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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17.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7.

고대철학 편 - 4. 변화 속의 불변 B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6.' 변화 속의 불변 A에서 이어지는 편입니다. 06편을 먼저 읽으시면 좋습니다.



데모크리토스


 고대의 기록들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데모크리토스를 '원자론'과 '유물론'의 대표자로 삼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사실 데모크리토스 이외에도 레우키포스라는 철학자도 있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업적이 워낙 거대해서 그의 그림자에 감추어져 있다. 이번 챕터에서는 데모크리토스에 대해서만 알아보도록 하자.


* 유물론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정말 거칠게 말하면, 유물론(唯物論) 즉 오직 물질뿐이라는 논의이다. 이 세계의 근본은 물질이며,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 의지등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논의이다. 이 세계를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유물론과 반대되는 논의로는 유심론(唯心論)이 있다.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 철학의 기본적인 사상은 바로 '원자'에 관한 이론이다. 여기서 잠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위에서 본 '원소'와는 약간 다르다. 위의 원소는 일단 지수화풍의 4가지가 있고, 각각은 각자의 특질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원자'는 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한 가지만이 존재한다. 바로 이 원자 개념이 데모크리토스에게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집약한 것이다. 그리고 예측되는 대로, 이 원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조합이 되어 이 세계가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변화들이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개념이다.


 이제 원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모든 원자들은 꼭 같은 종류다(특질이 하나다). 다만, 이 원자들은 모양은 다르다. 가령, 낫 모양의 원자가 있고, 갈고리 모양의 원자도 있으며, 구슬 모양의 원자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크기들 역시 다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면, 우리에게 찰흙이 있는데, 이 찰흙을 적당히 떼어서 여러 가지 모양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고 보면 된다. 크기와 모양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은 같은 찰흙으로부터 만들어진 형태들인 것이다. 그리고 원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배열될 수도 있으며, 서로 다른 위치를 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원자들은 순수하게 '양적인' 변화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로 들었던 찰흙처럼 아무리 다른 모양을 만들어 내도 그것은 찰흙이며, 질적(찰흙의 특질)으로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이 원자들이 모여 있는 정도에 따라서, 딱딱하기와 무게가 변한다고 하였다. 이는 현대적으로는 '밀도'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데모크리토스의 의견이 현대 과학에서도 유효한가?를 물으면 일단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화학 시간에 배운 것처럼 세상에는 약 100종류가 되는 원소가 존재하며, 그 원소들은 각기 다른 특질(성질)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이 원소들이 수소원자의 핵과, 일정한 전자로 모두 환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학이 더 발달하게 되면,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원자'개념을 나타내는 새로운 물질이 발견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역시나 데모크리토스는 천재적인 생각을 펼쳐둔 것이다.


주기율표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간단히 알아보았는데,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공간'에 대한 논의이다. 자, 과연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공간이 존재할까? 즉, 절대적인 '진공'의 상태가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 우리는 흔히 텅 빈 방을, 텅 빈 공간이라고 말한다. 공간(空間)은 어떤 사이가 비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도 흔히 그렇게 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텅 빈 방이 정말로 비어있는가? 아니다 사실은 그 안에는 공기로 채워져 있다. 이 공기는 무수한 분자들로 채워져 있다. 산소도 있고, 이산화탄소도 있다. 자 그렇다면 이 공기도 완벽하게 산소와 이산화탄소 혹은 그 외의 분자들로 꽉 채워져 있을까? 아니다. 이 분자들 사이사이에도 틈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틈은 '절대적인 공간'일까? 그것도 아니다. 이 분자들 보다도 더욱 작은 물질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 더 작은 물질들의 사이는 절대적인 공간인가?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더욱더 작은 미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절대적인 공간이 있을까? 아직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절대적인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절대적인 공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진공 주의자', 그리고 절대적인 공간은 없고, 세상은 완벽하게 꽉 차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플레니스트'라고 한다. 그들은 이 꽉 차있는 세계를 플레넘(plenum)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플레니스트라고 불린다. 참고로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계를 플래넘의 세계로 보았기 때문에, 즉 공간이 없기 때문에 변화도, 움직임도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꽉 찬 플래넘의 세계의 형상


* 플래넘의 세계를 표현할 이미지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이건 상아 당구공이다. 하지만 당구공이 아니라, 내부가 꽉 차 있어서 어떠한 움직임이 없는 그런 세계를 상상하면서 보시면 된다.


