이가 바보요? 거북이도 분명 또 걸어갔을 것이오. 아직도 거북이는 아킬레우스의 앞에 있소. 이런 것을 아무리 반복해봐야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거북이의 발꿈치만을 따라가게 될 것이오 어떻소?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시합


 제논의 이 문제를 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저 감각적으로만 호소할 수 있을 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어 수많은 철학자들을 힘들게 했던 문제이다. 사실 이는 '무한'의 개념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최소한의 물리적 지식이 없다면, 증명하기가 힘이 들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증명은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는 증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문제 이외에도 '날아오는 화살은 절대로 자신을 맞힐 수 없다'라는 문제도 있는데 이 문제는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길 바란다.     


 결국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을 쉽게 정리해 보자면, 자신의 감각에 속아서 만물이 변화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고, 진정한 실재는 변화하지 않으며 고정 불변하다 라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중 누구의 주장이 맞는가에 대한 것은,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아직도 무궁무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철학자들은 두 의견을 절충하는 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실재

 철학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실재'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을 일컫는 좁은 의미가 아니다. 실재라는 단어는 약간 포괄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쉽게 말해서 우리의 주변에 있는 것들의 진정한 실체를 말한다. 존재하는 것(존재자)에 대한 근본적인 모습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글에 따라서는 '실재'를 강조하기 위해 '진정한 실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철학자 소개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엘레아 지방에서 태어나 활동했으며, 엘레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주로 "만물은 유전한다"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와 비교되는 철학자이며,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후대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남아있는 경구들은 난해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쉽지 않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난해한 점 때문에 활발히 연구되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