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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15.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6.

고대철학 편 - 4. 변화 속의 불변 A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이번 챕터인 변화 속의 불변은 양이 많아 A, B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하겠습니다.



 수경낭자는 며칠째 오선비와의 대화를 생각했다. 오선비는 항상 말도 안 되는 말로 억지를 부리는 것이, 꼭 옆 마을 포도청의 사또 같았다. 어느 날은 가만히 있었으면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하고, 또 어느 날은 춤을 추고 있었으면서, 사실은 움직이지 않은 것이라 말하고, 이는 분명히 자신을 놀리는 것이 분명했다. 또 무슨 말을 하면, 뱀처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는 것이 꿀밤을 한 대, 아니 세 대 정도는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수경낭자는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가지의 생각은 꼭 윷가락의 앞면과 뒷면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수경낭자는 현명하신 아버님께 이를 여쭈어 보았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세상이 변하는지, 변하지 않는지는 이 아비도 잘 모르겠구나, 그런 건 산속에 있는 신령님께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보다 오늘 읽어야 할 논어는 읽었느냐?" 아버지께서 갑자기 논어를 읽었는지 여쭈어보셔서 수경낭자는 "네 읽고 말고요. 학이시습지!"라고 대충 얼버부리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수경낭자는 햇살을 맞으며, 근처 동산에 앉아 꽃을 바라보았다. 그 꽃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수경낭자는 무언가 번쩍! 생각이 들었다. 꽃은 살아있다. 하지만 뿌리는 땅에 있어 움직이지 않고, 줄기와 꽃잎은 바람에 흔들리는데, 혹시 이 세상도 그런 것은 아닐까? 수경낭자는 이번에야말로 오선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저잣거리로 나섰다. 역시나 오선비는 저잣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오선비는 참 한결같이 각설이 같은 모습이었다.




수경낭자 호호 오늘도 역시나 저잣거리에서 잠이나 주무시고 계시는군요? 일어나 보세요!


(하지만 오선비는 움직이지도 않고 잠만 자고 있다)


수경낭자 (큰소리로) 오선비 님!


오선비 어이쿠야! 누가 이렇게 격식 없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오! 한참을 잘 자고 있었는데 말이오.


수경낭자 이제야 일어나셨군요? 왜 오늘도 사실은 자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고 계셨나요?


오선비 허허! 이거 수경낭자 아니오? 어찌 아셨소? 꿈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소. 이제야 좀 말이 통하시는구려?


수경낭자 흥! 됐어요. 그보다 제가 무언가를 알아왔으니 한 번 들어보세요.


오선비 아니 수경낭자께서 뭘 그리 생각해오셨소? 요새 나보다도 시간이 많은 가보오?


수경낭자 그래요 시간이 많아서 생각 좀 했어요.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속은 변하지 않는 답니다.


오선비 아니 이게 무슨 각설이 타령 같은 소리요? 자는 사람을 깨워놓고서는 겨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난 다시 잠이나 자야겠소.


(오선비는 각설이 같은 모습으로 다시 드러누웠다)


수경낭자 오선비 님!


오선비 껄껄 미안하오. 내 장난 좀 쳤소. 흥미 있는 말인데 한 번 계속해보시오.


수경낭자 저기 있는 꽃을 보세요. 꽃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지만, 줄기와 꽃잎은 계속 흔들리고 있어요. 이 세상도 그런 것 아닐까요? 우리가 보는 것은 변화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오선비 오오! 그것 참 재미있는 생각이오.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라... 그것 참 묘안이오!


수경낭자 호호 어때요? 제가 깨달은 진리랍니다.


오선비 그것 참 대단한 진리요. 오늘은 내가 수경낭자에게 한 수 배운 것 같구려. 얼마나 시간이 많이 남았으면 그런 것을 생각하셨소? 껄껄


수경낭자 호호 이제 다시는 절 놀리지 마세요. 저도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오선비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니 대단하구려. 그런데 그보다 종일 먹은 것이 없다 보니 배가 고픈데, 먹을 것좀 없소?


수경낭자 지금은 없어요. 그리고 제가 뭐가 좋다고 오선비 님께 먹을 것을 드리나요!


오선비 허허 산수유처럼 붉고 고운 입술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세상을 생각하기 전에, 말투부터 변화를 주는 것이 어떻겠소?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앞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알아봤었는데, 이는 딱 보기에도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철학자들은 일종의 '아포리아'에 봉착하게 된다. 어느 의견 하나 확실하게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뤼겐섬의 백악 절벽>


* 아포리아(aporia)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인데, '길이 없다' 혹은 '막다른 골목'정도의 의미이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쓰일 때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즉 난제를 말한다. 모순을 나타내는 '패러독스'와는 약간 다르다.



