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 편 - 6.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움 그 자체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오늘 수경낭자는, 친구인 이윤도령의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단순히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이윤도령이 그린 그림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에 수경낭자도 초대받은 것이었다. 이윤도령은 특히 풍경화를 즐겨 그렸는데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주변 풍경을 아주 생생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윤도령이 즐겨 그리는 풍경은 마을 언덕에 오르면 볼 수 있는 산의 풍경들이었다. 산의 묘사가 수려한 것이 산을 그대로 잘라 화선지에 붙여놓은 듯하였다. 하지만 이윤도령은 자신의 그림들에 대해 항상 아쉬움이 있다고 하였다. 어떤 아쉬움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볼 때에 풍경을 그대로 잘라 붙인 것처럼 보인다고 감탄하지만, 그 그림들은 그저 풍경을 화선지에 옮기는 흉내를 냈을 뿐 눈으로 직접 볼 때 느껴지는 풍경의 아름다움 자체를 녹여내지는 못했소". 수경낭자는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움 그 자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윤도령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으니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이윤도령은 더 높은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그렇게 그림을 감상하는데 저 멀리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오선비였다. 오선비도 이윤도령의 그림을 구경하러 온 듯했다.
수경낭자 호호 오선비님도 이윤도령의 그림을 보러 오셨군요?
오선비 허허 이게 누구요 수경낭자가 아니오? 할 일이 없어 이윤도령의 그림을 보러 왔소 그림을 아주 잘 그리시는 것 같소이다.
수경낭자 네 그렇죠? 풍경을 베어서 화선지에 그대로 옮겨 붙인 것 같아요.
오선비 허허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던 참이오.
수경낭자 하지만 이윤도령은 자신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풍경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녹여내기가 힘들다고 말했어요.
오선비 풍경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하셨소? 허허 그것 참 재미있는 표현이오. 수경낭자 생각은 어떠시오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다움 그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시오?
수경낭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움 아닌가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걸요?
오선비 수경낭자가 생각하시기에 수경낭자는 아름다운 사람이오? 아니면 아름다움이오?
수경낭자 호호 오선비님이 농담도 하시네요? 저는 아름다운 사람이지요.
오선비 허허 넉살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소만?
수경낭자 뭐라고요?
오선비 허허 농담이오 진정하시오. 그렇소. 수경낭자는 아름다운 사람이지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니오. 수경낭자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시오?
수경낭자 아뇨. 아름다운 것들은 본 적이 있어도, 아름다움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오선비 그렇소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는 본 적이 없소. 그런데 우리는 아름다움을 본 적도 없으면서, 어찌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오?
수경낭자 그러게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오선비님은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선비 껄껄 사실 나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소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을 명확히 구별해낼 수 있소.
수경낭자 오선비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정말 부러운걸요? 오선비님은 아름다움을 어디서 보셨죠? 저에게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오선비 현실에서는 나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꿈속에서 본 듯한 기억이오. 그래서 현실에서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 수 있었소. 아마 수경낭자도 언젠가 꿈속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본 적이 있을 것이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오. 그러니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수경낭자 꿈속에서 아름다움을 본 것이라고요? 오선비님은 매번 알 수 없는 말들만 하시네요.
오선비 아니오. 꿈속에서 아름다움을 본 덕에 이렇게 기억해낼 수 있던 것이오. 그리고 가끔 꿈속에서 수경낭자의 고운 자태도 본다오. 어젯밤에도 무척이나 고왔소.
수경낭자 어멋!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무례하시군요! 저는 이만 아버님께 돌아가 봐야겠어요!
오선비 껄껄껄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다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핏 보기에는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움일 것 같지만, 이것을 철학적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 노력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만큼이나 유명한 플라톤이다. 플라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그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이름은 대부분 '~스'로 끝난다. 예로,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등등 하지만 플라톤은 그 당시의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넓은 어깨'라는 별명이고(실제로 플라톤은 잘생긴 외모에 넓은 어깨를 가졌으며, 여러 운동경기에도 출전할 만큼 체구가 좋았다) 실제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보통은 플라톤이라고 부르니 플라톤 이라고만 알아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에 아테네를 떠나서, 세계를 돌며 철학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도중 시칠리아 섬의 통치자인 디오니소스 1세의 자문역할을 맡게 되었고(당시는 한 나라의 통치자들이 철학자들에게 자문을 많이 구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정치적 활동을 하는 도중 독재자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다른 정치가들의 미움을 받고, 스파르타로 쫓겨나게 되었다. 스파르타로 쫓겨난 플라톤은 그리스의 노예시장으로 팔려나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플라톤은 그곳에서, 함께 공부했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고 극적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다. 플라톤은 고향으로 돌아온 뒤, 그에게 자신의 노예 값을 갚으려 했으나, 그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 돈을 갚는 대신에, 그 돈으로 학교를 세우게 되었고, 그 학교의 이름을 아카데메이아(academia)라고 하였다. 재미있게도, 최초의 철학 학교는 철학자의 몸 값으로 지어진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자이기도 했지만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는데, 수학 중에서도 특히 기하학을 중시하였다. 기하학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본래의 것을 직관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카데메이아의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이는, 기하학 자체를 시험을 봐야만 한다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순수한 것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해함이 좋겠다.
