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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13. 2018

오선비의 철학 용어 사전 3.

가지적

가지적(可知的)
영 intelligible, 독 intelligibel



 가지적은 플라톤적인 개념입니다.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세계로 구분했는데요. 이는 곧, 순수한 형상의 차원과 감각적인 차원으로 나눈 것입니다. 여기서 전자를 가지적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단순한 겉모습 같은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라톤에게 형상이란, 어떤 개념의 순수한 모습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주변에서 보는 개(dog)는 정말 다양하죠? 호두, 솜뭉치, 히릿 등. 하지만 개의 개념을 충실하게 담고 있는 개 본연의 모습은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개의 형상입니다. 아직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으니,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게요. '사람'이라는 단어가 있죠?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철수나 영희 같은 구체적인 개인들 말고, '사람' 그 자체를 보신 적 있나요? 없죠? 그것이 사람의 형상입니다. 이 '사람'이라는 것이 단순히 대화를 위해서 만든 개념일 뿐이냐? 아니면 실제로 실재하느냐? 플라톤은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이 형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도 포함됩니다. 예로, 선(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서 진정한 선(善)의 개념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선(善)의 형상에 다가가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단순히 감각적으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유의 과정을 통해 도달된 개념들은 전부 가지적으로 파악된 개념들입니다.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죠. 가령 '정의(正義)'라는 개념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그래서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겠죠(물론 정의로운 행동들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볼 수 있지만, 정의 그 자체는 감각적으로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토론하고, 토론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정도 정의에 대한 공통분모와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를 가지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플라톤은 사람들과 토론을 많이 했죠.


 최대한 예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우리는 아무리 정밀하게 그린다 하더라도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당히 그려진 원을 보고도 이것이 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이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원의 개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학생 시절, 수학 문제를 풀 때, 연습장에 좌표평면을 그리고 원을 그리고 직선도 그리고 하는데, 바빠 죽겠는데 누가 자와 컴퍼스를 꺼내겠습니까?(물론 이도 완벽한 직선과 원은 아니겠지만요) 그냥 엄청 대충 그리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우리는 문제를 풀 때 감각적인 차원의 연습장 위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지만, 사실은 가지적인 이데아의 세계에서 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의 개념은 수학적으로는, 평면의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입니다. 하지만 수학적인 정의를 몰라도 우리는 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유를 통해 순수하게 파악하고 있는 진정한 원(원의 형상), 이것이 가지적으로 파악한 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감각적으로 볼 수 있는 원의 형태들은(원형 테이블, 바퀴, 동전 등) 감각적인 차원의 원이겠죠.


 플라톤은 이처럼 감각적인 차원의 것과 순수한 가지적인 차원의 것을 구분했고, 가지적으로 파악된 개념들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하고 그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서 간단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 플라톤



* 철학자들은 하나의 개념을 만들거나,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평생을 철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개념이든,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이 철학 용어 사전에서는, 철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책을 읽으실 때, 문맥이나 철학자, 특정 사조에 따라서 그 의미가 약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어떤 상황이든 그 문맥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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