 보통 학문에서, 어느 한쪽도 무시할 수 없는 견해가 나오게 되면, 후대에는 그 두 견해를 종합하려는 시도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의견 역시 서로의 선을 지키며 통합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의견,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통합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두 견해가 통합되는 시기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다원론을 주장했는데, 다원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일원론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앞에서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에 대해 알아보았었는데, 탈레스는 이 세상의 만물이 물에서부터 왔다고 주장했었다. 탈레스는 세상의 근본 원리(arche, 아르케)를 '물'이라는 하나에서 찾은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apeiron)'으로 설명했으며,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은 공기로부터 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만물(세상)을 하나의 근본 원리로부터 해석하려는 것이 '일원론'적인 태도이다. 그렇다면 '다원론'적인 태도가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다원론자'들은 세상의 원리를 일원론자들처럼 한 가지에서 찾지 않고 여러 가지로 찾는다. 이제 알아보게 될 '엠페도클레스'를 간단히 먼저 말해보자면, 엠페도클레스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 원소로부터 만물이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자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의견 대립으로, 철학자들은 아포리아에 봉착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의견을 종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일원론적인 태도를 벗어나, 세상을 다원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어쩌면 벌써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변화와 정지로 대변되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이 통합됨에 있어서, 다원론적인 철학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이다. 우선 이 설명을 간단히 하고 시작하는 것이 수월할 것 같다. 잠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좋든 싫든 '화학'이라는 과목을 배웠을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는 안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화학 시간에 물의 화학기호가 'H2O'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물은 수소(H) 2개와 산소(O) 1개가 결합된 형태인데, 수소와 산소는 각각 '원소'로서 변하지 않는 고정된 물질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실제적인 물은 컵의 형태에 따라서 모양이 변하고, 흐르기도 한다. 즉, 현상은 변화하지만, 내부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원론적인 해석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파르메니데스의 '정지'를 통합되고, 서로 섞일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 물론 현대화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고 있어서, 물분자로 가볍게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변화 속에는 고정된 것이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서론이 굉장히 길었던 것 같은데,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이번 챕터의 주제는 말했던 대로, 다원론적인 철학이다. 중요한 철학자들인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세 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종교의 사제였고, 정치가였으며, 의사였고, 시인이었고, 학자이기도 했다. 엠페도클레스가 첫 번째로 제기한 문제는 역시 세상의 근본 원리(arche, 아르케)였다. 그는 근본 원리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에서 찾으려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위에서 간단히 알아본 대로,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 원소로 세상을 해석했다. 다만 여기서 풍(風)은 한자의 뜻 그대로 바람이라는 의미보다는 '공기'의 개념으로 이해함이 좋다. 엠페도클레스는이 4가지의 원소를 우리가 보는 현상들의 뿌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가지 근본 원리는 현대에는 '원소'라는 화학적 개념으로 남아있고, 여러분도 익숙한 개념일 것이다.


지수화풍 4 원소


 이 4 원소들의 특질은 온냉건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 4 원소가 파르메니데스의 고정불변의 실체 개념이며, 이들의 조합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 원소들의 조합은 현대적으로 보면 다분히 화학적이다. 가령 엠페도클레스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나무=흙 3+물 3+불 1+공기 1. 현대화학에서 물을 H2O라고 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엠페도클레스의 이러한 개념은 현대 화학의 기본 기틀을 마련했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 분자의 구조


 그렇다면, 지수화풍의 4 원소가 어떤 이유로 결합을 하고 분할되는지의 문제가 남는다. 왜냐하면 엠페도클레스의 4 원소들 각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져야만 했다. 그래서 엠페도클레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랑'과 '미움'이라는 인간적이고, 시(詩)적인 표현을 끌어온다. 물질들에게 사랑과 미움이라니? 지금 들으면 좀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엠페도클레스에게는 이를 설명하기 위한 마땅한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인력'과 '척력'인 것이다. 그의 혜안이 돋보이는 설명이다.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을 간단히 알아보았는데, 한 가지만 더 알고 갔으면 좋겠다. 바로 엠페도클레스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이 순환하며, 4단계의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시기는 둥근 시기로, 세상에는 사랑만이 존재하여, 모든 것은 하나이고, 보편적이다. 그리고 다음 시기에는 투쟁(미움)이 끼어든다. 그리고 원소들이 분리되고, 다양해진다. 엠페도클레스는 우리가 바로 이 두 번째 시기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후에는 투쟁이 승리하여 사랑과 결합을 찾아볼 수 없는 '개별자'들만 남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이 시기에 다시 사랑이 끼어들고 첫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세계관 자체도,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이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 - 사랑과 미움 - 미움 - 미움과 사랑 - 사랑 -... 이렇게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다.


사랑의 신인 <에로스>와 전쟁의 신인 <아레스>


* 변화 속의 불변 B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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