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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14. 2018

오선비의 철학 용어 사전 4.

감각 작용


감각 작용(感覺作用)
영 sensation, 독 Empfindung



 감각이라는 말은 매우 일상적인 용어인데요. 다행히 철학에서 사용될 때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엄밀하게 규정할 뿐입니다. 철학용어 대부분이 번역어이고, 한자로 번역되기 때문에 한자풀이만 잘 해도 의미가 와 닿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감각(感覺)도 마찬가지인데요. 느낄 감, 깨달을 각 우리가 어떤 것을 느끼고,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설명 하면, 감각은 나(인식 주체)와 어떤 대상이 '물리적'으로 접촉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접촉이라는 것입니다. 예로, 주전자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주전자를 보고 만지면, 주전자를 봤다는 것, 만졌을 때의 촉감, 차갑다, 뜨겁다 등을 감각하는 것이죠. 하나도 어렵지 않죠?


 이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주체)의 외부에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각을 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감각은 우리에게 순간적인 인상만을 남겨줄 뿐입니다. 그래서 이 감각들만으로는 그 사물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했다고는 말하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기 이전에는, 이 감각한 것들은 그저 정리되지 않은 정보들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약간 아리송할 수 있으니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우리가 사과를 보면, 사과인 것을 알죠? 우리가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미 우리는 머릿속에 사과라는 인식이 잡혀있다는 말입니다. 둥그스름하고, 맛은 새콤달콤하고, 익으면 빨간색이고, 나무에 열리는 과일이고 등등.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사과를 본다면? 아기는 사과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저런 식으로 생겼고, 색은 저런 식이고, 아직 먹어보지 않아서 맛도 모르겠죠? 그리고 저것이 해로운 것인지, 이로운 것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잡다(雜多)한 정보들만 가질 뿐이죠. 제대로 인식되지는 않은 상태인 겁니다. 단순간 감각정보들은 '잡다(雜多)'라는 표현이 참 적당하다고 봅니다. 섞일 잡, 많을 다 많은 것들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을 뿐이죠. 우리가 제대로 인식을 하려면 저 섞여 있는 것들을 잘 배열해서 정돈을 해야만, 그제야 '인식했다'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각 작용 자체는 우리에게 인식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위의 예시를 천천히 읽으셨다면, 이 말이 단박에 이해가 되실 겁니다. 감각은 단순한 정보(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만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정보들을 개념화하고 정리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죠.


 말이 길었는데, 말만 길었을 뿐 천천히 읽으셨다면 충분히 이해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감각 작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적인 표상적 감각 작용, 또 하나는 내부적인 내적 감각 작용입니다. 쉽게 말해서, 표상적 감각 작용은 '그나마' 객관적인 정보들이며, 내적 감각 작용은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서 달라지는 주관적인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약간 아리송하죠?


 언제나 그렇듯 저는 무조건 예시를 들겠습니다. 카멜레온이 있습니다. 두 명의 사람이 카멜레온을 보면, 우선 카멜레온의 외형(표상적 감각 작용)에 대한 정보는 똑같게 받아들일 것입니다(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초록색이고, 때론 색이 변하고, 눈은 튀어나왔고, 혀를 날름거리고 등등. 하지만 한 명은 카멜레온을 보고, 귀엽다고 느끼고, 한 명은 소름 끼친다고 느낍니다. 같은 것을 봐도 느끼는 바가 달랐죠? 이것이 내적인 감각 작용입니다.


 사실 이쯤 해도 감각 작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제가 욕심(착한 욕심)이 나서 조금만 더 추가로 설명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프신 분은 안 읽으셔도 됩니다.


 감각 작용, 지각 작용, 인식 작용을 구분해보겠습니다. 감각 작용은 우리가 대상과 물리적으로 접촉하여 어떤 정보들을 얻는 것이고, 인식 작용은 감각 작용을 통해서 얻은 잡다한 정보들을 우리의 머릿속(정신적인 차원)에 개념화시키는 것이고, 지각 작용은 감각 작용과 인식 작용의 중간에 자리 잡는 작용입니다. 즉, 감각 작용으로 얻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개념화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런식으로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아직 택배가 배송중인 상태인 겁니다.


 제대로 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수학공식을 봤다고 해보죠(감각 작용),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증명하고, 이해합니다(지각 작용). 그리고 마침내 그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 머릿속에 완전히 입력했습니다(인식 작용). 이해가 되셨나요? 만약에 이해가 안 되신다면, 여러분이 아닌 제 설명 능력을 탓해주세요.




* 철학자들은 하나의 개념을 만들거나,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평생을 철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개념이든,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이 철학 용어 사전에서는, 철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책을 읽으실 때, 문맥이나 철학자, 특정 사조에 따라서 그 의미가 약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어떤 상황이든 그 문맥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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