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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Mar 31.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4.

고대철학 편 - 2.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수경낭자는 무례한 오선비와의 대화 후에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라는 물음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수경낭자는 그 이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 현명하신 아버님께 여쭈어 보았지만 아버님께서는 "허허 우리 막내가 봄바람이 들었나 보구나? 그럴 땐 그저 거문고를 뜯으며 마음을 달래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는 말씀만 해주셨다. 아버님 말씀대로 그저 봄바람인가 싶어 거문고를 뜯었지만, 그 질문은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며칠간 나름 재밌게 궁리한 탓에 오선비에게서 처음 느꼈었던 무례한 인상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사랑이 정말로 세상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인지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확신이 서지는 않게 되었지만,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오선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답을 듣지 않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답을 듣기 위해서 다시 한번 귀한 몸을 이끌고 저잣거리로 나서게 된다. 역시나 오선비는 저잣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선비가 미동도 없이 돌부처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수경낭자  무례한 오선비 님께서는 오늘도 저잣거리에서 시간을 죽이고 계시는군요?     


오선비  ......     


수경낭자  이제는 못 들은 척하시는 건가요? 왜 가만히 있으신 거죠?     

(한 오분쯤은 가만히 있다가 오선비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선비  이게 누구요! 수경낭자가 아니오? 귀하신 몸께서 이 미천한 나에게 무슨 볼일이시오?    


수경낭자  제가 말을 거는데도 가만히 계시다니 오늘도 역시나 무례하시군요.     


오선비  허허 그게 무슨 말씀 이시오 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소!     


수경낭자  그대야말로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부터 계속 가만히 있으시지 않으셨나요?     


오선비  허허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요. 내 머릿속과 내 오장육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소만?     


수경낭자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것이지요?     


오선비  천만에! 내가 무슨 재미가 있다고 낭자를 놀리겠소. 지금도 바삐 움직이느라 아주 힘든 상태요. 가만히 있는 사람들도 사실은 부단하게 움직이고 또 변화하고 있소. 그러니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게 되거든, 사실은 아주 바쁜 상태일 것이니 함부로 말을 걸지 마시오. 아마 말을 걸어도 못 들을 것이오.     


수경낭자  항상 말도 안 되는 말씀만 하시고 저를 놀리는 것이 아주 재미있으신가 보네요?     


오선비  허허 낭자를 놀리는 건 내게 재미가 없는 일이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말은 재밌어 보이는 구려.     


수경낭자  흥! 됐어요. 그보다 세상은 무엇으로부터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그대의 생각이 궁금하니 말씀을 좀 해 주세요. 그것만 듣고 난 돌아가겠어요.


오선비  허허 보기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으시오 그 물음을 아직도 생각하고 계셨소? 뭘 물으시오 그저 세상은 세상일 뿐이지 허허.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오. 세상은 세상이오.     


수경낭자  장난 그만하시고 말씀 좀 해주셔요.     


오선비  그대의 고운 입술을 한번 맛보게 해준다면 내 기꺼이 한번 생각을 해보겠소만...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고대 철학자들의 업적이나 철학적 행보들은 마치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먼지들과 같다. 그 업적과 행보들이 보잘것없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고, 붙잡기가 힘들다 라는 의미이다. 그 당시의 철학자들은 자신만의 철학적 체계가 확립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취합하여 하나의 저서로 남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쩌면 저서를 남기긴 했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그 철학자가 남긴 말이라고 추측되는 것으로부터, 그의 사상체계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마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고대철학은 단편적인 사유의 파편들을 채집하여 연구를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고대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고 있는 파편들이 있다. 바로 변화에 관련된 파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막상 철제 제품들만 보아도, 사실은 끊임없이 부식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소 슬픈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순간에도 매 초 우리는 늙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할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이렇게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함에 주목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이다. 아직도 주변에서 말해지고 있는 유명한 말들 중에는 고대에서부터 살아남은 말들이 많은데,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들도 여럿 남아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유명한 말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만물은 유전한다(변화한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이다. 이 두 문장에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큰 비약은 아닐 것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이유는, 발을 담그는 순간에도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고, 그 순간의 나 자신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끊임없는 변화를 판타레이(panta rhei)라고 한다. '판타레이' 이 한 문장에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의 진수가 담겨 있다고 말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앙리 마티스, <춤 II>


 그렇다면 세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기만 하는 무질서한 혼돈 같은 것 일까? 돌고 돌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춤사위 속에서도 그 중심이 있지 않겠는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변화하는 자연의 배후에도 어떤 항구적인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법칙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logos)라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태양도 자신의 법도를 넘지는 못할 것이오"라고, 하지만 이러한 로고스는 매우 비밀스럽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드러나지는 것은 아니다. 이 변화하는 세계를 그저 순간적인 감각들로만 받아들이면 안 되고, 반드시 탁월한 이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아야만 비로소 로고스를 볼 수 있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한다.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도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 소개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두운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였으며(위의 헤라클레이토스 삽화에서도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평소 하는 말들이 대부분 짧은 경구들이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도 많았게 때문에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매우 조소적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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