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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22. 2018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8.

고대철학 편 - 5.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수경낭자의 아버님께서는 오늘 슬픔에 잠겨계셨다. 아버님의 가장 친한 분이신 박대감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수경낭자는 그런 아버님이 걱정되어 안부를 여쭈었다. "아버님 박대감님께서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그러니 기운 내셔요" "허허 우리 막내딸이 내가 걱정이 되어 안부를 물으러 왔나 보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아버님께서는 미소를 보여주셨지만 먼 산을 바라보실 뿐이었다. 수경낭자는 언젠가 아버님께서도 돌아가시게 될 것이고, 어머님 역시 돌아가시며, 자신조차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약간은 허무한 생각이 들었고, 무섭기도 했다.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저 아무것도 없는 암흑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음 생애가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수경낭자는 반나절을 보내었다. 반나절 동안이나 이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져 바람을 쐬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섰다. 사실은 죽음에 대해서 어찌 생각을 하는지 오선비에게 묻고 싶은 마음도 약간은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경낭자  오선비님 오늘은 무얼 하고 계신지요?    

 

오선비  오오 수경낭자가 아니오? 오늘도 할 일 없이 저잣거리에 앉아 있소. 그런데 오늘은 볼거리가 좀 있어 구경을 하고 있었소이다.    

 

수경낭자  어떤 구경을 하고 계셨나요?     


오선비  저기 멀리 보이는 박대감 댁이오. 며칠 전 박대감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래서 저리도 분주해 보이는가 보오  

   

수경낭자  아 박대감님댁을 보고 계셨군요. 박대감님은 저희 아버님과 가장 친하신 대감님이셨어요. 아버님께서도 상심이 크셔요.     


오선비  허허 그렇소? 그건 몰랐구려. 하지만 너무 상심 마시라고 전해주구려. 우리들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고, 죽는 것은 사실 무서워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오.     


수경낭자  오선비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오선비  허허 죽음이 두려울게 뭐가 있소? 누구든 죽는 것이 아니오? 수경낭자는 죽음이 두렵소?    

 

수경낭자  네 저는 사실 죽음이 두려워요.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잖아요    

 

오선비  허허 마치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이 말씀하시오?     


수경낭자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죽음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무섭지요     

오선비  죽음을 겪어보지도 않고 두려워하시오? 죽음이 정말로 두려운 것인지 아닌지는 죽은 사람밖에 모를 것이오. 정 궁금하시다면 저기 멀리 보이는 무덤가에 가서 한번 물어보시지 그러시오?     


수경낭자  죽은 사람에게 어찌 물음을 던지나요? 그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걸요.        

  

오선비  허허 그렇소. 수경낭자도 잘 알고 계시는구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소.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소? 반대로 죽음은 되려 좋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오.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잠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소?    

 

수경낭자  오선비님 말씀도 맞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전 여전히 죽음이 두려워요     


오선비  허허 죽음에 대하여 하나도 아는 바가 없으면서 마치 죽음에 대해서 아는 듯이 말씀하시는 구려?  

   

수경낭자  아는 바가 없어서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오선비님은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으신가요?     

오선비  허허 나는 하는 일이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평소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두었소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소이다.     


수경낭자  그러신가요? 그럼 제게 죽음에 대해서 아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오선비  허허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러도록 합시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하나도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수경낭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요? 그것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건가요?   

  

오선비  허허 그것도 아는 것이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소. 지금은 죽음보다는 삶이 더 좋기 때문이오. 수경낭자의 고운 눈매도 볼 수 있고 말이오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뭉크, <by the deathbed>


 죽음은 과연 무섭고, 두려운 것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원초적으로 인간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어둠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죽음은 굉장한 오해를 받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찾을 수 있다 해도 그들은 이미 땅 속에 잠들어 있어서 죽음에 대해 물을 수 없다. 물론 물을 수는 있겠지만, 죽음은 죽은 자들 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말로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침묵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채로 뒷걸음치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구덩이에 빠져버리듯 맞이하게 되는 것이므로 두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당당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심지어 죽음은 크나큰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너무도 유명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누구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초기 서양철학의 중요한 산봉우리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이 거대한 철학의 산맥이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참고로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4대에 걸쳐 걸출한 인재들이 쏟아진 것이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는 산파였으며,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아버지는 조각가였다. 이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소크라테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직업 속에 이미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고 알려진다. 산파는 직접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게끔 도와줄 뿐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서 어떤 것을 스스로 알게끔 이끌어주는 그의 대화 방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각을 하는 행위 역시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흡사한 부분이 있다. 조각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각가는 조각을 통해서 어떤 형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형상을 찾아낼 뿐이다" 즉, 형상에 붙어있는 부산물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형상(본질)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여러 경우를 따져보고, 의미 없는 것들은 제거하면서, 어떤 것이 본질인가를 찾아가는 그의 철학적 방법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담은 저서를 한 권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저서를 통하는 것뿐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들 속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키고 대화로 이어나가는 형식의 저서들을 많이 남겼다. 대화의 형식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대화편'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책에서만 소크라테스를 엿볼 수 있을 뿐이어서 소크라테스의 정확한 철학적 체계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를 설파했다 라는 점이다. 무지의 지는 쉽게 말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라는 것이다.                                                 