플라톤이 이룩한 철학적 업적은 너무도 방대하여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좋든 싫든, 혹은 플라톤을 인정하든 안 하든 플라톤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플라톤 철학의 위대함을 언급하는 여러 말들이 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현대까지의 철학은 그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교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급된 플라톤의 철학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플라톤 철학의 위대함을 대부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플라톤 철학의 핵심에도 항상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윤리적인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게끔 하는 것에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다움 그 자체의 구분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꼭 이것만이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들과 정의로움 그 자체, 선한 행동들과 선함 그 자체 등의 것들을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이러한 구분에서 전자의 것은 현실세계에 존재함이요, 후자의 것은 이상의 세계 혹은 이데아(idea)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플라톤은 세계를 현실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로 구분 짓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 했다. 이데아의 세계는 불변하는 진리들의 세계이며, 현실세계는 이데아의 세계가 모방된 세계 혹은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 같은 세계라 하였다.
이러한 철학적 견해에 따르면, 플라톤이 기하학을 중요시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지금이라도 종이와 연필을 준비한 뒤에, 삼각형을 하나 그려보자. 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삼각형의 수학적 정의는 "내각의 합이 180도가 되는 3 변을 가진 도형"인데, 아무리 정밀하게 그린다고 해도 내각의 합을 180도에 맞게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소 불완전한 삼각형을 가지고 여러 기하학적 문제들에 접근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처럼 플라톤이 느끼기에 기하학은 이데아의 세계를 직관하게끔 도와주는 숭고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삼각형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설명해주는 여러 가지 비유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동굴의 비유'이다.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마치 동굴 속에서 동굴의 입구를 등진 채 사슬에 묶여있는 죄수와 같다. 입구를 등지고 있는 죄수들은 태양이 비추고 있는 동굴 밖의 진짜 세계를 볼 수 없으며 그저 동굴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 철학의 목적은 죄수들이 그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오게끔 하는 것이며, 진짜 세계와 태양을 바라보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플라톤은 설파했다.
하지만 플라톤의 말대로 우리가 동굴 속에서 사슬에 묶여있는 죄수라고 한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진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어서 우리는 볼 수도 알 수도 없을 텐데,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구분 지을 수 있다. 피어나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아름다운 것들을 알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플라톤은 망각과 상기라는 다소 신화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플라톤은 우리에게는 전생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전생에서 이데아 세계에 살고 있어서 이데아를 알고 있는 상태였으나, 이승으로 오기 전에 모든 기억이 지워지는 망각의 강인 레테(lethe)를 건너면서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상태로 우리는 이승에서 살아가게 되며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이데아 세계의 모방물들을 보고,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상기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식이나 진리는 우리에게 전혀 없었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것, 알고 있던 것들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이데아를 알고 있었으나 다만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그리스어로 알레테이아는 진리를 뜻하는 말인데, 이는 레테에 a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앞에 a를 붙인다는 것은, 영어의 not과 같은 것으로 반대 혹은 부정을 뜻한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망각과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진리인 것이다. 즉 망각의 반대는 상기인 것이고, 상기하는 것이 곧 진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했듯이, 속견과 인식을 명확히 구분 지었다. 속견이란, 일어나는 어떤 개별적인 행위나 존재하는 개별적인 사물에 대한 판단이며,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부단히 변해가며, 그것은 덧없고 우연적이며 어떤 고정된 모양으로 특정 짓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 인식이란, 플라톤에게 이데아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것이며 이데아는 개별적인 것과는 달리 숭고한 지성으로써만 알 수 있는 대상이며 고정적 불변적이요, 시간의 경과에 손상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에는 많은 이데아들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 올바름의 이데아, 삼각형의 이데아 등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들 중에서도 최고의 이데아를 선(善)의 이데아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선은 도덕적으로 착함을 의미하는 선이라기 보다도, 모든 존재의 이유와 근원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플라톤은 이 선의 이데아에 근접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강조했고, 항상 윤리적인 측면에서 행동해야 함 역시 강조했다.
플라톤은 인간들이 선의 이데아로 가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잘 가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인간의 영혼은 크게 3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 요소들이란 바로 이성, 용기 그리고 욕망이다. 이 요소들 중에서도 이성을 영혼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며, 용기와 욕망 이 두 가지는 감각적인 세계의 것이라 했다. 이 영혼의 3요소를 플라톤은 마차를 끄는 마부에 비유하였는데 용기는 온순한 말, 욕망은 정신없이 날뛰는 말, 이성은 두 마리의 말을 이끄는 마부이다. 마부는 항상 이 두 마리의 말을 잘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인간의 영혼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정치적인 견해들도 많이 다루었는데,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은 반드시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철인왕(哲人王)이 될 수 있는 나름의 커리큘럼을 제시했는데 20세까지는 시와 음악을, 30세까지는 수학과 천문학을, 35세까지는 철학을, 마지막으로 50세 까지는 국가경영실습을 통해서 총 50년의 교육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을 이데아 이론에 기초하여 확장시켜나갔지만, 플라톤 철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중심적 문제는 언제나 윤리적인 것이었음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철학자 소개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세계를 현실세계와 이데아 세계로 나누어 해석하는 이데아 이론을 기초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갔다. 이데아 중의 최고 이데아인 선(善)의 이데아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인간의 윤리적인 측면을 항상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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