 공간에 대한 논의가 길었는데, 이 공간을 왜 이리 길게 이야기했는가 하면, 데모크리토스는 '절대적인 공간'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니, 달리 말하면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키려면 절대적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바로 사물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 세계가 플레넘(빈틈없이 꽉 차있는)의 세계라면 어찌 운동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원자들은 텅 빈 공간 덕에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이 운동에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운동은 영원하다', '강제적인, 압력과 충돌에 의해 생긴다', '자동적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발상이다. 기존의 세상은 여러 신들로 가득 차 있던 세계였는데, 오직 물체(원자)와 운동만을 가지는 기계적인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그저 원인과 결과만이 있는, 단순한 연쇄작용일 뿐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전부 양적으로 해석 가능하기에, 모든 사건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운동이란, 우리가 당구를 치는 것과 흡사하다. 큐대로 당구공을 치면 앞으로 움직이며, 다른 공을 친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움직임들이다. 그는 세상을 이런 운동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장으로 생각한 것이다.


샤를르 에드와르 부티본느, <당구를 치는 여인들>


 그의 주장에서, 우리는 바로 반박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은? 인간의 의지들은? 우리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이런 것도 기계적인가? 인간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라고 반발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데모크리토스에게 이러한 반박은 통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는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 역시 아주 미세한 원자들의 움직임일 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들이 있는데, 몇 가지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는 태양을 단순히 불타는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이한 모양의 머리를 가진 염소를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염소라며, 그 염소의 머리를 갈라서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동들은 신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당시의 세계에서는 충격적이었음이 당연하다. 그의 행보들은 마치 탈신비화, 탈신학화, 탈주술화와 비슷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신을 모독했다는 판결을 받고, 멀리 망명을 가게 된다. 그를 학자로서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의 타향살이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나 거리가 같다."


* 혹시나 탈신비화, 탈신학화, 탈주술화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 짧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탈'은 어떤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신비롭고,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것들을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벗어남을 의미한다. 기존에 자신을 감싸고 있던 표피에서 벗어나는 것을 '탈피'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 표피를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낙사고라스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은 '종자(種子, spermata, seed)'이다. 그는 모든 것들은 이 종자에서부터 형성된다고 보았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아주 소박한 관찰에서 알아낸 단순한 사실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도 그랬다. 그는 인간이 섭취하는 영양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서는, 어떻게 우리가 먹는 음식은 머리칼이 아닌데, 머리칼이 자라며, 고기(meat)가 아닌 것들에서 고기가 생겨나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는 종자 개념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앞선 두 철학자의 견해와 비교해보면, 엠페도클레스는 각자의 특성을 지닌 고정불변의 지수화풍의 원소들이 결합하면서 세상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특질은 꼭 같지만, 모양들이 다른 원자들의 결합으로 세상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무한한 특질을 가지고 있는 종자가 이 세상의 생성과 변화를 이끈다고 보았다. 종자에는 무한한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질이 가장 잘 드러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물질들이 생겨난다고 본 것이다. 가령, 머리칼의 특질이 가장 잘 발현된 것이 머리칼이며, 뼈의 특질이 가잘 잘 발현되면 뼈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가장 잘 발현된 특질에 불과하며, 무한한 특질, 혹은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너의 지금 모습은 이렇지만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사람을 종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듯하다. 눈에 보이는 것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생명의 나무>


 이 종자는 간단하게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종자는 질적으로 무한하다', 그리고 하나는 '크기에 있어서는 무한히 작다'이다. 아주 작은 종자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원론적인 견해를 펼친 세 명의 철학자를 전부 알아보았다.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무한히 변화하는 세계,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의 고정불변의 세계. 이 두 가지의 견해를 통합하기 위해서, 후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원론 적으로 해석하였다. 이 다원론이 통합의 열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정불변의 어떤 근원적인 것들을 설정해 놓은 뒤, 그것들이 결합하고 운동하면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변화하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철학자는 세 명,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였다. 그리고 각자 '원소', '원자', '종자'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을 해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과학의 한 분야씩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소'는 화학적이며, '원자'는 물리적이고, '종자'는 생물학적이다.





철학자 소개


엠페도클레스

 그는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 원리를 지수화풍의 4가지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로 세상을 해석했다. 결합과 분리의 원리는 '미움'과 '사랑', 즉 오늘날의 말로 하면 '인력'과 '척력'이었다.


데모크리토스

 그는 기계적인 세계관을 확립했다. 모양은 다르지만, 질적으로는 동일한 '원자'개념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까지도 원자적으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아낙사고라스

 그는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 원리로써 '종자'개념을 들고 나왔다. 종자란, 무한히 작은 입자 정도이며, 종자는 무한한 가능성(특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종자의 어떤 특질이 발현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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