* 참고로, 서양철학의 거대한 시작이 소크라테스라고 한다면, 동양철학의 거대한 시작은 공자라고 할 수 있는데, 공자 역시 '앎(知)'에 대해서 중요시 여겼다.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 "앎이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거대한 산봉우리의 시작인 두 철학자 모두 이 '앎'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대화편은 여러 편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세 가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인데, 이것은 세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크게 보면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불려 나와 자신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 죄들에 대해서 변론하고, 결국 유죄 선고를 받은 뒤 감옥으로 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옥중에 있는 도중에 친구인 크리톤이 찾아와 자신과 동료들이 도와줄 테니 이곳에서 탈출하자고 설득하지만, 도리어 소크라테스에게 설복당해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기 전 친구들과 옥중에 모여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세편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 세편의 대화편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가장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여겨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와 미움을 받아, 이렇게 법정에 불려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무녀에게서 신탁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보다 더 현명한 자는 없다"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의 내용에 의문을 품었다. 자신은 아는 바가 없으며 자신보다 현명한 자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께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니, 소크라테스는 신의 말씀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소크라테스는 그 신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고 다니게 된다. 하지만 그들과 말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은 생각보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라는 오만함 때문에 적게나마 가지고 있던 지혜마저도 가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사실은 지혜롭지 못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다 보니 법정에 세워질 정도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산 것이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적어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델포이 신전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끊임없이 남에게 질문을 퍼붓는 자신을 가리켜 '아테네의 등에'라고 말했다. 여기에 '건강한 말(아테네)'이 한 마리 있는데, 이 말이 가만히 앉아서 잠만 자고, 게을러지지 않게, 자신이 등애처럼 말의 주변에서 빙빙 돌며, 끊임없이 귀찮게 하여 말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소크라테스의 사상 중 중요한 것은 지행합일이다. 이 말은 아는 것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오해되기 십상인데 가령,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사람이 착한 것을 알면, 그러니까 선(善)을 알면 반드시 선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선뜻 이해되지 않을 것인데, 가령 '전쟁'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하자.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피 튀기게 싸우는 것이 전쟁이다. 우리는 각종 매체와 책, 사진 등을 통해서 전쟁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경험해 보았는가? 전쟁의 참담함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들은 것들이 있기에 아는 것처럼 생각될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앎이란, 텍스트로 배우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앎이란 몸으로 습득해야만 하는 것이다(이는 경험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뜻하기보다는, 진정으로 그것을 안다는 의미다). 우리가 전쟁의 참담함을 몸으로 겪었다면, 전쟁의 무서움을 알 것이고, 그런 사람은 전쟁을 진심으로 반대할 것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들고 있는 'NO WAR' 피켓과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 들고 있는 'NO WAR' 피켓은 그 무게부터가 다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지행합일은 이런 것이다.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물으며 진리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기보다도, 스스로 알아가게끔 대화로써 유도해 주었는데, 이러한 그의 대화방식을 '산파술'이라 한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성찰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즉 진정한 '앎'을 우리가 갖게 된다면,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게 됨 역시 중요하다. 진정으로 아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렇게 행동하려 하는 태도, 이는 학문적인 철학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철학을 해야 한다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현재성을 띄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내가 정말로 이거 하나는 알고 있다고 당당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되는지, 그리고 정말로 알고자 노력해본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 산파술

 산파는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을 도와 아이를 낳게끔 도와준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스스로 답을 구하게끔 유도해 주었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    


 소크라테스  자네는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트라시마코스  강자의 이익이 정의입니다.


 소크라테스  강자도 물론 사람이겠지?


 트라시마코스  예,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그럼 강자도 실수를 하겠군


 트라시마코스  네


 소크라테스  그럼 강자의 잘못된 행동도 정의로운 건가?


 트라시마코스 ......     


* 신탁

 그리스인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신에게 해결책을 묻고, 이에 대한 신의 응답을 무녀를 통해서 듣는다.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이 신탁의 장소로 가장 유명했는데, 신에게 물음 하면 신전의 무녀가 신의 응답을 중개하여 신탁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무녀를 통한 신의 대답은 주로 시적인 경구였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잘못 알려진 말들     


*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매우 유명하고, TV 쇼프로의 퀴즈 문제로도 자주 나오는 단골손님이다. "너 자신을 알라 라고 말한 철학자는?"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소크라테스!"라고 외치고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행보 속에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는 격언이기는 하나, 이는 사실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앞마당에 새겨져 있는 문구이다.          


*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들 중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악법도 법이다"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다. 주로 인용되기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으며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독배를 마신다고 하는데 그런 말은 없으며, 역사적 증거 역시 찾을 수 없다 라는 것이 통설이다.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로 오해된 것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소개     


*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가장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그의 모습은 제자인 플라톤의 저서에 나타나 있다. 소크라테스는 공자, 예수, 석가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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